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근의 나는 이 작가를 주목한다⑯] 아름다운 여인들의 찬미…조각가 이경재
[김종근의 나는 이 작가를 주목한다⑯] 아름다운 여인들의 찬미…조각가 이경재
  • 김종근 미술평론가
  • 승인 2020.02.2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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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가 이경재

어느 미술사학자는 폴 세잔느가 사과를 그린 이후로 화가들이 그린 사과가 사람들이 먹어치운 사과보다 더 많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여자의 숫자보다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그린 숫자와 조각으로 만든 여자가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화가나 조각가에게 있어 여체라는 대상은 모든 사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예술적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 이유로 동서를 막론하고 여체에 관한 예술가들의 탐구는 그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10.3cm 크기의 석회암 조각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3만년 - 2만5000년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그 외에도 우리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기원전 6000년 전의 터키에서 발견된 <여인 좌상>이나 <여인> 등에서 인체의 단순한 표현이 얼마나 아름답게 그리고 예술적으로 성숙한 채 완성돼 있는가를 볼 수 있다.

기원전 3000여 년 전 이집트의 마마리아에서 발굴된 테라코타로 만든 여인상에서는 여체를 다루는 사람들이 갖는 예술적 감각과 그 높은 조형성의 아름다움이 오늘날 우리가 보아도 그 뛰어난 감각에 놀라게 한다.

물론 인체에 관한 이런 탐구 뒤에는 미적인 측면 외에도 기복적인 신앙의식이 내재 되어 있음도 지나쳐서 안 된다.

이렇게 연원이 깊은 인체에 대한 표현이 한 조각가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 작업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이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경재 작업의 출발은 비교적 초기부터 인체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출발한다.

아마도 청년기 수업시절 조각에 대한 기본적인 수업이 인체표현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여체에 대한 애착은 매우 정상적이다. 

그는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도 오랫동안 스승 밑에서 조각의 기본이라고 할 인체표현을 철저하게 표현법을 체득해 왔다.

그 후 그는 수 세기 이래로 베르실리아 해변의 장관과 장엄하고 웅장한 알프스산맥에 둘러싸인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도시 카라라(아드리아노 가스페리)로 건너가 카라라 국립미술원에서 8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 한국의 대부분 돌조각을 하는 작가들이 마치 “에꼴 드 카라라”라고 부를 만큼 그곳은 구상성이 강한 조각가들이 한국 조각의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해 왔다. 이경재가 줄곧 고집스럽게 돌덩어리를 고집 하는 것도, 그가 여체를 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도 이런 그의 예술적인 작업의 배경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여체들은 확실히 이전 그의 선배들의 작품과 공통점과 차이점이 섞여 있다. 예를 들면 그의 작품에는 풍만한 인체묘사와 형태에 대한 부드러운 접근, 모성애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아내는 기교 등이 눈에 띈다.

또한, 극히 부분적인 표현- 눈과 머리- 으로 부부를 구별하거나 암시하는 기법, 대칭적인 형태를 통해 비례의 아름다움을 각인해 내는 기술은 이경재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특징이다. 

특히 인체표현에 익숙하고, 세련되어 있는 점, 특히 누워있는 여인의 와상이나 입상에 대한 스타일은 서양 조각에서 간간히 보아온 것이기도 하지만 여체에 대한 표현이 자세나 포우즈에서 극도의 세련미를 보여준다.

마치 여체에 대한 표현은 로댕의 <다나이드> 그리고 마이율의  <지중해> , 그리고 헨리무어에 와서 여체는 구상성의 절정을 보이고 있다. 

물론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 여체조각에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풍만함과 아름다운 미의 조형에 충실하다면 오히려 이경재 조각의 특징은 우선 한국적인 감성을 담아내는 변별성을 주고 있음이 눈길을 끈다.

이경재는 그런 한국적인 감성을 그의 작품 속에서 포근함, 수줍음, 포용 ,관용, 다정함 , 인자함 등으로 그들과는 다른 느낌의 풍요로운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인을 표현한 작품 전체에서 보이는 따뜻하고 정겨운 풍경, 악기를 연주하는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풍경과 하모니가 마치 하나의 교향곡처럼 가슴으로 스며든다.

이 모두가 다 수줍은 자세와 팔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절제된 자세에서 집약되어 안정감을 전해준다.

그는 집요하게 인체에 집중하고 있다.그가 왜 인체를 강조하는가를 작가는 스스로 “신이 창조한 삼라만상 중 가장 선택받은 아름다운 미” 라고 여체를 정의하고 있는 데서 명백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의 비례나 형태는 다분히 서양에서는 말하는 비율이나 크기 기준에 상관없이 비현실적이다. 그 비현실적인 형태가 인간의 본능과 만나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조각 속의 눈매와 표정 등은 모성과 여성으로 가득 찬 여인의 자유스러운 그러면서도 수줍은 인상은 그가 얼마나 여인에 대한 눈길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확연히 보여준다.

이경재는 대리석 덩어리에 그의 지문을 찍어가면서 그 안에서 여인 또는 모성을 가진 아름다운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거친 돌덩어리가 하나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되살아날 때, 그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 조각가 아키펭코 (A.P.Archipenko)나 헨리무어가 보여주었던 언제나 숭고함과 생명력 그리고 구성의 원칙에 전혀 어긋나지 않게 노력했던 체험을 작가의 이상으로 두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그는 고전적인 것에서 얻어올 것이 많다고 믿고 있으며 이경재는 고전을 자신의 언어로 전이시키며 그 독창성을 더욱 극대화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이전의 작업보다 곡선이 많이 사용되고, 형태도 더욱 부드럽게, 형상을 고정화하지 않는 작품들은 그러한 그의 새로운 변모를 더욱 예감케 한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조각가가 순수한 형태에 대한 탐미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서 반복적인 여체를 되풀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도 있다. 더욱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마치 브랑쿠지가 그의 스승인 로댕 곁을 떠나면서 남겼던 “거대한 고목 밑에서는 잡초도 자라지 못한다”라는 명언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

이경재의 경우도 그가 조각을 배웠던 스승들의 영향과 흔적이 인체를 다루는 기법이나 기교, 사물을 묘사 해내는 부분에서 모든 테크닉을 완벽하게 익힌 것을 이제 감사해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위로는 스승이 없어야 하며, 옆으로 벗이 없어야 하며, 아래로는 제자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독특한 표현과 양식으로 모두에게 오랫동안 감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경재가 앞두고 있는 이탈리아나 독일, 파리의 국제전시는 그의 새로운 조형성과 독창성을 열어 보이는 아주 의미 있는 전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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