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故 이재학 PD 근로자지위 인정 및 청주방송의 사과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故 이재학 PD 근로자지위 인정 및 청주방송의 사과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임금 문제를 두고 회사와 갈등을 빚던 30대 프리랜서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1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8시경 충북 청주시 서원구 소재 한 아파트 지하실에서 故 이재학 PD가 숨진 채 발견됐다.

2004년부터 14년간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PD로 근무했던 이씨는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아름다운 충북>의 책임PD를 맡았다. 방송 1회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촬영 2일·편집 3일이 소요됐고, 동시에 다음 주 아이템도 기획해야 했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임금은 40만원에 불과했다. 막내작가는 이보다 적은 30만원이었다.

2012년 월 80만원이던 막내작가의 급여는 7년 가까이 동결이었고, 이씨 또한 월 160만원 남짓밖에 받지 못했다. 이 같은 프리랜서 임금 문제를 오랫동안 심각하게 고민해오던 이씨는 동료들을 대표해 14년 만에 공식석상에서 인건비 인상을 촉구했다.

이씨는 <아름다운 충북> 뿐만 아니라 <TV닥터 건강클리닉>, <청풍논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아이템 선정부터 섭외, 구성, 촬영, 편집까지 담당했다. 지자체 보조금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의 경우 사업 수주와 보조금 수령·정산까지 도맡았다.

정규직 PD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 온 이씨의 인건비 인상 요구는 무리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프로그램 하차였다. 이씨에게 맡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라고 통보한 청주방송은 이후 다른 외주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게다가 이씨와 계약했을 때보다 더 높은 금액이었다.

2018년 5월 이씨는 ‘방송계갑질119’ 오픈채팅방을 찾아 자신의 상황을 알렸고 그해 8월 방송계갑질119의 도움을 받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했다. 소송 과정에서 청주방송 측은 거짓 주장과 증인 회유 및 협박, 위증 등을 자행했다. 결국 지난달 22일 1심에서 패소한 이씨는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청주방송은 지난 9일 입장문을 통해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방송사의 역할에 부응하지 못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밝히며 철저한 진상조사 및 프리랜서 근무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유족과 대화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낸 면피용 입장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14일 청주방송국 앞에서 열린  청주방송 사망사건 충북대책위원회출범식 ⓒ뉴시스

유족과 시민·노동 단체 등은 청주방송의 이씨 노동자성 인정 및 명예회복과 더불어 방송·언론계에서 프리랜서라는 명목 아래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불법 노동착취 실태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씨의 동생은 지난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입장문을 통해 “방송·언론은 정의와 윤리가 근본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분야임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방송국은 정말 참담했고, 비상식과 부정부패로 가득했다. 특히 민영방송은 더욱 심각했고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왕처럼 군림하는 청주방송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형적으로 사조직화 돼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제대로된 진상조사를 통해 형이 잃어버린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당연한 대우를 찾을 것이다. 또 청주방송이 겁도 없이 행해 온 위증, 직원 갑질, 압박, 회유 등 수많은 불법 행위와 나아가 비상식적인 자회사·외주개발사 및 직원 운영 행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주방송에게 형의 명예회복과 진정성 있는 사과, 가해자 엄중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등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형과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모든 방송·언론인과 방송통신위원회, 고용노동부, 국회, 더 나아가 정부까지 이 사항에 많은 관심과 힘을 보태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이씨 사망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한 ‘청주방송 사망사건 충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들은 “청주방송의 비인간적 고용 관행이 이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진실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진실을 감추려 한다면 청주방송과의 전면전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인의 뜻을 이어 그릇된 청주방송의 고용관행을 바로잡고 방송사 비정규직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가겠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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