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시집 출간한 노작홍사용 문학관장 손택수
등단 이후 20년 만에 첫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 출간
동시, 아이들 전유물 아닌 순수한 문학이라 할 수 있어
‘동시 운동’의 본질적 의미 찾으며 명맥 이어가고파

손택수 시인 ⓒ씨즈온

【투데이신문 박수빈 기자】 여느 겨울이었다면 길가에 놓은 세숫대야에 어쩌다 고여 버린 물이 뿌옇게 얼어있어야 했을 것이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들은 아마도 얼음 결정이 되어 피우지도 못한 봉오리 끝에 들러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혹은 안타까움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이런 겨울은 잠시 시간을 들여 ‘회상’해야 할 것 같다. 발가락 끝, 아린 통증까지 뇌리에 아련히 새겨버린 매서운 겨울이 올해는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과는 너무 달라진 이전의 감상은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다.

체감할 수 없으니 기억이라도 돌이켜 볼 참이면 흐릿한 아쉬움만 찝찝하게 남는다. 당시의 생생했던 고충은 이미 눈에 대한 몽환적 환상으로 덮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회상하기에도 멀어져버린 기억은 이내 괴리감을 남길 테지만, 온전히 나만의 상상으로 다시금 현실을 바라보게 만들어 버린다. 시가 그렇다. 누군가 말하기를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모두 시인이라 했다. ‘동시’는 더 그럴 것이다.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어느 순간의 나의 감정과 마주해볼 수 있는 그런 감명의 순간. 

노작홍사용 문학관 손택수 관장은 누가 봐도 엄연한 어른이다. 문학을 전공해 대학원 석사까지 마친 그는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끊임없이 문학상을 수상한 능력 있는 어른임이 분명하다. 구두닦이 일을 하다가 돌연 대학교에 입학해 현재 기관장에까지 이른 그의 모습은 훌륭한 어른의 본보기가 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 그가 동시집을 냈다. 문학관장을 지내는 유명한 문학인, 나에게는 아마도 고리타분한 안경잡이가 아닐까하는 상상을 안겨준 인물이기도 하다. 나의 상상은 완전히 틀렸다. 문 뒤에 서있던 중년의 미남은 시 설명에 열변을 토하면서도 침착한 음성으로 조심스런 낭독도 이어갔다. 잠시간의 이야기가 마친 후 마주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써 보았다며 조심스레 책 한 권을 내민다.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이 혼자 놀기 좋아하던 스스로를 그린 감상을 언뜻 엿볼 수 있는 하늘색의 작은 동시집.

고리타분한 문학관장을 그린 나의 상상을 깨부수고 마주한 미 중년의 시인은 차분히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늘 동시집을 써왔다고 수줍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신간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의 저자인 시인 손택수. 그와 다소의 아련함을 공유하며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다. 

손택수 시인 ⓒ씨즈온

Q.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를 출간했다.

원래 시와 동시로 같이 등단했다. 이후 시인으로 활동을 이어오다 20년 만에 동시집을 발간했다. 일반 사람들은 ‘동시’를 아이들이 쓰는 유치한 시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동시는 시의 고향이기도 하다.

Q. 독자들은 ‘동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동시를 논할 때 우리는 ‘동심’을 생각한다. 동심이란 곧 시의 오래된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한번 즈음은 오래된 미래를 향해 내 자신의 감상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심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드는 한편,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각성케 하는 실마리가 된다. 이번 출간한 동시집은 개인적으로도 여태까지 이어온 작품 활동의 한 마디를 짓는 경험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나무는 마디에서 새 가지를 뻗어나가지 않나? 동시집을 냈으니 나 역시 새로운 가지를 뻗어나갈 귀한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Q. 제목이 다소 특이한데.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한눈팔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집중하면서 공부하라는 의미였을 테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하면 맹목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더 고역이고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 한눈을 많이 팔아야 창조적인 아이가 될 수 있다.”고 얘기했던 노벨상 수상 과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Q. 아이들이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한눈 팔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동시에 방황해도 죄책감 없을 자유를 말하고 싶다. 어른들의 관점에서 보면 산만하고 집중력도 없는 아이로 치부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입장은 다르다. 사회의 기성관념이 가리키는 방향대로만 바라보고 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이다. 각각의 다른 방향과 질서들은 다른 꿈들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잘 살고 부자가 되고 취직을 잘 할 수 있는지 등을 척도가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해야 한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어린 아이들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동시에 빠져 집필해봤다.

Q. 보통 ‘시’는 화려한 문장과 표현이 중요할 것이라 착각하게 되는데, 동시에서는 어떤지.

‘유치’한 것들이 ‘찬란’을 만든다. 흔히 ‘유치찬란’이라는 말도 이렇게 나온 말이 아닐까. 유치한 것은 본질적인 메시지에 더욱 가깝다. 우리가 어디에서 뻗어왔는지, 마음의 원형이 어디에 닿아있는지에 대한 본연의 가치를 생각게 한다. 

