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총선…잇따르는 현역 불출마 선언
선거 승리 위한 인적쇄신에 힘 싣는 희생
불출마 전략, 선당후사·차기 행보 위한 명분
정치엔 현재만 있을 뿐 미래 없어…리스크 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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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21대 총선이 점차 다가오면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여야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누군가는 현실정치에 실망해서, 또 누군가는 인적쇄신을 외치는 등 여러 명분들을 내세우고 불출마를 외친다. 선거를 앞두고 인적쇄신을 통한 변화를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하는 정당으로서도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큰 도움이 된다.

이 같은 불출마 선언은 선당후사의 상징임과 동시에 다음 정치행보를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노린다는 불출마 전략은 ‘잊혀짐’이라는 정치인에게 있어 매우 커다란 리스크를 짊어지는 결정이기도 하다.

불출마 이어지는 통합당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모두 공천혁신을 언급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와 같이 인적자원의 변화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역 의원들 가운데 일부 물갈이가 필요하다. 즉, 인적쇄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구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공천 관련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특히 해당 정당이 우세한 지역구일 경우,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는 더욱 어려운 선택임과 동시에 인적쇄신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이 된다.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18일 입장문을 통해 불출마 선언 의원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고마움을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아깝고 안타깝지만, 나를 불살라 전체를 구하려는 살신성인의 용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불출마 선언은 그동안 우리 당이 미흡했던 보수의 핵심 가치인 책임과 헌신을 몸소 실천하는 행위”라고 불출마 선언 의원들을 추켜세웠다.

21일 현재까지 불출마를 선언한 통합당 의원은 총 25명이다. 3선 이상 중진 의원 가운데 김무성(6선, 부산 중·영도), 원유철(5선, 경기 평택갑), 정갑윤(5선, 울산 중), 김정훈(4선, 부산 남갑), 유기준(4선, 부산 서·동), 유승민(4선, 대구 동을), 한선교(4선, 경기 용인병), 김광림(3선, 경북 안동), 김성태(3선, 서울 강서을), 김세연(3선, 부산 금정), 김영우(3선, 경기 포천·가평), 이진복(3선, 부산 동래), 여상규(3선, 경남 사천·남해·하동), 홍일표(3선, 인천 남갑) 의원 등 14명이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초재선 의원 중에는 김도읍(재선, 부산 북·강서을), 김성찬(재선, 경남 창원·진해), 박인숙(재선, 서울 송파갑), 윤상직(초선, 부산 기장), 장석춘(초선, 경북 구미을), 정종섭(초선, 대구 동갑), 유민봉(초선, 비례대표), 윤종필(초선, 비례대표), 조훈현(초선, 비례대표), 최교일(초선, 경북 영주·문경·예천), 최연혜(초선, 비례대표) 의원 등 11명이 이번 총선 출마 뜻을 접었다.

앞서 통합 이전 자유한국당 시절, 3선 중진인 김세연 의원은 “자유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이 당으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다. 무너지는 나라를 지켜낼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며 불출마와 함께 당의 전방위적인 쇄신을 주문했다.

뒤이어 김영우 의원도 “모두가 공감하듯이 지금 한국당의 모습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온전히 얻을 수 없다. 국민은 왜 한국당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시작으로, 연말 예산안,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정국을 지나면서 불출마 선언은 이어졌다. 불출마를 선언한 통합당 의원들은 대부분 인적쇄신을 이유로 내세웠다. 최근 공천 국면에서도 이 같은 모습은 계속됐다. 특히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에서 5명의 의원이 불출마를 결정하면서 인적쇄신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보수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서는 현역 지역구 의원 10명이 자리를 내놨다.

한편 통합당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비례전담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문제로도 이어진다. 현재 민주당에 이어 원내 2당인 통합당은 비례투표를 전담할 미래한국당을 정당투표용지에서 두 번째 칸에 올려 지지층의 혼란을 최소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최근 정계개편을 통해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 호남 3당이 호남통합신당 창당에 합의하면서 선거 전 원내3당을 차지하게 됐다. 의석수에 따라 부여되는 선거기호에서 3번을 따내야 하는 미래한국당은 최소한 호남통합신당 의원수를 넘기기 위해 20명의 의원들을 미래한국당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미래한국당에 합류한 통합당 현역 의원들은 한선교, 조훈현, 김성찬, 이종명 의원 등 4명이다. 여기에 통합당으로 중도 보수세력이 합쳐지기 전 새로운보수당 소속이었던 정운천 의원이 미리 미래한국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 최근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이진복, 최연혜 의원 등도 미래한국당으로의 이적을 예고했지만, 통합당의 선거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직 십수명의 의원들이 미래한국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불출마 선언 의원들 가운데서도 미래한국당행에 대해서는 입장이 나뉘는 상황에서 통합당의 공천심사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공관위에 의한 컷오프와 함께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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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조용한 민주당

