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동일성 혼동할 수 있다”…‘비례’ 사용 불허한 중앙선관위
반발하는 한국당 “후보 명칭 여러개 있어…창당에 차질 없다”
자유한국당 지지층·보수층, 선관위 결정에 반대
경계하는 민주당, 원내1당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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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지난해 연말 선거법 개정안 통과와 함께 자유한국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대책으로 내세운 비례전담 위성정당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이 무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당’이라는 당명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리면서다.

여야 4+1협의체의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며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을 공언해온 자유한국당은 이 같은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불허결정으로 지역구는 자유한국당, 비례대표는 비례자유한국당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총선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러나 ‘비례자유한국당’이라는 명칭만 불허된 가운데 위성정당 창당 자체에는 지장이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21명 이상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위성정당으로 옮겨가 원내 제3당을 만들어 자유한국당은 지역구 투표지에서, 위성정당은 비례대표 투표지에서 각각 2번째 칸을 차지하겠다는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례○○당’에 제동 건 선관위

중앙선관위는 지난 1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전체 위원회를 열고 정당명칭으로 ‘비례○○당’ 사용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등록된 정당의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아 정당법 제41조(유사명칭 등의 사용금지) 제3항에 위반된다는 설명이다. 중앙선관위는 유권자들이 정당의 동일성을 오인·혼동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중앙선관위는 ‘비례’라는 단어에 대해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어떠한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려워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며 “비례라는 단어와의 결합으로 이미 등록된 정당과 구별된 새로운 관념이 생겨난다고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유권자들이 ‘비례○○당’의 ‘비례’의 의미를 지역구 후보를 추천한 정당과 동일한 정당으로 인식할 수 있는 후광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기성정당 명칭에 ‘비례’만을 붙인 경우, 언론보도, SNS, 유튜브 등의 매체와 얼마 남지 않는 총선 선거운동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이 기성정당과 오인·혼동할 우려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한 무분별한 정당 명칭의 선점·오용으로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와 유사명칭 사용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혼란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등 선거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비례민주당, 비례한국당, 비례자유한국당 등 13일 현재 중앙선관위에 결성신고·공고된 당명의 경우에는 정당법에 위반되지 않는 다른 명칭으로 정당 등록신청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당 “위성정당 창당에 차질 없다”

이 같은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자유한국당은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당명을 통한 위성정당 창당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13일 “지난해 12월만 해도 비례정당 창당이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관위 해석이었다”며 “어제는 합법, 오늘은 불법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급조한 핑계로 정당설립의 자유를 대놓고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국민들의 선택을 왜곡하는 누더기 선거법이 날치기되는 동안 침묵하며 본연의 임무를 방기한 것이 선관위”라고 대립각을 세웠다.

심재철 원내대표도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관위는) 지난해 말 ‘준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이 통과되면 어쩔 수 없이 비례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그러나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정권이 압박하자 선관위마저 권력에 굴복했다”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선관위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권 편들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공정한 선거관리는 기대하기 난망’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며 “비례정당을 만드는 게 잘못됐다고 지금 얘기하고 있는데 애시 당초 온갖 편법으로 누더기 괴물선거법을 만들 때, 게임의 룰을 바꿀 때 선관위는 왜 침묵하고 있었는가”라고 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우리공화당 창당 당시에도 유사 당명이 존재했다면서 “다른 사례를 비교해 봐도 이것은 일관성을 상실했다”라고 날을 세웠다. 더불어 “그런데도 ‘비례’ 글자를 선관위가 멋대로 해석해 불허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선관위가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데 대해 그 책임을 추궁해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 당이 생각하고 있는 비례정당 후보 이름은 아직도 많다”며 위성정당 창당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자유한국당 김재원 정책위의장도 14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어차피 정당의 명칭은 지금도 가칭이기 때문에 지금 설립 과정에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며 “이미 후보 명칭이 여러 개가 준비돼 있기 때문에 정당 설립에 차질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중앙선관위의 결정에도 위성정당 창당에 지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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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통합 후 ‘자유한국당’을 위성정당으로?

현재 진행 중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를 통한 보수통합도 위성정당의 명칭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통추위는 앞서 지난 10일 출범 당시 밝힌 합의문에서 ‘대통합 정신 실천할 새로운 정당 창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보수혁신위원장이 주창한 보수재건 3원칙 가운데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자’를 받아들인 것으로, 통추위를 통한 보수통합이 순항할 경우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이 주축이 된 새로운 보수정당이 탄생하게 된다.

이 경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자유한국당을 위성정당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안도 제시된 상태다. 자유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은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통합신당을 창당한 이후에 기존에 자유한국당을 비례대표 정당의 이름으로 쓸 방안도 모색 중에 있다”며 “그런 구상도 대안 중에 하나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통합논의가 삐끗할 경우엔) 또 다른 방식의 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며 “위성정당은 반드시 만들어야 된다는 의지가 강하다”라고 강조했다.

