ⓒ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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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한국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우울, 분노 등 ‘울분 지수’가 더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여성 10명 중 8명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추지현 교수는 지난 11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제119차 KWDI 양성평등 정책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청년 관점의 젠더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 대응방안 연구-공정 인식에 대한 젠더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성인 여성·남성 5000명을 대상으로 우울, 불행, 분노, 억울, 부당함 등에 대한 감정 경험을 나타내는 울분 척도를 조사한 것으로, 여성의 평균 울분 척도는 4점 만점에 2.73점, 남성 평균 2.56점으로 여성의 울분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조사됐습니다.

울분 척도가 가장 높은 집단은 2.79점인 청년(20~34세) 여성으로 나타났으며, 가장 낮은 집단은 2.53점인 청년 남성이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인 항목은 범죄피해에 대한 불안으로, 청년 여성 53.4%가 살인, 폭력, 강간 등의 피해 불안을 호소했습니다. 또 공중 화장실 사용, 불법촬영 등에 대한 불안은 각각 69.8%, 60%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불안을 느낀다는 응답이 49.2%에 달했습니다.

청년 여성의 범죄피해 불안 지수는 4점 만점에 2.66점으로 청년 남성(1.74점), 기성세대 여성(2.23점), 기성세대 남성(1.78)과 비교해 확연히 높았습니다. 사회경제적 불안 지수도 청년 여성은 2.70점으로 청년 남성(2.57점), 기성세대(25~59세) 여성(2.39), 기성세대 남성(2.41)에 비해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추 교수는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일상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 불안이 일상을 지배하는 상황은 불평등한 젠더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 확장 및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이끈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평했습니다.

이는 연일 발생하고 있는 불법촬영, 스토킹, 성폭력 등의 범죄가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또 교육기회, 취업기회, 승진, 법 집행 등에서 기회의 결과와 불평등 및 불공정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여성이 상대적으로 높게 조사됐습니다.

성별에 따른 소득 및 임금 격차에 대해서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성세대 여성의 85.6%가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부당하다고 답했으나 남성은 66.5%가 부당하다고 답했습니다. 청년세대의 경우 여성 82.8%가 부당하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42.7%만이 부당하다고 답해 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불공정, 불안 등의 문제로 청년세대 80.6%는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평가했습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응답은 청년 여성과 남성이 각각 79.1%, 72.1%로 나타나 10명 중 7~8명은 ‘탈조선’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 교수는 “노동 지위, 폭력 피해, 평판 등 각 영역에서 여성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불평등한 젠더 관계, 관련 지식유통, 인식 변화 등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청년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은 이미 ‘일상적인’ 공포가 됐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불법촬영’을 검색하면 거의 매일 관련 범죄사건 보도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성희롱, 성폭행 등 성폭력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과는 달리 법·제도의 대응은 미온적이기만 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젠더 이슈가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았지만, 성범죄, 스토킹 범죄 등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가벼운 수준이고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성차별·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 등 사회인식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여성들의 울분을 낮출 수 있도록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정부 등 관계 기관이 여성들이 평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나설 수 있길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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