마찬가지로 인적쇄신을 강조하고 있는 민주당은 예상보다 불출마 선언이 나오지 않는 모양새다. 21일 현재 민주당에서는 중진 의원 중 이해찬(7선, 세종), 정세균(6선, 서울 종로), 원혜영(5선, 경기 부천오정), 추미애(5선, 서울 광진을), 강창일(4선, 제주 제주갑), 박영선(4선, 서울 구로을), 진영(4선, 서울 용산), 김현미(3선, 경기 고양정), 백재현(3선, 경기 광명갑) 의원 등 9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초재선 의원의 경우에는 유은혜(재선, 경기 고양병), 이훈(초선, 서울 금천), 서형수(초선, 경남 양산을), 표창원(초선 경기 용인정) 의원 등 4명의 지역구 의원과 김성수(초선, 비례대표), 심기준(초선, 비례대표), 이용득(초선, 비례대표), 이철희(초선, 비례대표), 제윤경(초선, 비례대표), 최운열(초선, 비례대표) 의원 등 6명의 비례대표 의원이 불출마를 공식화했다.

민주당의 불출마 선언은 초선 의원인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두 의원은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을 토로하며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며 “부끄럽고 창피하다. 허나 단언컨대, 이런 정치는 공동체의 해악”이라고 비판했다. 표 의원도 “보람도 느꼈지만 정쟁 앞에서는 자괴감이 들었다”며 “다른 편을 무조건 공격하고 적대시하는 게 무엇을 해결하는가, 그게 약자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에 많은 갈등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최근 출마 의사를 접은 이훈 의원의 경우에는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며 민병두 의원과 함께 공관위 정밀심사 대상으로 분류된 이후 정밀심사가 계속 진행됐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불출마를 선택했다.

민주당 현역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수에서는 통합당과 엇비슷하지만, 초재선의 경우에는 지역구를 갖고 있는 의원들보다 이번 총선에서 도전할 지역구를 택해야 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다수인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천에서 현역 의원 중 20% 정도를 교체할 예정이다. 현재 민주당의 의석수는 129석으로 25~26명 정도가 교체 대상이 된다. 즉, 현재 19명이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불출마 선언이 없으면 6~7석은 컷오프로 인적쇄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미 민주당은 신창현(초선, 경기 의왕·과천), 정재호(초선, 경기 고양을) 의원을 컷오프 대상으로 올렸다. 이에 신 의원은 반발하며 재심을 청구했으나, 곧 입장을 바꿔 컷오프 결정을 수용했다. 두 번째 컷오프 대상자가 된 정 의원은 의정활동 중 뇌출혈로 인해 얻은 장애를 이유로 공천 배제됐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목표한 인적쇄신을 위해선 현역 의원 수명에 대한 컷오프가 필요하지만, 컷오프 결정에는 잡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 앞서 일찍부터 시스템 공천을 천명하며 공천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현재 컷오프설이 제기되고 있는 오제세(4선, 청주서원) 의원은 컷오프 시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공천 관련 잡음이 일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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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마 전략의 득실은

이러한 불출마 선언은 선당후사라는 개인적 희생의 의미와 함께 다음 정치행보를 위한 명분이 된다.

이 같은 불출마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는 통합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있다. 2000년 16대 국회에 입성한 오 전 시장은 당시 한나라당 내 소장파 의원으로 주목받으면서 이른바 ‘오세훈법’이라 불리는 정치개혁 법안 개정을 일궈냈다. 이후 ‘5·6공 인사 용퇴론’을 주장하며 17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이후 오 전 시장은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복귀했고, 2010년 5회 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불출마 전략과 관련해 정치평론가 이종훈 박사는 통화에서 “실질적으로 주로 중진들이 ‘정치 그만하겠다’며 불출마선언을 하는데, 이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다’, ‘개혁공천 내지는 공천쇄신의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선당후사 정신에 따라 희생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다른 의미로는 결국 좀 더 길게 정치를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며 “선당후사 정신으로 희생했다는 명분을 통해 다음 정치행보를 이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노린다는 불출마 전략은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통화에서 “정치에는 현재만 있을 뿐, 다음이라는 게 없다”며 “현재를 포기한다는 건 다음에 무언가를 기약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 굉장한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불출마 선언으로 인한) 반대급부가 반드시 있다고 보기 힘든 상황도 있다. (당의) 설득이 주요했거나 출마해도 당선이 힘들다고 생각할 때 불출마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선 초재선이건 중진이건 상관없이 순식간에 잊힌다. 다선의원이 덜 잊히는 건 아니다”라며 “ 때문에 어떤 이유가 됐든 간에 불출마 선언 자체는 높게 사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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