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로 돌연사한 30대 경륜선수
경륜 동료들, 고강도 훈련 영향 추정
공단 “질병 사망은 보상 대상 아냐”
“보상 미흡” vs “최선” 이견 계속돼
야구·농구 등 종목도 비슷한 상황
선수에게 보상은 ‘필수불가결’ 복지

경륜 경기 모습 ⓒ뉴시스
경륜 경기 모습,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전도유망했던 30대 경륜선수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올해 경륜 데뷔 8년 차의 故 변무림(당시 33세) 선수다. 변 선수는 수면 중 발생한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아들 100일 날, 자신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그렇게 유명을 달리했다.

동료 경륜선수들은 평소 누구보다 건강했던 변 선수가 급작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된 데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변 선수가 떠난 후 남겨질 그의 아내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때문에 경륜선수들을 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변 선수와 남은 가족을 위해 보상 방안을 마련해 주길 바랐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단 측은 유족에게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매일같이 열심히 페달을 밟아 국가에 크나큰 이익을 안겼던 변 선수, 그의 마지막이 이렇게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왜일까.

경륜 경기가 치러지는 스피돔 <사진 출처 = 사진=한국사진기자협회>

“열심히 달렸을 뿐인데...”

변 선수는 골프를 전공해 관련 업계에서 일을 하며 사이클 동호회 활동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오준희 선수를 통해 경륜에 입문하게 됐고, 오 선수와 이용희 선수의 가르침을 받아 2013년 20기 경륜선수 후보생으로 합격해 본격적인 선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비선수 출신이지만 좋은 성적을 거둬 데뷔와 동시에 경륜계의 주목받았다. 데뷔 직후 5연승을 기록하며 특별승급해 우수급 선수로 활동해왔다. 올해만 해도 7경기에 출주해 1착수 3회, 2착수 1회, 3착수 1회를 거머줬다.

데뷔 8년 차의 변 선수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춰 향후 특선급에 올라 활동할 것으로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지난 2월 29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침에 그를 깨우던 아내에 의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정확한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만, 현재까지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변 선수는 키 181cm·몸무게 103kg의 우월한 체격 조건을 가졌고 평소 지병도 없었다.

경륜선수들은 2년에 한 번씩 재등록 검증을 위한 신체검사를 실시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견돼 통과하지 못하면 더는 선수 생활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변 선수는 재등록 검증을 문제없이 통과해 최근까지도 선수 활동을 이어왔다.

경륜 경기 모습,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누구보다 건강했던 변 선수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떠나게 된 데는 고강도 훈련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한국경륜선수협회는 추정했다.

국가의 대표적 사행산업인 경륜은 사이클을 타고 333.33m 길이의 경사진 타원형 트랙을 빠르게 돌며 순위를 겨루는 종목이다. 때문에 사람의 체력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고강도 훈련이 요구된다. 80~200km를 달리는 장거리 주행이나, 순간적으로 시속 70km를 달리는 인터벌 훈련을 일상처럼 반복한다.

변 선수는 사망 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훈련에 임했다. 다만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장에서 훈련이 불가능해지며 변 선수는 사망 전 이틀간 실내·외 운동을 했다고 한다.

협회 측은 훈련에 따라 실내·외를 오가며 급격한 기온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훈련을 해 이것이 악영향을 미쳐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실제 사망 전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변 선수는 코피를 많이 흘렸고 다른 때보다 숨소리도 거칠었다고 했다.

동료 경륜선수들은 무엇보다 변 선수가 떠난 후 남겨질 그의 아내와 갓 100일 넘은 아들을 우려했다. 때문에 경륜선수들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관리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그간 경륜계를 빛내온 변 선수와 남은 가족을 위해 보상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단은 유족 측에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라고 통보했다.

경륜선수는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상해사망·후유장애 시 1억8000만원~2억원 지급되는 단체상해보험이 가입돼 있긴 하지만 경기나 훈련 중 사망·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변 선수는 이마저도 받을 수 없다.

