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곽재우, 시(詩)에서 신선(神仙)을 욕망하다
[칼럼] 곽재우, 시(詩)에서 신선(神仙)을 욕망하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09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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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전에 소개했듯이 곽재우는 의병 활동으로써 충(忠)을 지키고, 조정의 옳지 않은 일에 관직은 물론 목숨까지 걸고 직언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의(義)를 지켰다. 이런 모습은 흔히 알려진 유학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에 반해 곽재우에게서는 말년에 은거하며 도교(道敎)의 신선이 되려는 모습도 나타났다. 특히 곽재우의 의병 활동 기간에 용모가 비슷한 사람에게 같은 옷을 입혀서 적중을 혼란에 빠뜨린 일종의 ‘분신술’을 쓴 것이나, 임진왜란 종전 후 그가 벽곡(辟穀), 즉 곡기를 끊으면서, 도인(導引)·토납(吐納)의 방술(方術)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탄핵당한 것은 곽재우가 신선이 되는 수련을 했다는 방증이 된다. 

그렇다면 곽재우가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한 모습을 다른 곳에서 찾을수는 없을까? 곽재우가 신선이 되려는 욕망을 가진 모습은 그의 시에서 드러난다.

곽재우의 시에서 드러나는 수련의 단계는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티끌 세상을 끊고 자연으로 돌아감[絶塵世 歸自然]’, ‘곡식을 끊고 정기를 키움[辟穀 養精氣]’, ‘걱정을 끊고 선도로 돌아감[忘憂歸仙]’의 세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1) 우선 ‘티끌 세상을 끊고 자연으로 돌아감’이 드러나는 시는 다음과 같다.

“티끌 세상 가운데 잘못 떨어져(誤落塵埃中)
삼천이나 드리워진 백발(三千垂白髮).
가을 바람과 야생 국화여(秋風野菊花),
말을 채찍질해 강월로 돌아가리라(策馬歸江月)2)”

곽재우는 신선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잊음’을 위해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곽재우는 세상사를 끊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곧 신선인데, 신선이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고 봤다.3) 이어 다음 단계인 ‘곡식을 끊고 정기를 키움’의 모습이 드러나는 시는 다음과 같다.

“단지 솔잎만 먹어도 배고프지 않고(無餓只在啗松葉),
오로지 옥천만을 마셔도 목마르지 않다(不渴惟憑飮玉泉).
고요함을 지키며 거문고를 타니 마음이 담담하고(守靜彈琴心潭潭)
창을 닫고 호흡을 조절하니 뜻이 깊어진다(杜窓調息意淵淵).
백년이 다 지나 갈 곳을 잃은 후(百年過盡亡羊後)
웃으며 돌아보면 응당 나를 신선이라 칭하리(笑我還應稱我仙)4)”

이 시는 곽재우가 말년에 권신(權臣)들로부터 탄핵을 당했을 때의 근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실제로 곽재우가 음식을 통해 신선이 되려는 수련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것은 신선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유학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대목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9년을 곡기를 쉬고 솥의 연기도 끊었는데(九載休糧絶鼎煙),
어찌 은명이 하늘을 따라 내리는가(如何恩命降從天)?
몸을 편안히 하자니 군신의 의를 저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安身恐負君臣義)
세상을 구제하자니 우화선 되기가 어려워지네(濟世難位羽化仙)5)

위의 시에서 ‘9년을 곡기를 쉬고’라는 대목은 선조 33년(1600년) 영의정 이원익의 파직에 항의하며 사직 상소를 올리고 무단으로 낙향한 후 유배형에 처해진 곽재우를, 광해군이 즉위한 해인 1608년 다시 불러올린 것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곽재우는 박식한 유학자로서, 나라를 지킨 의병장으로서, 그리고 신선이 되려고 은거하고 솔잎으로 곡기를 채우는 수련자로서의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아울러 현실과 이상 사이, 혹은 두 가지의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2020년을 살고 있는 현대인도 한 번은 부딪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곽재우에게서 한 가지 다른, 현대인이 부러워 할 모습은 바로 ‘걱정을 끊고 선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과 고뇌가 많은 이들에게 곽재우가 시를 통해 제시한 신선의 최종적인 단계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다.

“아래에는 긴 강이 있고, 위에는 산이 있으며(下有長江上有山), 
망우의 집 한 채는 그 사이에 있다(忘憂一舍在其間).
망우라는 신선이 근심을 잊고 누워있으니(忘憂仙子忘憂臥)
청풍명월이 사로 마주 대해 한가롭다(明月淸風相對閒)6)”


1) 조종업, 「망우당 곽재우의 사상과 문학: 망우당의 시연구」, 『동방한문학』, 제9권, 1993, 6쪽.
2) 망우당기념사업회, 『망우당곽재우연구(1)』, 망우당기념사업회, 1984, 60쪽.
3) 조종업, 「망우당 곽재우의 사상과 문학: 망우당의 시연구」, 『동방한문학』, 제9권, 1993, 6-7쪽.
4) 조종업, 「망우당 곽재우의 사상과 문학: 망우당의 시연구」, 『동방한문학』, 제9권, 1993, 9쪽.
5) 조종업, 「망우당 곽재우의 사상과 문학: 망우당의 시연구」, 『동방한문학』, 제9권, 1993, 10쪽.
6) 조종업, 「망우당 곽재우의 사상과 문학: 망우당의 시연구」, 『동방한문학』, 제9권, 199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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