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기업의 노동자를 상대로 한 불법적인 감시와 사찰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해충방제기업 세스코다.

불과 몇 해 전 내부 직원 감시와 노조원 사찰 등으로 논란이 됐던 세스코가 이번엔 퇴직자까지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3일 MBC는 세스코가 과거 ‘시장조사팀’을 통해 전직 직원 수십 명을 사찰한 ‘동향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보도가 발단이 됐다. 해당 보고서에는 2014년 4월부터 2017년 2월까지 157페이지 분량으로 작성됐다. 감시의 눈길은 퇴직자는 물론 그 가족에까지 미쳤고 그 내용 또한 퇴직자들의 동선은 물론 은행서 대출상담을 받았다거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지극히 사적이고 세세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과거 현직 직원의 감시와 사찰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던 세스코가 이번엔 퇴직자까지 대상으로 삼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파장은 컸다. 앞서 세스코는 지난 2015년에 GPS와 스마트폰 위치 추적 앱 적용 논란이, 지난 2017년에는 노조 간부 CCTV 사찰 문제가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노조 사찰 정황이 담긴 내용을 촬영한 직원을 건조물 침입 혐의로 고소하는 등 직원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제기된 직원 감시 논란에 대한 취재에 협조적이었던 세스코가 이번엔 달랐다. 거듭되는 취재 요청에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는 답변만 돌아 왔을 뿐이다. 파장이 그때보다 커서였는지 앞선 보도를 통해 사찰 행위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는 입장을 확인했을 뿐 직접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엔 내부 직원을 넘어 퇴직자까지 감시에 나선 이례적인 상황이었기에 사정은 더욱 궁금했다.

결국 세스코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노조를 통해 얻은 답은 “세스코가 밥그릇 뺏기기 싫어서 그런거죠”였다. 세스코는 국내 해충 방제 시장에서 뚜렷한 경쟁상대가 없는 독과점 지위에 있다. 따라서 직원의 이직이나 창업 등 동종업계 진출로 경쟁자가 출현한다면 우월적 지위를 잃을 수 있는 구조다. 퇴직자들의 동종업계 이직이나 창업 등을 막기 위해 이 같은 비상식적인 동향 파악에 나섰다는 것이 노조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과거 직원의 감시와 사찰 논란 또한 낮은 임금과 취약한 복지, 불안한 고용 문제로 노조와 갈등 국면에서 불거졌던 기억이 난다. 대상은 달랐지만, 회사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보단 불법적인 감시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결과도 같다.

불법 사찰이 비단 세스코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힘들다. 비슷한 시기 제주항공이 개발한 직원 전용 앱이 직원 개인 휴대폰 정보를 엿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LG디스플레이에서 퇴직한 직원이 노조 설립 추진 과정에서 접촉한 직원들이 사측에 불려갔다는 폭로와 사찰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 모두 실적 악화와 이에 따른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묘한 기시감이 든다.

의혹이 제기된 기업 모두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반복된 사고에 기인한 불신마저 말끔히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기업에서 벌어지는 감시와 사찰은 개인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은 물론 직업 선택의 마저 제한하는 인권 침해적 범죄다.

남은 과제는 진실규명이 제대로 되느냐다. 그동안 기업의 감시를 통한 통제 시도는 여럿 있었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믈었다는 점에서 우려 또한 크다. 다만 가장 대표적 사찰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삼성의 노조 와해 사건이 최근 검찰의 수사 끝에 사법부의 처벌로 이어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말 무노조를 자랑했던 삼성 집단이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물산(에버랜드)의 노조 추진을 방해하기 위해 직원들을 감시하고 사찰한 혐의로 지난달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삼성의 주요 임원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기업이 이익을 위해 직원을 감시하는 행위가 인권을 침해한 중대한 범죄라는 사법부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몰래 지켜본다는 것은 불쾌함을 넘어 폭력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몰래 훔쳐본 것을 정보화하는 감시는 보통 권력 구조상 강자가 약자를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 같은 행위가 조직적인 단위로 이뤄진다면 폭력의 강도는 물론 범죄의 무게도 커진다. 첫발이나마 사법적으로 경각심을 높일 계기도 맞이했고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인권과 기업의 윤리경영에 대한 여론의 성숙과정도 충분히 거쳤다. 이제 기업들도 감시를 통한 부끄러운 폭력적 통제의 경영 시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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