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5월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전야제 행사의 민주대행진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40년 전, 광주에는 대대적인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유진독재 체제 유지를 꾀하던 신군부 세력은 갖가지 부정부패를 자행하며 정권의 실세로 거듭났다. 신군부의 불미스러운 행보를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시위가 절정에 이를 즈음에는 20만명 이상이 참여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이라는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민주화운동을 이끌어냈다.

5·18의 규모만큼이나 남은 상처는 컸다. 신군부 세력은 무자비하게 시민군을 진압했다. 광주에 주둔한 계엄군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민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대검과 곤봉을 휘둘렀다. 그들은 피를 흘리며 거리에서 죽어가는 시민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잡아갔다. 그럼에도 시위가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실탄을 발포해 집단 사살에까지 이르렀다.

계엄군의 횡포의 진두에는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이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은 예나 지금이나 그날의 학살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가 없다. 사과는 없지만 용서는 이뤄졌다. 5·18진압의 주범으로 옥살이를 한지 불과 8개월 만에 수감생활을 마친 전두환은 자신의 끔찍한 과오는 잊은 채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며 인생 말년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열린 .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에서의 화형식 퍼포먼스 ⓒ뉴시스

새빨간 거짓말

전두환은 2017년 4월 3일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회고록을 출간했다. 분량이 총 2000페이지에 육박한 회고록에는 5·18에 대한 전두환의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5·18을 ‘광주사태’, ‘5·18 사태’ 등으로 폄훼했다. 이는 신군부가 5·18을 은폐하거나 혹은 왜곡할 때 사용된 표현으로, 전두환은 “폭동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며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천명의 광주 시민 목숨을 앗아간 계엄군의 발포 명령과 관련해서는 자신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1997년 전두환은 5·18 진압의 주범으로 재판장에 섰다. 당시 대법원이 작전 범위 내에서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있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전두환은 판결문에 발포 명령자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포 책임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발포 명령의 당사자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전두환은 국군의 의도적, 무차별적 민간인 살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서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두환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2017년 4월 모 언론에서 확인한 육군 제2군사령부의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지시 및 조치 사항’에 따르면 ‘전(全) 각하(閣下) : 초병에 대해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여기서 전 각하는 전두환을 지칭하고 자위권 발동 명목으로 발포 지시를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2016년 12월, 5·18 시위가 있던 옛 전남도청 인근의 전일빌딩에 남은 총탄의 흔적이 헬기 총탄 흔적임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해 밝혀지고, 전일빌딩에 61항공단 소속 헬기가 투입됐다는 사실이 기록된 군 작전 문서도 발견됐다.

5·18에 관한 여러 기록, 정황, 증거 모두 광주 학살의 총 책임자로 전두환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7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포착된 골프를 치고 있는 전두환씨 <사진 출처 =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가 제공한 영상 캡처>

잘 먹고 잘 사는 가해자

5·18 광주 시민 학살의 주범 전두환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전두환은 회고록을 통해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비난한 것과 관련해 광주지방법원에서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2018년 8월 2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전두환은 돌연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월 7일 재판도 독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가 구인장을 발부하며 같은 해 3월 11일에 열린 재판에 한차례 참석했지만 이후에도 앞선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건강 악화와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건강 악화와 알츠하이머라는 전두환씨의 주장을 의심케 하는 행보가 목격됐다.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는 지난해 11월 7일 강원도 홍천 소재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함께 골프를 즐기는 전두환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골프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영상 속 전두환의 모습은 곧 아흔(당시 89세)을 앞둔 노인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매우 건강했다. 인지기능이 악화되는 알츠하이머 환자로 보기엔 5·18 강제 진압의 책임에 관한 질문에 “광주하고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나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 군에서 명령권도 없는 사람이 명령을 하느냐”는 등 자기 의사를 명확히 해 의사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영상엔 나오지 않았지만 골프장 캐디들도 이따금씩 타수를 까먹거나 계산을 실수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전두환은 본인 타수를 절대로 까먹거나 계산을 헷갈리는 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12일에는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호화 오찬을 즐기는 전두환의 모습이 임 부대표에 의해 또다시 포착됐다. 전두환은 자신의 주도 하에 최세창(전 합참의장), 정호용(전 특전사령관) 등 12.12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2시간가량 20만원 상당의 코스 요리를 즐겼다.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 미납 추징금 1021억원을 낼 수 없다던 그의 말과는 모순된 상황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공개된 영상을 통해 만천하에 알려진 전두환의 건재함과 호화로운 삶에 5·18 피해자들은 극한의 분노를 표출했다.

5·18구속부상자회 소속 피해자 조성수씨는 “전두환씨 개인의 입장에서는 골프를 치거나, 오찬회동을 갖는 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인지는 몰라도 5·18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울분을 참을 수 없는,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심경을 전했다.

조씨는 “잘 알려진 것처럼 신군부 세력의 2인자이던 노태우씨의 경우, 아들인 노재현씨가 광주에 두 번이나 다녀갔다. 아버지 노태우씨를 대신해 온 것일 텐데, 전두환씨도 최소한 노태우씨처럼은 돼야하지 않겠느냐”며 “연세도 많이 됐으니 이제라도 모든 걸 밝히고 가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월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전야제 행사 ⓒ뉴시스

‘5·18’은 계속된다

5·18 단체들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날 광주의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전두환이 국민 앞에, 광주 시민 앞에 사과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5·18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처장은 “전두환씨는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과거 행적에 대해 일말의 사과나 어떤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5·18로 인해) 고통당한 사람들은 피해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가해자인) 전두환이 알츠하이머 등을 핑계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사무처장은 “피해자 중 많은 분들이 기초생활수급자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고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며 “그런데 전두환은 천억원이 넘는 추징금도 내지 않으면서 골프에 호화 오찬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누리고 있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그간 정부의 진상규명 활동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한편 민주주의와 인권의 새 장을 연 5·18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기 위한 현 세대, 미래 세대 관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법적 처벌을 받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됐다. 법적 처벌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처벌에 가까웠다”며 “당시에도 암매장, 집단 발포 등에 대해 문제제기, 증언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 같은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주의와 인권은 국민이 관심을 가질수록 더 넓게 열리는 사안이다. 반대로 무관심할수록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때문에 갈수록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새로운 장을 연 살아있는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폭력이나 권위주의에 힘들어 할 때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전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5·18을 떠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5·18은 오늘날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등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무처장은 “역사란 계승돼야 한다. 5·18이 던지는 메시지가 과거가 아닌 오늘날, 또 앞으로 우리가 중요한 나침반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며 “5·18에 관심을 기울이고 민주주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이 함께 논의하고 참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3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시행 1년 3개월 만의 성과다.

조사위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진실을 재구성하는 한편 어떠한 외압·편견에도 흔들리지 않고 국가의 사죄가 필요할 때도 이를 권유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을 굳건히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이정표이자 등대인 5·18을 잊고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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