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선거법·공수처법서 밀린 한국당, 총사퇴 결의 이후엔?
검경수사권 조정안·유치원 3법 등 남겨진 패트 법안 처리는

지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이하 공수처법)이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 전담 수사 기관 설치를 주요 골자로 하는 공수처법은 지난 1996년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 입법 청원 이후 23년여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한편 새해 예산안, 선거법 개정안에 이어 공수처법 처리까지 저지하지 못한 자유한국당은 의원 총사퇴 카드를 꺼내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 문턱 넘은 공수처법

공수처법 역시 선거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패스트트랙 지정부터 시작해 험난한 여정을 지나왔다. 막판에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권은희 의원이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온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공직자의 범죄 정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을 발의하면서 표 대결의 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결국 공수처법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재적의원 176명 중 찬성 160명, 반대 14명, 기권 3명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권은희 의원의 수정안은 재석 173명 중 찬성 12명, 반대 152명, 기권 9명으로 부결됐다.

자유한국당은 이날도 의장석 주변에서 농성을 벌였지만, 지난 선거법 개정안 처리 때와 같은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공수처법 통과와 관련해 청와대는 즉각적으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고민정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이 법안에 담긴 국민들의 염원,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비춰보면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며 “이제 공수처는 첫걸음을 떼게 됐다. 공수처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함에 차질이 없도록 문재인 정부는 모든 노력과 정성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진전이냐 퇴행이냐…엇갈린 평가

공수처법 통과와 관련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평가는 엇갈렸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의 물꼬를 튼 ‘역사적 진전’이라고 평가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역사의 퇴행’이 시작됐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의 물꼬를 트는 역사적 진전”이라며 “이번 공수처 설치법 통과는 그동안의 사법 불신을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법치를 바로 잡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민주주의의 시계는 멈춰 버렸고, 기어이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피로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의장, 소신도 용기도 없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더럽혀졌고 ‘역사의 퇴행’은 시작됐다”라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함께 4+1 공조에 나섰던 야당들도 환영의 뜻을 내놨다. 바른미래당 강신업 대변인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공수처 법안이 통과된 이상 각 당이나 이해관계자들은 더 이상의 혼란을 부르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법 시행에 따른 효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점검하여 효과는 배가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라고 전했다.

정의당 김종대 수석대변인은 “공수처 설치는 검찰이 그간 행한 수많은 죄악에 대한 업보이자, 당연한 귀결”이라며 “공수처야말로 검찰의 독립을 위한 최선의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직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목적의 공수처법 통과를 환영한다”며 “내년에 출범할 공수처가 검찰 권력을 적절히 견제하고,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주기를 기대한다”라고 했다.

대안신당 최경환 수석대변인은 “진통 없이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며 “개혁 반대세력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거세지만 한걸음씩 진전시켜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반대 플래카드와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반대 플래카드와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의원 총사퇴 꺼내든 한국당

자유한국당은 새해 예산안, 선거법 개정안에 이어 공수처법 처리까지 4+1 협의체의 공조에 무기력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민주당의 ‘쪼개기 임시회’ 전략에 빛이 바랬다. 또 무기명 투표 요구, 전원위원회 요구, 의장석 점거 농성 등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공수처법이 통과된 이후 의원 총사퇴를 결의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30일 긴급 의원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공수처법 처리와 관련해 예산안 불법 날치기, 선거법 불법 날치기에 이은 세 번째 날치기 처리에 의원들 모두 분노를 참지 못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다음날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저들의 만행에 끓어오르는 분노, 저들의 폭거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송구함, 이 모든 감정들 때문에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것”이라며 “이 결의, 결기를 갖고 계속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결의한 의원 총사퇴는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사퇴를 위해서는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또 비회기 중에는 국회의장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때문에 자유한국당의 의원 총사퇴 결의는 실질적인 총사퇴로 이어지기 보다는 지지층 결집을 위한 구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목숨 걸고 막는다고 수차례 공언 하더만 선거법, 공수처법 무기력하게 모두 줘 버리고 이젠 어떻게 할 거냐”라며 “이젠 의원직 총사퇴도 의미 없다”라고 질타했다.

이제 패스트트랙 법안에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 유치원 3법 등이 남겨져 있다. 민주당은 검경수사권조정 법안을 30일 본회의에서 상정하지 않으면서 잠시 멈춰섰다. 민주당은 다음달 6일 본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상정에 나설 방침이다. 이때 다시 필리버스터 정국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가 이제 검경수사권 조정과 유치원 3법만을 남겨둔 가운데, 의원 총사퇴를 외치며 강경 투쟁 노선을 거듭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자유한국당이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앞서와 같이 4+1 협의체의 드라이브로 순조로운 마무리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