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의 Culture & Flavor] 영화 ‘언페이스풀’ 속 오마르 하이얌과 와인 예찬
[김지우의 Culture & Flavor] 영화 ‘언페이스풀’ 속 오마르 하이얌과 와인 예찬
  • 김지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11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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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페이스풀(Unfaithful)>을 본 이들이라면, 트렌치 코트와 아슬아슬한 힐에 의지하며 강풍 속 뉴욕 거리를 걷던 다이안 레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아하고도 고혹적인 매력을 뿜으며 등장하는 다이안 레인과 그녀의 남편 역으로 분장한 미중년 리차드 기어를 함께 볼 수 있는 <언페이스풀>은  ‘불륜’ 이라는 다소 불편한 소재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인물들의 욕망과 본능 그리고 이성이 점철된 심리를 세밀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배우들이 표현하는 섬세한 연기를 보자면 단순 치정극으로만 여기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아들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로 나선 코니(다이안 레인 역)는 프랑스에서 온 젊은 청년 폴과 부딪힌다. 동시에 넘어지며 다리에 상처를 입은 그녀를 폴은 선뜻 자신의 아파트로 안내하게 되는데,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하고도 미묘한 공기가 흐른다. 그러나 그것을 의식한 듯 이내 돌아가겠다며 나서는 코니. 폴은 그런 그녀에게 책장에 꽂혀 있던 낡은 시집을 하나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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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페이스풀> 캡처

- 책장 위에서 두 번째 칸, 왼쪽에서 네 번째 칸. 23쪽을 펴 봐요.

- 와인을 마셔라 /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대에게 젊음을 주리니 /
  와인과 장미 그리고 취한 친구들의 계절 / 
  지금 이 순간 행복하라 ; 이 순간이 바로 너의 삶 일지어니

(Drink wine, this is Life Eternal.
This, all that youth will give you.
It is the season for wine, roses, and drunken friends.
Be happy for this Moment ; this moment is your Life.)

코니는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듯, 의미심장한 시구에 이끌려 결국 위험하지만 걷잡을 수 없는 유혹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영화 초반 등장해 주인공의 행동에 불씨를 지핀 이 시는 고대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수학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의 시이다. 그가 쓴 시집 루바이야트(Rubaiyat) 속 곳곳에는 와인이 자주 언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존재’ 혹은 ‘사랑의 본질’, ‘아픔’, ‘영원성’ 등에 대한 철학적 명제들을 와인에 빗대어 4행시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와인의 잔을 채워 마시기를 열망하는 하이얌의 와인 예찬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도에서는 오마르 하이얌의 이름을 딴 샤르도네 품종의 스파클링 와인 또한 생산되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페이스풀>은 오마르 하이얌의 시 구절을 통해 단지 ‘지금 이 순간의 행복(본능)’을 쫓길 바라며 주인공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지만, 오늘 이 글에서는 하이얌이 찬양하며 써내려간 활자 그대로 지금 이 순간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와인’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오마르 하이얌이 ‘신의 열매’라고 언급했던 잘 익은 포도로 만든 와인은 오늘날 서양과 동양, 그리고 식문화와 상관없이 전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술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통 구조의 다양화에 따라 와인의 진입 장벽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번화가마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와인바가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제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 좋은 와인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따라서 국민 와인 소비량도 과거에 비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작년에는 일부 대형마트에서 와인이 소주와 맥주의 매출을 제치는 사례도 있었다.

와인을 출하하는 국가가 다양한 만큼 와인의 종류 또한 매우 무궁무진하다. 사실 이처럼 많은 종류가 초보에게는 와인이 어려운 술로 인식되게끔 하는데, 소믈리에나 와인 애호가처럼 와인을 국가나 품종, 빈티지별로 구분하고, 향이나 맛의 밸런스를 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전문 서적을 읽거나 따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하나하나 알고 마시는 게 더 힘든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와인 입문자들도 일반적인 컨벤셔널 와인부터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 하고 있는 내추럴 와인이나 주정 강화 와인인 셰리 와인, 포트 와인 등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몇 가지의 와인 종류만 간단히 구분할 줄 알면 더 맛있는 와인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특히 최근 자연 친화적 소비가 늘어나며 국내외로 마니아들을 양산하고 있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 지난 2017년 서울 한남동에 오픈한 국내 최초 내추럴 와인 전문 바를 필두로 취급하는 곳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와인의 역사가 긴 유럽에서도 4년 남짓 전부터 점차 대중화 되고 있는 추세다. 그 때문에 머지않아 내추럴 와인의 법적 정의를 위한 공식위원회가 결성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진 공식적으로 내추럴 와인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통상적으로는 ‘주조 과정 동안 어떠한 첨가물도 넣지 않고 인위적인 행동을 가하지 않은 와인’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일컫고 있다. 따라서 내추럴 와인엔 산화 방지를 위한 기준치 이내의 ‘이산화황’ 외엔 인위적인 기타 첨가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고, 침전물을 걸러내는 필터링 공정도 거치지 않아 와인 속엔 간혹 침전물이 떠다니기도 한다. 또한 자연전통 방식으로 제조하다 보니 가끔 흙내음와 같은 향이 난다든가 혹은 대량생산이 불가해 저가 컨벤셔널 와인에 비해 병당 단가가 올라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와인 숙취의 원인이 된다고도 알려진 ‘이산화황'이 일반 와인에 비해 적게 함유되어 있으므로 숙취가 두려워 와인을 꺼리는 이들이나 와인 경험 및 선입견이 적은 입문자들이 도전해보기에 좋은 와인이라 볼 수 있다. 

이 외에 주정 강화 와인인 스페인의 셰리 와인,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 등을 국내에서 찾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대체로 셰리 와인은 화이트 와인, 포트 와인은 레드 와인으로 만들어지지만 드물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긴 한다. 주정 강화 와인은 포도즙이 발효되고 있는 도중, 고도주인 브랜디를 첨가해 도수를 확 끌어올려 발효를 중단하는 와인으로 포도의 당이 알콜로 모두 변하기 전에 발효를 멈추므로 다른 와인보다 더 단 맛을 띠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종류에 따라 위스키와 같은 묵직한 맛을 내는 경우도 있으며 달달한 맛에 비해 도수는 17도에서 20도 정도로 꽤 높은 편이니 유의하는 것이 좋다. 

▲ 김지우 칼럼니스트<br>​​​​​​​-프리랜서 방송인
▲ 김지우 칼럼니스트
-프리랜서 방송인

와인에는 정답이 없다. 또 굳이 이 와인은 어떠한 전통과 역사를 지녔고 어떤 향과 어떤 맛들이 섞여 있는지 세세히 따지고 알아야만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산자나 와인마다 가진 특징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상대적이며, 포도 상태, 작농 상황, 수확과 발효 과정들이 해마다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기에 같은 와인임에도 모두에게 같은 미적 경험을 제공하진 않는다. 때문에 와인을 굳이 어렵게 생각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화이트와 레드 정도만 구분할 줄 안다 할지라도, 일단 여러 종류의 와인들을 자꾸 마시고 도전해보길 권한다. 저렴한 와인이라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하고 내 입에만 잘 맞는다면 그 와인은 내게 최고의 와인이 될 수 있는 법이며, 그렇게 흥미를 갖고 다양한 와인들을 만나다 보면 탄산감이나 당도부터 시작해 바디감이나 향 그리고 맛의 변화까지 점차 내가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함과 동시에 나만의 와인 취향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와인 잔을 채워보자. 취해보자. 즐겨보자.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강렬했던 <언페이스풀>의 코니와 폴의 첫 만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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