공단은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이같이 답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총괄본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단에서는 선수들을 위해 훈련이나 경주 중 발생하는 상해·사망 사고 시 보상해 주는 단체상해보험을 가입하고 있다”며 “그러나 변 선수의 경우 주무시다 돌아가신 경우로, 질병에 의한 사망이기 때문에 해당 보험으로는 보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 외에 공단에서 소속 선수를 위한 별도의 보상 방안에 대한 질문에는 “반복되는 말일 수 있으나 변 선수의 질병은 단체상해보험 대상이 아니며 소액의 경조비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확정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뉴시스

협회 “변화는커녕 관심 밖”
공단 “최선 다하고 있어”

경륜선수들의 경기·훈련 중 골절 등 상해를 입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반신마비 등 중상이나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있다.

실제 1999년에는 도로 훈련 중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2004년에는 도로 훈련 중 10t 트럭에 깔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사고가 있었다. 2003년과 2007년에는 훈련 중 낙차사고로 2명의 선수가 사망했다. 2009년과 2019년에는 도로 훈련 중 교통사고로 2명의 선수가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크고 작은 부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공단은 선수들을 위한 보상 방안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선수들의 불만은 크다.

지난해 1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경륜·경정선수 1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경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87%가 공단 보상방안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결과를 토대로 공단은 현재 지원은 최소한의 지원 수준이기 때문에 대다수 선수가 부상을 당할 경우 생계 위기를 겪는다고 판단, 선수 복지기금을 활용해 부상선수에 대한 2차 수술비, 생활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이전부터 경륜선수 사망 사고가 많았고 보상과 관련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지만 공단 측은 묵묵부답이었다는 게 한국경륜선수협회의 말이다.

한국경륜선수협회 이경태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상 방안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경륜선수는 상해율이 높아 개인보험 가입도 어렵다. 단체상해보험이 없으면 시합을 주관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입한 것이지 선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공단이 경륜·경정으로 해마다 벌어들이는 돈이 2조원에 가까운데 정작 선수들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변 선수 가족에게 협회에서 지난해부터 시행한 자체 경조사비 지급 규정과 매월 선수 개인당 10만원씩 내는 의무비로 모인 금액만 전달된 상황”이라며 “선수가 사망하면 유가족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공단에서 처우를 해주는 것이 공단이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지만, 공단은 전혀 변한 게 없고 관심 밖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총괄본부 관계자는 “선수 안전 및 훈련을 위해 지원 폭도 확대하고 은퇴 후를 위한 연금보험도 월 15만원씩 10년 지원하고 있다. 단체상해보험도 연 4억원 이상이다”라며 “엄밀히 따지면 선수 개개인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공단 측의 의무 사항은 아니다. 그럼에도 선수들을 위해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선수들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공단도 주어진 예산 범위 안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경륜선수 보상 방안 미흡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현 미래통합당)은 국민체육진흥공단 감사에서 경륜선수가 훈련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음에도 위로금과 지원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점, 대부분의 선수들이 퇴직금도 없이 일체의 부대비용을 자부담해야 하는 점 등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단은 △사고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 및 보상 △선수 인권 개선 △합당한 수준의 처우 개선을 촉구했고, 당시 공단은 경륜선수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경태 회장은 아직까지도 피부로 와닿는 변화가 없다고 호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수 권리구제 개선돼야

보상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비단 경륜선수들만은 아니다.

현행법상 야구, 축구, 농구 등 국내 프로스포츠 선수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인정돼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 보험사를 통해 선수들이 보상받기는 어렵다. 통상 운동선수는 국내 보험사 직업 및 위험등급(A~E 단계)에서 △격투기 E등급 △격투기 제외·장비 착용 E등급 △격투기 제외·장비 미착용 C등급으로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있다.

고위험군의 경우 가입이 제한되거나 보험료 산출 시 차등 적용될 수 있다.   

이처럼 직업 특성상 부상 가능성이 높아 운동선수 개개인이 상해보험에 가입하기는 까다로워 대게 소속 구단과의 계약에 따라 치료비를 부담하게 된다. 때문에 치료비에 대한 선수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선수들도 노동자로 인정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년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 2014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프로선수들에 대해서도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이 적용되도록 조치해 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프로선수들에 대해 특고방식(특수형태근로종사자)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바뀐 바는 없었다. 

선수들은 국가 혹은 관계 기관의 위상을 높이고자 밤낮 가리지 않고 맹훈련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상은 선수 생활을 유지하느냐, 멈추느냐가 달린 치명적인 위험이다. 때문에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은 선수에게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복지다.

이를 국가와 관계 기관이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당사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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