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마리누치 교수 “표준에 부합하는 존재는 없어…우리 모두는 퀴어하다”
미미 마리누치 교수 “표준에 부합하는 존재는 없어…우리 모두는 퀴어하다”
  • 김태규 기자
  • 승인 2020.02.05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이스턴 워싱턴 주립대학교 미미 마리누치 교수
페미니스트-퀴어, ‘지배의 논리’에 저항하는 사람들
‘LGBT+’ 아닌 'Queer'…이분법적·계층적 사고 타파
페미니즘·퀴어 이론 병합, 모두에게 전략적 도움 돼
미미 마리누치 교수
미미 마리누치 교수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 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여성혐오 범죄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안전과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 만큼 여성들의 집회 및 시위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차별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집회·시위에서 지정성별(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인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남성은 물론, 트랜스 여성(MTF 트랜스젠더)의 참여를 배제해 트랜스젠더 혐오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에 반대하며 다양한 성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페미니즘과 퀴어 운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초월하는 것이며, 지정성별에 따라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를 이미 겪은 미국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스턴 워싱턴 주립대학교(Eastern Washinton University)에서 철학과 여성 & 젠더 연구를 강의하는 미미 마리누치(Mimi Marinucci) 교수는 지난 2010년 <페미니즘을 퀴어링!(Feminism is Queer)>를 펴냈다. 지난 2018년 한국에서도 번역돼 소개된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기반으로 퀴어 이론이 기존 성에 관한 연구들에 대안적 접근 방법으로써 어떻게 진화돼왔는지 설명하고, 퀴어 이론과 페미니스트 이론을 병합한 ‘퀴어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본지는 <페미니즘을 퀴어링!>의 저자 마리누치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페미니즘 이론과 퀴어 이론이 결합해야 하는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 진행과 통역은 동 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이창훈 창인국제사회복지 개발원장이, 정리는 본지 김태규 기자가 맡았다.

미미 마리누치 교수가 지난 ~일 미국 이스턴 워싱턴 주립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페미니즘을 퀴어링!(Feminism is Queer)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미미 마리누치 교수가 1월 11일 미국 이스턴 워싱턴 주립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페미니즘을 퀴어링!(Feminism is Queer)>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불평등 구조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퀴어

Q.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해주신 것에 감사의 말씀부터 드린다. 한국에서 제가 쓴 책을 읽고 관심 가져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행복했다. 이렇게 <페미니즘을 퀴어링!(Feminism is Queer)>이 한국어로 번역돼 영어권 외의 새로운 독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다.

Q. 보통 사회학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 연구가 활발한데 마리누치 교수는 철학적 관점을 가미한 페미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연구하는데 있어 사회학적 접근과 철학적 접근에 차이가 있는지.

저는 학사 학위에서 철학과 사회학 두 가지를 복수전공 했다. 그리고 박사학위는 철학으로 받았다. 박사과정에서 여성학 연구를 주로 했다. 제 주된 연구학습 분야는 철학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철학에 대한 관심에서 파생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철학 중에 지식과 관련된 연구인 인식론에 관심이 많았다. 저는 항상 지식이 습득되는 과정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지식의 생산 과정’에서 형성되는 ‘성별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런 관심이 저를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이론들을 연구하게끔 이끌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안에서 여성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까진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렇게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Q. 소득 불평등, 장애인 차별, 기술격차 문제 등 현대 사회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페미니즘과 퀴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이해하는 페미니즘, 특히 퀴어페미니즘은 여성 혹은 성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 그 자체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문제 역시 페미니즘 혹은 퀴어페미니즘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일 뿐이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분법적 사고와 계층적 사고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에코페미니스트 철학자 카렌 워렌(Karen Warren)과 같은 이론가들이 얘기하는 ‘지배의 논리’를 부추기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다. 다른 사회적 문제들(소득불평등, 장애 차별, 그 외 모든 형태의 차별)역시도 ‘지배의 논리’라는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배의 논리’란 힘 있는 자들이 그들의 체계에 힘없는 자들을 종속시키고 순응시키는 것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에 도전한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불평등, 억압, 계층구조에 도전한다는 의미다. 페미니스트의 위치는 바로 그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사회 전반에 걸친 지배의 논리가 여성을 지배하려는 논리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것이 바로 페미니스트들이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퀴어들 역시 성적지향(sexuality), 성(sex), 그리고 성별(gender)이라는 하는 구별이 권력과 통제를 위한 도구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미 마리누치 교수가 지난 ~일 미국 이스턴 워싱턴 주립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저서 페미니즘을 퀴어링!(Feminism is Queer)을 소개하고 있다.
미미 마리누치 교수가 1월 11일 미국 이스턴 워싱턴 주립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저서 <페미니즘을 퀴어링!(Feminism is Queer)>을 소개하고 있다.

