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함께 할까요?” 무대와 객석의 극적인 만남...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
[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함께 할까요?” 무대와 객석의 극적인 만남...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0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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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트엔터테인먼트
<위대한 개츠비> 이기현, 홍륜희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상상 속에서 그리던 꿈의 공간, 개츠비 맨션의 파티 초대장이 드디어 서울로 날아왔다. 화려한 조명 아래 제이 개츠비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신사다운 모습과 정돈된 몸짓. 맑게 빛나는 눈빛엔 간절함이 담겼다. “데이지가 왜 제게 화를 내는지 알고 계세요?” 순간 잠시나마 집중되는 모두의 시선에 문득 나 역시 작품의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2015년 초연 이후 영국 공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흥행에 성공한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er) ‘위대한 개츠비’가 오리지널 프로덕션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한국에서 펼쳐진다. 뮤지컬도 연극도 아닌 이머시브 공연이라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법하다. 이머시브 공연이란 관객참여형 공연을 뜻하는 말로, 특히 체험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들의 취향과 맞물리며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는 공연 장르로 손꼽힌다. 공연은 ‘몰입하다’ 또는 ‘에워싸다’라는 의미답게 작품 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관객과 배우가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호흡하는 형식을 갖는다. 일반적인 공연의 경우 관객이 주로 수동적인 입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되지만, 이머시브 공연에서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미권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켜 온 공연 장르로, 그중에서도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가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전개가 워낙 즉흥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여러 가지 돌발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이머시브 공연의 특징이다. 배우들은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조절하며 자연스럽게 극을 이끌어가야만 한다. 따라서 여기에 적절한 호응이 뒤따라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될 수 있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은 공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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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공연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했던 1920년대 미국의 ‘재즈 시대(Jazz Age)’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굵직한 스토리 라인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원작소설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작은 부분들은 그날의 관객이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도록 구성했다. 오리지널 연출 알렉산더 라이트는 개막을 앞두고 “관객들이 마치 생활 속 모습처럼 자연스럽게 작품과 함께 하길 바라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유도할지를 두고 연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여러 면에서 자연스러움을 살리려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집중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바로 옆에 배우들이 와서 서 있기도 하고, 예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관객들은 작품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찰스턴 댄스를 배우고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출 수도 있다. 

개츠비 맨션으로 설정된 공연장이 일반적인 공연장과 다르다는 사실도 재밌다.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밀랍 인형 박물관인 그레뱅 뮤지엄에서 상연 중이다. 입장권을 받고 나면 자연히 개츠비의 드럭스토어로 향하게 되는데, 사실상 여기에서부터 몰입이 시작된다. 공연 시작 전에 이곳에서 먼저 간단한 샴페인 등 음료를 마실 수도 있고 동행과 담소를 나누다 올라갈 수도 있다. 이때 작품에 등장하는 일부 배우들이 먼저 나타나서 대화를 시도한다. 공연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하나쯤 준비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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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박성광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무대와 객석 간 경계를 허물면서 극대화된 현장감은 공연 몰입도를 확실하게 높였다. 공연은 피아노가 놓여 있는 중앙홀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따로 없이 대부분 스탠딩 형태로 관람하게 된다. 모든 관객은 제이 개츠비의 초대로 파티에 참석한 손님이 되어 직접 작품 속 등장인물 중 하나로 참여하게 되고 때로는 배우의 손에 이끌려, 때로는 주체적인 선택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일부 관객은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기도 한다. 곳곳에 따로 작은 방이 마련되어 있는데, 각 방에서는 동일 시점에서 모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어떤 인물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작품의 경험은 확연히 달라진다. ‘위대한 개츠비’가 원작소설과 영화로도 워낙 익숙한 작품이어서 둘 중 하나라도 먼저 본 관객이라면 흐름을 이해하기 더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탄탄하게 구성을 해두었기 때문에 서사의 흐름을 놓치는 일은 없다. 만약 어떤 질문을 받았는데 원작을 보지 못해 답변에 자신이 없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느 방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만 16세 이상 관람가이지만 보호자 동반 관람 입장 제한이 있는 만큼 다소 선정적인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주인공의 서사에만 집중하기보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에 골고루 관심을 두는 것이 전체적인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위대한 개츠비 박정복, 이서영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위대한 개츠비> 박정복, 이서영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를 더욱 ‘위대하게’ 만든 바탕에는 역시 배우들의 눈부신 열연이 있었다. 작품 특성상 무대 이동이 잦은 데다 모든 관객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연기를 하면서 관객들까지 챙겨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개츠비’의 배우들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둔 채, 여전히 그 선을 넘기 두려워하는 관객의 손을 아주 가볍게 끌어당긴다. 특히 제이 개츠비와 데이지 뷰캐넌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향하는 장면은 관객과 배우가 모두 한마음으로 숨죽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명장면이다.    

몰입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드레스 코드에 맞는 의상을 준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공연장에는 ‘위대한 개츠비’와 어울릴 만한 파티 의상이나 당시 유행했을 만한 소품을 준비해 온 관객 비중이 높았다. 의상이 너무 화려하거나 계절에 맞지 않아 고민된다면 공연장 입구에 외투나 짐을 따로 보관해 주는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홀로 공연을 즐기는 관객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파티를 중심으로 한 관객참여형 공연이다 보니 아무리 혼공에 익숙하다 하더라도 부담이 앞설 수 있다. 하지만 다 같이 낯선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참여하기에도 수월하고, 새로운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어 감상에만 집중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이 종종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기 때문에 잠시나마 느낄지 모를 어색함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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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이기현, 이종석, 홍륜희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다만 공간구성에서 비롯된 한계는 분명하다. 사치와 향락으로 가득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개츠비 맨션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던 터라 이 부분만큼은 짙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이머시브 공연이 아직 한국에서 크게 활성화된 단계가 아니어서 적합한 공연장을 찾기 어려운 데다, 제한된 단층 무대 위에 개츠비의 대저택을 실감 나게 구현하기엔 여러모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 같은 공연이 더 많은 인기를 끌어 점차 일반적인 공연으로 자리 잡고, 공간 제약만 덜해진다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위대한 개츠비’를 말할 때면 늘 그를 위대하다 일컫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삶의 가능성과 불타는 열망, 사랑과 탐욕으로 얼룩진 시대의 인간상을 실감 나게 연기한 배우들이 작품의 위대함을 부각시켰다. 무대 위로 초대된 관객은 색다른 경험을 통해 기존과 확실히 다른 차원에서 작품을 경험한다. 익숙한 장르가 아니다 보니 연령대나 취향에 따라 느낀 바는 각각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새로운 공연의 등장은 다가올 변화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이 같은 시도와 흐름이 계속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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