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변종의 늑대’ 저자 김영록 작가
표준이 사라진 시대, ‘야생성’의 부상
바이러스처럼 변화하는 스타트업 ‘변종’들
규제가 변종 늑대들의 성장 가로막아

김영록 작가 ⓒ씨즈온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쪽방에서 시작한 작은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세계 경제의 판을 흔들고 있다. 바야흐로 스타트업이 경제 산업을 이끄는 시대다. 이들은 혁신적인 기술로 기존의 기업들이 보지 못했던 영역을 파고든다. 지나칠 수 있던 일상의 불편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플랫폼을 장악해 빠르게 성장한다.   

스타트업 생태학자로 불리는 김영록 작가는 최근 스타트업 시장은 표준이 사라진 시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기존의 예측과 가치관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인물들을 ‘변종의 늑대’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4차산업혁명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변종들과 야생성을 키워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가 최근 발간한 도서  ‘변종의 늑대’ 에는 이 같은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투데이신문>은 김영록 작가를 만나 현재 스타트업을 이끄는 것은 누구이며 경영 환경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갈지, 그리고 미래의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건축가에서 스타트업 전문가로

Q. 현재 대표로 있는 넥스트챌린지는 어떤 곳인가.

넥스트챌린지는 재단법인으로 2019년에 중소벤처기업부의 허가를 받았다. 엑셀러레이팅(Accelerating)과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이 재단의 주요 역할이다. 엑셀러레이션은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맥 등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초기 지원을 일컫는 인큐베이팅(Incubating) 다음 단계에 이뤄진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서울청년창업사관학교 9기에서 137개 스타트업의 엑셀러레이팅을 진행했다. 

Q. 공공기관과 다양한 협업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시 기술창업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제주 서귀포시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대전_KAIST 실패 및 재도전 자문위원, 중소벤처기업부 중소벤처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 총괄책임 등을 맡았다. 최근에는 제주도를 오가며 제주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Q. 건축가에서 스타트업 교육 전문가가 됐다. 변화의 계기와 이유가 있다면.

건축업에 오래 종사하면서 업계 문화에 한계를 느꼈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아무런 기반 없이 서울로 올라왔고 대안학교인 융합인재 사관학교를 세워 3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교육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스스로 광야에 던져져 압축적인 경험을 쌓으며 그 중요성을 더 절감했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학생들의 65%가 현재 없는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부모의 직업을 토대로 자신의 직업을 상상했던 시대가 저문 것이다. 지식 위주의 교육이 아닌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고 생존력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타트업은 그런 야생성을 배우기 위한 훌륭한 학교가 될 수 있다. 

김영록 작가 ⓒ씨즈온

시장을 교란하는 변종의 출현

Q. 혁신성을 가진 스타트업을 ‘변종의 늑대’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나.

지난 10년간 정말 많은 스타트업들을 지켜봐왔다. IT기업들이 모인 판교에서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그들은 무리동물인 늑대처럼 팀을 이뤄 서로 정보를 나누고 교감한다. 또 사냥을 하듯 기존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환경을 파괴하고 교란한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변종’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의료체계를 위협했던 아프리카돼지열병이나 메르스처럼 백신이 통하지 않는 돌연변이로 성장한다. 변종의 장악력이 폭발하는 시점이 오면 기존 기업들은 대응할 틈도 없이 잠식된다.  

Q, ‘변종의 늑대’들이 과거 기업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과거는 계획과 예측이 가능한 시대였다. 경영은 제품, 생산, 판매를 계획하고 이를 이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경영 과정에서 다소 불합리한 문화가 있어도 용인됐던 이유다. 계획과 예측을 기반으로 매출을 올리면 유지가 가능했고 판매량을 어림잡아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계획과 예측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지난해 데이터가 올해 통하지 않고 작은 기업들이 대기업의 위치를 위협한다. 변종의 늑대들은 이 같은 흐름에 최적화돼 있으며 판을 뒤집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Q. 저서에서 언급한 이른바 ‘판교족’을 새로운 변종으로 보면 되나.

판교족은 확실히 변종의 기질을 갖고 있다. 판교족과 대비되는 것이 이른바 공시족인데 안정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현상이기도 하다. 반면 판교족은 자기 주도성을 특성으로 갖는다. 직접 가치가 있는 것을 찾고 분야를 선택한다. 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특히 좋아하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이러한 덕질이 창업의 밑거름이 된다. 최근의 스타트업은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목격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경우가 많다. 즐거움을 좇아 움직이는 게 기성의 관점에서는 가치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재미가 창업으로 이어지면 사업이 빠르게 추진된다. 

Q.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과거의 덕목이 여전히 유효한가.