여성·퀴어 혐오, 과도적 현상이길

Q. 한국에서는 아직 사람들이 퀴어(성소수자)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페미니즘에 관심에 갖고 있는 이들은 점차 늘고 있다. 그렇다보니 페미니즘이 퀴어보다 더 많이 이슈를 선점하고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미국의 상황은 어떤지.

미국에서 보통 ‘제2의 페미니즘 물결(1960~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서구 전반으로 퍼진 여성주의운동. 제1세대 페미니즘 물결이 투표권, 재산권 등 제도적 성평등에 집중했다면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은 여성의 신체와 섹슈얼리티, 가족, 사회·문화적 불평등 등으로 담론이 확대됨)’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었다. 이 질문은 그 시기에 나타난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한 몇몇 미국 사람들의 시선, 태도들을 상기시킨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미국의 몇몇 ‘직설적인’ 페미니스트들은 레즈비언과 같은 사람들을 운동에서 제외시킨다. 몇몇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흑인 여성들을 제외시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퀴어 정체성에 대해 과거 보다 수용적이다. 특히나 제3의 페미니즘 물결(1990년대 시작된 제3의 페미니즘 물결은 인종, 문화, 국가 등 다양한 집단을 포함해 여성주의의 주제를 확장함) 시기에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는 퀴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더욱 긍정적이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과거 본인들이 전통적 성역할에 의해 억압받았던 것과 동일한 선상에서 게이나 레즈비언들이 처한 입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즉, 게이나 레즈비언에 관한 부정적 시각이 과거 남자와 여자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 때문에 일어난 억압들을 반영, 강화, 반복한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초월하는 것이지 여성과 남성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친밀함 추구라는 ‘전통적 기대’는 계속하여 계승돼야 한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비전통적인 성 정체성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한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페미니즘에도 혐오감을 표출한다.

Q. 한국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을 여성비하, 여성혐오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성소수자 비하 단어 역시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과하고,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라고 부르면서도 이 같은 혐오가 끊이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여성혐오 같은 사회적 현상들이 과도기적 현상이길 바란다. 이런 현상은 이론가인 수잔 파(Susan Pharr)가 <호모포비아: 섹시즘의 무기(Homophobia: A weapon of Sexism)>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제2의 페미니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넘어가는 시기인 1998년도에 출판됐다. 이 책의 핵심 중 하나가 페미니즘적인 생각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종종 레즈비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적 정체성과 레즈비언적 정체성 모두 여성에 대한 전통적 믿음과 기대에 도전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런 공통점이 ‘페미니스트=레즈비언’이라는 꼬리표(label)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경우 레즈비언이 아닌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이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에 힘을 쏟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역으로 ‘페미니스트들의 힘을 잃게 만드는 전략’들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본래 하고자 했던 주장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레즈비언’이라고 하는 꼬리표를 특별한 대응 없이 받아들이고 페미니스트들이 본래 하려했던 얘기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레즈비언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가 ‘페미니스트들의 힘을 잃게 만드는 전략’을 무마시키는 근본적 해결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니스트 이론과 퀴어 이론의 연결이 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Q.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 퀴어는 성소수자와 성다수자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인 것 같은데 이 둘은 어떻게 닮았으며, 어떻게 연결돼 있다고 보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과 남성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역할과 기대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퀴어정체성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저는 페미니즘이 이분법적 사고와 계층적 사고를 탈피하기 위해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성역할에 관한 이분법적 사고와 계층적 사고를 깨기 위한 도전에 페미니즘이 함께 하길 바란다.