“꼼수 철회하라”…한목소리 내는 여야

중앙선관위의 불허 결정에 대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는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 전략에 거듭 경고를 보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정당법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며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선택을 기만하고 왜곡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꼼수 위성정당 ‘비례자유한국당’ 설립 구상을 철회하고, 정책과 인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정정당당한 정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도 “자유한국당은 입법부의 구성원으로서 법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에 부끄러움을 알라”며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기이한 정치 집단인 ‘'탈법정당' 이제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라고 질타했다.

대안신당 김정현 대변인 역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촉발된 ‘비례OO당’ 논란은 꼼수 중의 꼼수에 불과하다”며 “정치개혁의 대의에도 맞지 않고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괴하다. 제1야당이 이런 식의 꼼수정치 대열에 합류한다는 것 자체가 자유한국당이 개혁대상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명칭의 유사성 정도와 관계없이 자유한국당이 창당하려는 위성정당은 그 정당의 본질이 ‘위장정당’이자 ‘가짜정당’이므로 향후 선관위는 창당 등록을 수리 거부해야 한다”며 “위장정당·하청정당의 탄생 시도를 막기 위한 선관위의 단호한 결정이 뒤따르길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애초 개혁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국민을 우롱하는 비례자유한국당 시도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며 “중앙선관위가 유사명칭 사용금지 조항을 들어 비례OO당 명칭을 금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불필요한 논란과 여론 혼란을 미리 방지한 뜻깊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통해 자유한국당 등 보수 통합을 논의하고 있는 새보수당 정병국 의원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개인적으로 정부·여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이 꼼수로, 편법적으로 선거법을 통과시켰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꼼수나 편법으로 대응하는 건 맞지 않다. 우리는 원칙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13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 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13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 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념에 나뉜 여론

이번 중앙선관위의 불허 결정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잘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지지층과 보수층에서는 ‘잘못했다’는 의견이 다수로 나타나 이념에 따라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15일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잘된 결정’이라는 의견이 52.8%(매우 잘된 결정 33.8%, 대체로 잘된 결정 19.0%)로 나타났다. ‘잘못된 결정’은 33.9%(매우 잘못된 결정 21.5%, 대체로 잘못된 결정 12.4%)로 조사됐고, ‘모름/무응답’은 13.3%였다.(14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1만695명에 통화 시도, 최종 501명 응답, 응답률 4.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지지정당별로는 민주당(잘됨 79.9% vs. 잘못됨 9.2%), 정의당(77.7% vs. 15.6%), 무당층(40.6% vs. 35.1%)에서 ‘잘된 결정’이라는 응답이 다수이거나 높았다. 반면 자유한국당(17.8% vs. 68.9%)과 새로운보수당 지지층(36.9% vs. 55.4%)은 ‘잘못된 결정’이란 평가가 많았다.

이념성향별로도 진보층(잘됨 76.5% vs. 잘못됨 15.4%), 중도층(49.5% vs. 39.5%)은 ‘잘된 결정’이란 평가가 다수였으나, 보수층(잘됨 29.0% vs. 잘못됨 55.3%)에선 ‘잘못된 결정’이란 평가가 과반을 넘겼다.

이처럼 이념에 따라 선관위의 불허 결정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면서 자유한국당 지지자와 보수층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명칭과 상관없이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전략이 상당 부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위성정당의 여파는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도 이러한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전략의 파급력을 경계하고 나섰다.

이 원내대표는 1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시대정신하고는 명백하게 역행하는 흐름”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에서 위성정당을 추진하면 국민의 30% 범위 안에서는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5% 정도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동해 위성정당을 선택하면 비례대표 의석 47개 중에 절반 혹은 그 이상을 결과적으로 자유한국당이 획득할 수도 있다고 본다”며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한 20석 가까이 대승을 해도 비례에서 역전되면 1당의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본다”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근간에서부터 흔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향후 제1당의 문제, 국회의장을 비롯한 주요 리더십의 구성 문제, 정국 전반의 주도력과 관련해 국회의 역할에서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며 “그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우려했다.

이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서는 “저희 스스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통해 선거제도의 개혁, 정치개혁의 물꼬를 텄다고 이야기한 부분들과 충돌하지 않느냐”라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민들께 지혜를 구하고, 현명한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중앙선관위의 ‘비례○○당’ 불허 결정과 함께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는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며 창당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위성정당 구성 의지에는 변함이 없는 가운데 오는 21대 총선에서 처음 실시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와 이를 정조준한 위성정당 전략에 따른 여야의 희비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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