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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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경찰관 살해, 부천 노인 폭행 사건 등으로 주취감형 폐지 논란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지난 1일, 경기 부천시 심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70대 노인이 30대 청년에게 폭행을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인 35세 남성은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던 78세 피해자를 폭행했다. 가해자는 폭행을 피하기 위해 아파트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피해자를 쫓아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피해자는 코뼈, 눈뼈, 척추가 골절되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2월 14일 한 경찰관이 친구의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살해된 경찰관의 아내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로 인해 감형되는 일이 발생해 피해자와 유가족이 두 번 살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두 사건 가해자는 모두 경찰 조사에서 범행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가해자의 태도에 ‘주취감형을 받으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주취감형이란 만취 상태로 범행한 피해자에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 제10조 제2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만취 상태를 심신미약 상태라고 보고 감형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성범죄는 주취감형 제외…일반 형사사건엔 적용 안 돼

지난 2017년 11월, 아동을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이 2020년 12월 출소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취감형 폐지를 건의하는 청원이 올라와 21만6774명의 동의를 얻었다.

조두순은 1심에서 징역 15년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범행 당시 만취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돼 징역 12년형으로 감형 받았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에게 주취감형이 적용되자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이 같은 청원에 청와대는 “형법 제10조 제2항은 음주뿐만이 아닌 일반적 감형규정이기에 이를 바로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조두순의 사례로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범죄를 범한 경우 감경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됐다”도 답했다.

청와대의 답변처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지난 2010년 개정돼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경우 주취감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성폭력범죄에만 적용될 뿐 일반적인 형사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형사사건의 경우 범행 후 술에 취해 범행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감형을 받으려는 경우가 있어 주취감형에 대한 비판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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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만 주취감형…가중처벌 도입 어려워

해외의 경우 주취감형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과 법체계가 유사한 일본을 제외하면 주취감형을 인정하는 나라는 없고, 오히려 가중 처벌하기도 한다.

미국·영국 등은 주취를 감형사유로 삼지 않는 원칙이 뚜렷하다. 독일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할 만큼 자제력을 잃고 범행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음주 또는 마약 복용 후 발생한 범죄에 대해 가중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취감형 폐지와 함께 주취가중처벌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술에 취해 범행한 경우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어 형법의 기본 원칙인 책임주의에 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형법 제10조 제3항은 범죄 가능성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 감형할 수 없도록 정해 무분별한 주취감형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주취감형이 국민 법감정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큰 만큼 이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취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과 함께 국민 법감정에 맞는 양형기준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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