Q. 페미니즘 진영 일각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등 퀴어와 페미니즘 이론은 대립되는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두 이론의 결합이 필요한 이유는.

저는 기본적으로 퀴어 이론과 페미니스트 이론이 분리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젠더(페미니즘의 영역)와 관련된 이론들을 다루거나 섹슈얼리티(섹슈얼리티 연구와 퀴어 이론 영역)와 관련된 이론들을 온전히 다루기 위해서라도 퀴어 이론과 페미니스트 이론은 함께 고려돼야만 한다. 이 두 이론들은 밀접하게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성애자 여성만을 고려한다면 페미니즘이 해결하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반대로 섹슈얼리티 연구에서 레즈비언이나 게이만을 고려할 수도 없다.

미미 마리누치 교수
미미 마리누치 교수

“전통적 성역할에 부합하는 존재는 없다”

Q. LGBT+라는 범주의 대안으로 queer를 제안했다. 퀴어라는 용어는 어떻게 다양한 젠더를 포용할 수 있을까. 퀴어의 어떤 요소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가.

퀴어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ysexual), 그리고 트랜스잰더(‘T’rans) 모두를 포함하고, 이와 더불어 범성애자(pansexual), 무성애자(asexual), 제3의성(gender nonbinary), 성별을 확정할 수 없는(gender fluid), 두 영혼(two-spirit), 그리고 다른 분류되지 않은 성 정체성들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이는 섹스,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관한 전통적인 신념을 뒤흔든다. 게이, 레즈비언, 동성애자, 양성애자와 같은 카테고리에 자신을 귀속시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새로운 알파벳을 추가하게 되는데, 때로는 알파벳 대신에 플러스(+) 기호로 대체하기도 한다. 기존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정체성이 무수히 있음을 기호로 나타내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LGBT를 퀴어의 전부라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퀴어라는 개념을 LGBT로 분류되지 않는 그 외 플러스알파의 정체성들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Q. 퀴어 정체성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인가.

정체성이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기본적 카테고리부터 여성성, 남성성, 남자, 여자, 트랜스젠더, 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무성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체성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도 설명될 수 있다.

Q. 책에서 ‘우리 모두는 퀴어하다’고 이야기했다. 각자가 퀴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앞서 언급했듯, 이성애자들로 구성된 페미니스트들이 레즈비언이라는 꼬리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통적 성역할과 기대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을 통제하는 힘을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에게 꼬리표를 붙여 새로운 성정체성의 범주들을 만든다. 이것은 성소수자들을 우리가 속한 범주와는 다른 범주에 있는 사람들, 즉 외부자로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퀴어라는 개념은 전통적 성역할이나 기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즉, 퀴어라는 단일범주 안에서는 외부인과 내부인의 구분이 불필요하다. 예를 들어, 여성은 남성과 파트너가 되어야만 하고, 출생 시에 여성으로 판별된 사람은 여성으로써 살아야만하고, 일부일처제를 최고의 제도라고 여기며, 여성은 성관계시 수동적이어야 하며, 남성은 성적으로 지배적이어야 하고, 섹스는 과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전통적 성역할과 성과 관련된 전통적 기대들은 수없이 많다. 이러한 전통적 성역할과 관련된 기대들을 목록으로 만들기 시작하면 그 목록들은 무수히 많아질 것이며, 그러한 전통적 기대목록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꿔 말해, 모두가 그러한 전통적 기대목록을 적어도 하나쯤은 어기게 될 수밖에 없으므로 누구라도 어떤 식으로든 전통적 사회범주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이러한 전통적 성역할과 관련된 기대들을 기준으로 볼 때 우리 모두는 이탈자이며 외부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외부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해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그 힘을 잃게 된다.

