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방안 통해 2021년 하반기 품목 확대 제시
복지부, 안전상비 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개최 예고…8년째 품목 그대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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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세기 기자】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상비약 품목이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8년만에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약사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품목 확대에 찬성 입장이어서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2012년 11월부터 국내 편의점에서는 상비약을 팔 수 있도록 허용됐다. 하지만 실제 판매되고 있는 품목이 규제에 묶여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이나 감기약 판콜에이, 소화제 베아제, 제일쿨파스 등 13품목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확대 가능성에 포문은 연 곳은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위가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방안’을 통해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을 오는 2021년 하반기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안전상비 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개최를 예고했다. 안전상비 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는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상비약 품목을 조정하는 회의로 지난 2018년 8월 이후 2년여만에 처음 열리게 된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가 시작된 이후 2017년과 2018년에 모두 6차례에 걸쳐 상비약 품목 조정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약사회 등 약사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품목을 늘리지 못한 만큼 올해 회의가 열린다 하더라도 품목이 확대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약사단체, 의약품 부작용 우려…“확대 반대”

대표적인 약사단체인 대한약사회는 의약품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약사회에 따르면 정부에서 추가 확대하고자 했던 품목인 지사제 ‘스멕타’를 언급했다. 스멕타는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안전성 서한을 받았다. 미량의 납 함유 가능성이 있어 만 2세 이하의 소아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프랑스 국립의약품건강제품안전청의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판매 중인 타이레놀의 간 독성 부작용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과다 복용 시 간 손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작용에 대해 국회도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18년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를 통해 현행 안전상비약 13개 품목이 하루 1건 꼴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어 안전상비약 품목확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또 다른 약사단체인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공정위의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발언에 대해 “공정위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약준모는 “일반의약품은 일반적인 공산품으로 취급하면 안 되는 의약품인데도 공정위가 지난 수년동안 의약품 상품화에 관여해 왔다”며 “이는 본인들의 역할을 벗어난 행태다. 이번에 확대하고자 하는 품목도 약사 사회에서 우려를 표명해온 의약품이다. 정확한 복약지도 없이 복용 시 타 약물과의 상호작용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음에도 충분한 근거 제시도 없이 일방적 통보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편의점 품목확대는 보건복지부 산하 지정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는데 공정위가 전혀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본인들의 의사를 통보했다”며 “본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반건강적인 월권행위를 멈추고 소비자 보호와 같은 본인들 직무에 충실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 “편의점 판매 의약품 품목 확대해야”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소비자 시민단체는 상비약 품목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고 있다. 기존에 팔고 있던 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류 등의 품목 외에 추가로 제사제, 지사제, 항히스타민, 화상치료제, 소독약 등도 편의점 상비약에 추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실련은 지난해 약사회가 편의점 판매약 확대 반대 궐기대회를 개최하자 이에 대해 성명을 내고 “약사회가 궐기대회에서 주장한 편의점 판매약 확대 저지는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과 편리성을 가로막는 약사회의 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실련은 “정부도 약사회에 대해 유약한 태도로 갈등을 키우지 말고 국민을 위해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며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조정 심의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의약품 재분류 등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의약품들이 특정 회사의 특정 제품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정거래에 위반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열 진통제는 타이레놀 외에도 다양한 진통제가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진통제는 타이레놀 4품목과 어린이부루펜시럽 1품목뿐이다.

따라서 비슷한 효능과 효과를 보이는 약들도 상비약으로 지정해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시민단체·약사단체 ‘시끌’…제약업계는 ‘조용’

편의점에 상비약을 납품하고 있는 제약업계는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조용하다.

익명을 전제로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에서는 입장을 내기에 부담스러운 주제다”라며 “의료단체나 약사단체에 언제나 을인 제약사가 괜히 입장을 냈다가 후폭풍이 불 수도 있다”고 조심스런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나름대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과 약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의 성분량을 조절하거나, 일반의약품에 쓰이는 성분을 빼고 의약외품으로 제품을 만드는 등 차별을 둬 부작용 이슈와 약사단체들의 반발을 피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타이레놀의 경우 성분은 다르지 않지만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8정이 담겨 있고 약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10정이 담겨 있다. 이는 아세트아미노펜 1일 최대 권장량인 4000mg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또 동아제약이 판매하고 있는 감기약 판피린은 약국과 편의점에 납품하는 제형이 다르고, 성분도 아세트아미노펜의 함량은 300mg으로 동일하나 클로르페니라민말레산염 등에서 차이가 난다.

동화약품의 감기약 판콜은 편의점에선 판콜에이내복액, 약국에선 판콜에스내복액으로 분리해 납품하고 있다. 둘다 액상으로 제형은 같으나 판콜에이는 펜톡시베린시트르산염과 페닐에프린염삼염이 들어있고, 판콜에스에는 dl-메틸에페드린염산염이 함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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