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 ⓒ뉴시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문화예술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에서 심리미진과 법리오해 등을 이유로 각각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실장 등은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 및 단체의 명단과 함께 정부지원금 지급 배제 사유 등을 정리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도록 하고 이를 집행하도록 지시·강요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이 문화예술위원회 등 소속 공무원에게 특정 인사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은 직권을 남용한 것이 맞다고 봤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지시한 업무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무원에게 김 전 실장 등이 지시한 업무를 할 법령상 의무가 있는지 살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지시를 받은 공무원들이 지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직권을 남용해 행위를 강요했다면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이 퇴임한 이후에는 직권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들의 퇴임 이후 이뤄진 범행에 대해서는 공범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고 퇴임 이후 행위까지 포함해 함께 판단한 원심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은 김 전 실장의 지원배제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년을, 조 전 장관에 대해서는 국회 위증 혐의만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김 전 실장에 대해 1급 공무원에 사직을 강요한 혐의를 추가로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으며, 조 전 장관에 대해서는 지원배제에 관여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일부 유죄로 보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을 지난 2018년 2월 사건을 접수한 뒤 같은 해 7월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심리를 진행해왔다.

사법농단, 국정농단 등 사건에도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돼 있는 만큼 이번 선고는 대법원이 직권남용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세우는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는 직권남용 혐의 판단에서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것인지에 대한 추가 입증이 필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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