동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생각 없이 써내려간 말장난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동시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원형에 가까운 본질이다. 그리고 ‘시’역시 문장이나 표현의 기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높은 수준의 시에서 보이는 화려한 문장력에 멋을 느끼고 그게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시는 마음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시는 역 방향으로의 진화다. 앞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시를 정할 때 가장 적합한 장르가 바로 동시다. 동시는 잃어버린 것들을 추억하고 회상함으로서 거울을 통해 지금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Q.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는 누구를 위한 책인가.

책을 구성하면서 관심을 두었던 대상은 당연히 ‘어린이’ 독자다. 어린이 독자들에게 동시를 읽혀봤을 때 아이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생각해서 엮어봤다. 의외로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더라. 아마 아이들과 늘 함께하며 생각을 하는 분들이기에 동심을 이해하기 쉬운 이유일 것 같다.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대로 읽어나가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한 부분이다. 

Q.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악동일기’는 어른들과 사회의 위선을 부끄럽게 만드는 아이들의 ‘순수한 악’을 주제로 해봤다. 보통 ‘악동’이라는 표현에 죄스런 ‘악’이 아닌 천진난만함을 상기시키지 않나. 오히려 아이들의 ‘악의’없는 행동들이 가지는 특징들이 있다. 다만 이를 사회, 어른들의 시선에서 보자면 순수한 ‘악’이라 풀이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일상’을 주제라 한 2부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았고, 3~4부까지는 고민을 던지는 장으로 구성했다. 언어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상투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어린이들의 천연덕스러운 창발성을 재미나게 그려봤다. 마지막 5부는 유년시절 겪었던 스스로의 에피소드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Q. 작품의 집필 과정에서 어떠한 감상을 떠올리셨나.

크게 ‘실향체험’과 ‘이별체험’을 경험했던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시인은 귀향의 도정위에 서있는 존재가 시인이다”라고 했다. 현대인들은 모두 고향을 상실했기에 언제나 ‘귀향’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장소로서의 고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로서의 세계가 바로 ‘고향’이다. 시인들은 독자들을 대신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동시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순수한 회귀의 형태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고향은 아름다운 자연과 지켜야 할 사람이 있을 세계이다. 이런 향수를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실향’의 아픔과 ‘귀향’의 간절함을 동시에 담고 싶었다. 

‘이별체험’ 역시 같다. 이별은 고통스럽고 부정적인 감정이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매우 아름다운 경험이기도 하다. 이별이 우리에게 늘 ‘그리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리움 속에서 우리는 투쟁이나 고통이 아닌 무언가를 향한 간절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그릴 수 있다. 맑은 그리움은 내가 잃어버린 유년만이 아니라 인류가 상실한 세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손택수 시인 ⓒ씨즈온

Q. 말씀을 듣고보니 동시는 꽤나 심오한 문학인 것 같다. 

사실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아동문학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었다. 나라를 상실한 시기,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역사를 거쳐 왔다. 당시의 아동문학은 늘 ‘결핍’을 앓고 있었다. 결핍은 작가를 절망에 빠뜨린다. 그 절망은 당시 최고의 문학이 탄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것이 시인들의 ‘동시 운동’을 의미 있게 이어올 수 있었던 큰 이유다. 1930년대 ‘정지용’, 40년대 ‘윤동주’, ‘박목월’, ‘정지원’, ‘백석’ 등 역사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시인들도 모두 동시를 써오면 순수함에 대한 감상을 전해왔다. 2000년대 이후 다시 시작된 동시 운동이 문학사적으로 바라볼 때 매우 드문 사례로 나 역시 그 일원으로 의미를 함께 남기고 싶다. 

Q. 동시 운동과 ‘한눈파는 아이’의 의미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유희 정신과 어른들의 계몽정신을 기준으로 한다. 계몽정신이 너무 강해지면 아이들의 동심을 순치시켜버릴 수 있다. 자연스럽지 않음은 이런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적절히 조화될 때 좋은 아동문학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의 첫 동시집인 ‘한눈파는 아이’이 그런 원대한 역할을 할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독자들과 소통하며 감정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집필한 만큼, 책이 많은 의미를 담고 전해졌으면 좋겠다. 

Q. ‘한눈파는 아이’를 한 마디로 정의 내려 보자면.

“아직 오지 않은 손님을 위해서 쓴 책” 이라고 하고 싶다. 아이와 함께 꾸려지는 가정에 대한 희망과 간절함은 나에게 아쉬움이자 그리움이자 간절함이다. 언젠가 우리에게 올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먼저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또 그 마음이 많은 어린이들에게 공감을 던지며 흥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Q.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시를 읽어야 할 대상은 사실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이다. 동심을 되찾을 때 본질적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동심이라는 보물 상자를 발견 하게 될 때 우리는 물질적인 의미를 넘어 가치적인 기준의 ‘잘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어른들이 보물을 애지중지 하듯 동심을 품었으면 좋겠다. 자신 안에 어린이를 발견한 어른들이 아마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에서 이 해답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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