외부의 많은 지원이 있지만 여전히 외롭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라는 게 새로운 스타일의 업무 방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실패가 있고 위험이 있다. 지금의 대기업들도 초기에는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광활한 기회에서 노력과 분투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덕목은 오늘날의 스타트업 기업가에게도 요구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스타트업 환경

Q. 스타트업을 비롯한 기업 환경은 어떤 양상으로 변해갈까.

과거에는 5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이 1조원에 도달하는데 평균 20년이 걸렸다. 스타트업은 어떨 것 같은가.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중 23곳은 2년 안에 시가총액 1조원을 달성했다. 반면 2000년 이후 500대 기업에 포함됐던 절반은 사라졌다. 경제적 빅뱅이라 부를만하다. 스타트업들은 현재 기업의 생태계를 진화시키고 있으며 이 같은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속도만이 아니다. 경영방식 역시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형태로 출현할 수 있다. 실제 국내 최대 배달앱인 배달의민족은 직접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다. 거칠게 말해 전단지를 모아 플랫폼에 제공했을 뿐인데 기업가치가 4조7000억원으로 평가 받는다. 에어비앤비 역시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고 페이스북도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다. 

Q. 국가적 차원에서 주목해야할 스타트업 강국이 있을까.

그동안 프랑스, 인도,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많은 나라들이 스타트업 강국으로 떠올랐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사례에 주목할만하다. 에스토니아의 면적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고 인적 자원도 부족했다. 이 나라가 스타트업 성지로 부상할 수 있던 건 정부의 역할이 컸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러시아 독립 이후 IT기술과 스타트업에 주목, 규제의 장벽을 대폭 낮췄다. 먼저 전자영주권을 도입해 한화 13만원정도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법인세율 역시 0%로 낮췄다. 창업을 하는데 30만원 가량의 비용과 15분의 시간만 있으면 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었고 스타트업이 몰리니 민간 투자금 역시 집중됐다. 이 가운데 디지털 교육이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사람들이 IT기술 혁신과 창업에 대한 환경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Q. 국내의 환경은 어떤가.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최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많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규제가 가장 아쉽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다. 앞서 말한 에스토니아가 스타트업 강국으로 부상한 이유는 기존의 전제들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완화 노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도 해결해야할 문제다. 각 지자체에 스타트업을 담당하는 곳이 있지만 새로운 용어들과 현재의 흐름들을 파악하고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1명이 있을까 말까다. 정부 및 지자체와 협업을 해오면서 그런 한계들에 여러 번 부딪혔다. 정치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규제와 관련한 쟁점이 있을 때 스타트업에 대한 중요성 인식과 통찰력을 갖고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데 지자체 의회에서 막히는 게 현실이다.

김영록 작가 ⓒ씨즈온

스타트업, 미래성장의 새로운 동력

Q. 스타트업을 미래성장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교육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 것 같다. 

세계적인 교육기관으로 꼽히는 미네르바 스쿨이라는 곳이 있다. 하버드 대학보다 더 들어가기 어렵다는 곳인데 이곳의 교육은 강의실에서 이뤄지지 않고 전 세계 기업현장에서 이뤄진다. 수업은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학생들은 세계 각국을 돌며 IT회사와 연계된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험을 쌓는다. 4년가량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교육방식과 비교해 어느 쪽이 더 압축적으로 성장할지는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Q. 직접 교육기관을 설립할 계획은 없는지.

미네르바 스쿨 같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다. 실제 2020년 넥스트챌린지스쿨이라는 이름의 대학이 설립될 예정이다. 교육의 대부분을 스타트업에 집중하며 9개국을 옮겨 다니며 공부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마련할 계획이다. 스타트업을 통해 생존의 지혜를 경험토록 하고 졸업 후 스타트업 창업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Q. 스타트업 생태학자라고도 불린다. 앞으로의 목표 역시 교육을 넘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있나.

건축가로 살아온 10년의 경험이 있고 교육기업과 한양대학교 글로벌기업가센터 교수로 재직하며 키워온 비전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 지역에서 성장한 스타트업은 단순히 기업의 성장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도시재생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여기에 스마트시티와 교육기관까지 결합한 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스타트업 유치와 발굴만으로는 경제 발전에 한계가 있다. 신도심과 구도심의 연결, 스타트업 인프라와 도시재생, 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교육의 역할을 하는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Q. 스타트업 창업에 주저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콘센트에 플러그만 꽂으면 창업 지원이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정부의 지원을 통해 자기 자본이 없이도 창업이 가능하다. 보통 스타트업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기간을 3년으로 보는데 정부를 통해 3년 동안 최대 5억원까지 지원 받는 것이 가능하다. 사업에 실패해도 성실하게 과제를 이행했다면 빚을 지지 않는다. 공간 역시 지원 받을 수 있으며 인큐베이팅, 엑셀러레이팅을 통해 멘토, 판로 개척, 재무회계, 마케팅, 투자 유치, 글로벌 진출 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 사람이 성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60년이라고 본다. 지식역량을 쌓는데 20년, 사회생활로 경험역량을 키우는데 20년,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생존역량을 키우는데 20년이다. 하지만 이 경험을 각각 20년씩 순차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은 이 같은 인생의 경험을 압축적으로 쌓을 수 있는 훌륭한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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