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고객센터 노동자 설치 작업 중 사망
30분마다 업무 배정, 하루 평균 14건씩 처리

ⓒLG헬로비전
ⓒLG헬로비전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LG헬로비전(옛 CJ헬로비전) 협력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끝내 숨졌다. 노조는 하청구조에서 격무에 시달리던 동료의 사망을 애도하는 한편, LG헬로비전이 직접고용 등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2일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비정규직지부에 따르면 서부해운대고객센터 소속 노동자 김모(45)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5시 30분 경 관할지역에서 설치업무를 수행하던 중 의식을 잃은 채 고객에 의해 발견됐다. 

옥상에서 쓰러져 있는 김씨를 목격한 고객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119에 신고했다. 이후 김씨는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같은 날 오후 6시 45분 사망진단을 받았다. 현재는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사고경위와 사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노조는 김씨가 과중한 격무와 실적압박에 시달려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30분 간격으로 업무를 배정해 하루 평균 14건을 처리해왔다는 것이다. 노조는 유사한 업종인 이동통신사 설치기사의 업무는 하루 7건 정도가 배정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노조가 공개한 서부해운대고객센터 소속 노동자들의 ‘개인별 업무 할당 현황’을 보면 김씨는 사고 당일 14건 수준의 업무를 배정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는 일정이라고 하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34분마다 1건씩 업무를 처리해야 했던 상황이다. 

김씨의 사망 이후 과도한 업무 부담에 대한 지적이 일자 협력업체는 업무배정을 40분 간격으로 조정했지만 노조는 최대 업무 배정 건수가 15건에서 12건 정도로 줄어들었을 뿐이라며 노동 경감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밖에도 협력업체를 통해 운영되는 고객센터의 하청구조가 설치기사들의 업무를 과중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원청인 LG헬로비전이 협력업체들의 업무를 사실상 직접 할당하고 편성하면서 수수료 떼어먹기에 급급한 업체들을 길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 최영열 조직국장은 “30분 단위의 업무배정이라면 1명의 노동자에게 하루 할당할 수 있는 양은 15건이다. 사고 당일 김씨는 14건을 배정 받은 걸로 보인다”라며 “업무배정 시간이 10분 늘어난 건 무의미하다. 업무시간과 이동시간, 고객응대시간을 포함해 10분 늘어난 건데 애초에 12~15집을 가는 게 과연 옳은 건지부터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 통신사 설치기사들의 경우 하루에 7~8건 정도 작업을 한다. 1시간에 한집 꼴이다”라며 “2016년 경 SK텔레콤이 CJ헬로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만해도 전체 노동자가 2200명이었는데 지금은 1200명에 불과하다. 일의 양은 그대로 인데 사람이 줄었으니 당연히 노동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국장은 또 “수수료·임금 떼어먹기를 하는 하청업체들이 설치기사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는 구조다. LG헬로비전이 이런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만든다고 보고 있다”라며 “원청이 업무할당 및 편성 등에 다 관여하고 있는 만큼 고용문제도 직접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LG헬로비전은 사망원인과 관계없이 회사 차원의 지원을 고민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격무의 원인으로 지목된 하청구조와 이에 따른 직접고용 요구에 대해서는 아직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LG헬로비전 관계자는 “현재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라며 “사망사건이 발생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회사 차원에서도 사망원인과 관계없이 도와 드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협력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설치기사들의) 직접고용 계획은 (인수 및 사명 변경 이후) 이제 막 부임과 업무파악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현재 논의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라며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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