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무학 자초(無學 自超, 1327-1405)는 우리가 흔히 무학대사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중등교과 과정을 비롯해서 역사 과목에서 우리는 무학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무학대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만큼 무학대사의 생애와 행적에 대하여 남아있는 기록이 적다는 의미이다. 역사적인 인물이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많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은 고대에 생존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고대의 인물의 경우 대부분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나 개인의 문집에서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무학 자초의 경우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생존했던 인물이라 당대의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학 자초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다. 공식적인 인물이지만 행적은 참으로 미스터리하다. 이번 편에서는 무학 자초의 행적에서 엇갈리는 내용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무학 자초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포털에서 제공되고 있는 백과사전에는 대부분 무학 자초의 고향이 경상남도 합천이라고 기록돼 있다. 실제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은 무학 자초가 살았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무학샘, 무학사 7층 석탑 등 무학 자초와 관련된 유적이 남아있다. 그런데 무학자초의 고향이 충청남도 서산이고, 인근 간월도에서 득도했다는 설화가 충청남도 서산 일대에 남아있다. 또한 성해응(成海應, 1706-?)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무학 자초가 서산 간월도에서 태어났다고 적혀있고, 『서산군읍지(瑞山郡邑誌)』 인물조에는 “무학이라는 신통한 승려가 간월도에 머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1)

다음으로 무학 자초의 신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학 대사는 곧 개국 1등 공신[開國元勳]” 2)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무학 자초는 공신 반열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가계도를 살펴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엇갈린다. 무학 자초의 아버지가 박인일(朴仁一)로, 사후 문하시랑에 추증된 고위 관리였다는 기록도 있고, 병조판서였던 박치인(朴致仁)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 외에도 성익재라는 사람이라는 기록이나 문씨(文氏)라는 기록3)은 무학의 성(姓)을 갈아치우는 내용이다. 

더 큰 혼란이 나오는 것은 어머니의 신분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됐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신분에 대한 기록은 무학 자초의 출생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기록에는 무학 자초가 천민이나 서얼(庶孼) 출신이라는 내용이 많다. 그런데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묘엄존자비명(妙嚴尊者碑銘)』에는 어머니가 고성 채씨이며, 신분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4) “묘엄존자”는 무학 자초 사후 태종이 내린 시호이며, 『묘엄존자비명(妙嚴尊者碑銘)』은 무학 자초가 입적, 즉 사망한 직후 태종이 왕명으로 변계량에게 지으라고 명(命)한 것이다. 승려가 입적, 즉 사망한 이후에 그 법력(法力)이 높고, 업적이 많은 경우에는 다비, 즉 화장을 한 후 다비에서 나온 사리를 보관할 부도를 조성하며, 승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돌에 새긴 비석을 만든다. 『묘엄존자비명(妙嚴尊者碑銘)』은 무학 자초의 행적에 대해 지은 대표적인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상을 가진 『묘엄존자비명(妙嚴尊者碑銘)』에 무학 자초의 신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개국공신으로 인정받은 무학 자초의 신분에 대해 노출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예상된다. 즉 무학 자초의 신분이 개국 공신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서얼의 신분이기 때문일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이다. 이 외에도 무학 자초에 대한 행적은 비밀에 쌓인 것이 많다. 특히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다만 글을 배우기 시작 했을 때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는 기록 정도가 전부이다. (다음편에서 계속)  


1) 황인규, 「무학 자초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검토」, 『한국불교학』, 제23권, 한국불교학회, 1997, 188-189쪽.
2) 『정조실록』 34권, 정조 16년(1792) 윤4월 24일 임진 1번째 기사.
3) 황인규, 「무학 자초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검토」, 『한국불교학』, 제23권, 한국불교학회, 1997, 189쪽.
4) 황인규, 「무학 자초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검토」, 『한국불교학』, 제23권, 한국불교학회, 1997,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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