Q. 정체성의 범주가 끊임없이 확장되는 것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보는가.

첫째, 정체성의 범주를 확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본인을 입증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게이나 레즈비언과 같은 개념자체가 없는 세상을 산다는 것은 동성애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일일 것이다. 게이나 레즈비언 외에 다른 성정체성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 역시도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개념이 없다면 그들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둘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는 면에서 정체성의 범주가 확장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보통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일반적이지 않다. 이것을 이해하고 인식했을 때 우리는 ‘표준’의 위엄을 녹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의 범주들이 너무 빨리 생성될 경우 이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 할 수도 있다.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광범위한 단일범주의 ‘퀴어’라는 개념을 이용할 경우 성소수자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 수 있고, 정치세력으로 치면 단일화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미미 마리누치 교수
미미 마리누치 교수

우리는 염색체가 아니다

Q. 책에 언급된 것처럼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게이, 트랜스여성, 트랜스남성 등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TERF)들도 있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활동이 주목을 받은 경우가 있는데, 이들에 대한 생각은.

저는 한국의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저지른 실수로 부터 무언가를 배웠으면 한다. 1976년 부터 2015년까지 연례행사로 치러진 미시간 여성 음악축제(Michigan Womyn's Music Festival. 주최, 운영, 관객 모두가 여성인 음악축제. 남성 및 남성성에 대한 용어의 대안으로 'Women' 대신 'Womyn'을 사용한다)가 바로 그 예인데, 결과적으로 이 행사는 여성만을 위한 행사로 전락했다. 우선 이 행사는 여성들을 위한 행사로 시작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트랜스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반대하려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주최 측이 트랜스 여성에 대해 무신경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트랜스 여성이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을 때, 조직은 트랜스 여성을 ‘남성’으로 규정하고, ‘여성’만을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참여자들에게 강요했다. 이는 트랜스 여성들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다. 트랜스 여성과 같은 트랜스들은 미국사회 내 레즈비언·게이 권리 신장 운동의 일부였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성소수자 권리 신장 운동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1969년 뉴욕의 스톤월 항쟁 때부터 트랜스들은 그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저는 사람들을 생물학적 특징이나 특정 신체부위로 그 사고와 행동을 제한시키는 행위를 지양한다. 사람은 생식기가 아니며, 호르몬도 아니다. 누구도 사람을 부를 때 난소나 고환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염색체가 아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 중 어느 하나도 인간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겪고 있는 억압을 해체시켜 주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Q. 앞으로 ‘퀴어’, ‘페미니즘’, ‘퀴어페미니즘’ 운동은 어떻게 진행될까.

앞으로 그 운동들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저도 궁금하다. 미래를 예측할 순 없지만, 미국은 퀴어와 페미니즘 이론이 병합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한 학업의 내용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지목 범위가 기존보다 확장돼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페미니즘 역시 달라져야 한다. 여성이라는 범주를 몇몇 기준으로 특정하기에는 다양한 여성들의 다양한 요구와 관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재 페미니즘은 이러한 점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Q. 교수님이 현재 관심을 두고 있거나 연구 중인 주제가 있다면.

최근 연구 중인 주제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에 관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인간과 기계사이의 성적 친밀감을 포함한 친밀감 전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선 제 책과 연구에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해 감사하다. 아울러 제 생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저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대해 고무돼 있다. LGBT+ 또는 퀴어 정체성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저는 우리 모두가 젠더, 성(sex), 섹슈얼리티에 기초한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