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관 작가

김재관의 회화는 전통적 유형의 표현형식 체계에서 비껴 나 있으며 또한 일체의 회화적 감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주목할 만하다.

특히 회화가 보편적으로 그림이 가져다주는 시각언어의 즐거움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니 그러한 생각이나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Cube-Secretness 12-2001, Acrylic on canvas, 193.9x259㎝, 2012

그의 화면은 온통 사각형 또는 삼각형등 기하학 세계로 가득 차 있다. 적어도 그에게 기하학적 조형이란 금세기 회화에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그리드(Grid) 즉 평면성의 정의, 평면을 받쳐주는 기본적인 개념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이러한 형식을 그의 미술에 있어 기초적이며 절대적 명제인 “관계”로 규정하고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고 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의 이러한 기하학적 사고의 출발이 이미 60년대와 70년대 작품에서 그러한 원형을 발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미술에 대한 기하학적 인식이 초기부터 명확한 입장을 그가 가지고 있다는 것과 기하학적 관심이 예술세계에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회화적 세계의 출발이 60년대 말, 70년대 초 화단의 앵포르멜 이후 찾아온 기하학적 추상세계와 이어지고 대다수의 화가들이 회화의 평면성을 의식하면서 작업을 계속했지만 대부분이 초기의 그러한 세계관을 포기하거나 괄목할만한 작업을 남기지 못한 것을 본다면 그는 일찍이 자기의 세계를 열어 보인 작가로 주목할 만하다. 

80년대로 넘어가면서 그의 작품은 다소 표현적인 기하학 구조 속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그가 지향했던 그리드는 90년대 이후 회화의 평면성을 규정하는 차원에서 더욱 성숙된 형태의 원근법을 지닌 조형으로 옮겨갔다. 성숙된 형태와 조형, 그것은 단순히 조형상의 구조적 형식을 드러내는데 한정되지 않고 자연의 본질과 기하학적 관계를 의미 있게 해석하는 차원으로의 전환을 지칭하는 것이다.

Absrract 67-160.6×50.0cm, Oil on canvas, 1967

그는 단순한 화면의 조형성만을 위해 기하학과 사각형을 응용하고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김재관은 회화언어의 기본구조를 사각형 또는 격자구조에 두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자연과의 조우 또는 완성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의 평면성은 입체적 기하학의 형태를 넘어선다. 

분명 그에게 있어 미술이란 언어를 시각적인 형태로 되돌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절대적 아름다움을 삼각형이나 사각형을 통해서 구하려 했다면 그는 훨씬 단순한 기하학적(Geometrical) 형태들을 이용한 옵티칼 예술가로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미술의 형식주의자 혹은 수학자의 영역을 넘어서고자 의도한다.  

이미 그리드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 또는 예술적인 표현의 출발이라는 점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리드에 대한 견해는 그래서 새롭기도 하고 매우 이지적이며 논리 정연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Myth of Cube 2017-5 180×90cm, Acrylic on canvas

김재관의 순수한 형태로 환원된 기하학적 도형들은 입체성을 띄거나 원근법적 시형식에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추구한 질서와 균형, 비례가 숨어 있다. 그는 이 질서 등의 구성관계를 철학적으로 추출하거나 해석하려는 의도를 지속적으로 실험해 왔다.  

90년도 이후에 제작된 그의 색면 회화에는 빅토르 바자렐리의 시각적인 옵티칼 아트의 수학적인 아름다움이 보이기도 하고 몬드리앙의 절제된 하모니의 극적인 비례가 그리드를 통해 완결된 패턴 형식을 창조하고 있다. 

이들이 기하학을 회화적 규율 속에 들여와 절대주의 공간에서 형식을 창조하려는 것에 집중해 있는 반면 김재관은 손보다는 이성적 체계 위에서 생각하는 철학자로서의 화가적 면모를 오히려 드러내고 있다. 

Relationship-Fiction 2017-01240×190×50×15(H)cm, Acrylic on canvas

그러나 최근 김재관의 작업은 두 가지의 변화된 중요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색채구사나 조형에 있어서 엄격한 형태의 유지와 절제를 보여주던 형식들을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의 작품들과 달리 화면의 논리적 구성에서 일탈해 2차원적 평면성을 구사하기도 하고 입체적 형태의 흔적만 남겨두고 형태를 지워버리는 감성적 평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기하학적 세계관으로 출발했던 세잔느가 결국 기하학적인 표현을 통해 형태를 단순화하고 큐빅의 가능성을 평면에서 물었던 치열함이 빚어낸 미술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김재관의 기하학적 형태는 그러한 자연의 모습을 조형화하기 위해 탐색한 시작인지도 모른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그는 모더니스트들이 모더니즘의 순수성을 획득하기 위해 대부분 <메타포>나 <의미>를 제거한 사각형이나 입방체 등으로 환원된 “사물자체”를 선택한 것과 비해 김재관은 “사각형과 입방체는 그 속에 내재된 삼차원적 입방체의 특수한 원리를 조형화” 시키는데 있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표현은 “실재의 차원을 벗어나서 삼차원의 입방체가 지닌 입체의 독특한 특징들의 비의성을 회화적으로 실천함으로써 기하학 정신의 함의”를 담고자 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가 이제 기하학의 특징과 비의성을 전제하면서 풀어내는 최근의 작업들은 그의 회화가 완전한 이성의 체계에서가 아니라 풍부한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를 지층에 깔고 구축된 완벽한 기하학적 이성의 건축물임을 증명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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