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로고 포함돼 실제 기사로 오해하기도
코로나19 공포에 중국동포 향한 두려움·분노

충북대학교 중국인 유학생들이 지난 1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에 따라 2주간 기숙사 격리 생활을 한 뒤 퇴소하고 있다. 사진제공 = 충북대
충북대학교 중국인 유학생들이 지난 1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에 따라 2주간 기숙사 격리 생활을 한 뒤 퇴소하고 있다. <사진제공 = 충북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1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한 중국동포(조선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긴급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기사가 유포됐다.

이 기사에는 “김일성 생일과 겹치는 날짜인 4·15 총선에서 조선족이 선거 당락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가 됐다”며 “4월 이전에 조선족 동포 수백만명이 입국하기로 결정돼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의 길이 열리게 됐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가짜뉴스다. 유포자는 국가기간 통신사인 ‘연합뉴스’의 로고를 달아 실제 기사로 오해하도록 조작했다.

헌법 제76조 제1항은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해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2월 임시국회는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때문에 긴급명령의 요건인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를 충족할 수 없다.

선거권을 부여한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 지난 200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 제15조 제2항 제3호는 영주권 취득일 후 3년 이상 한국에 거주한 외국인에 대해 선거권을 부여한다. 다만 이는 지방선거에만 해당되며 대선 또는 총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피선거권도 부여되지 않아 출마는 할 수 없다.

국가기간 통신사 ‘연합뉴스’의 로고를 사용한 가짜뉴스.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국가기간 통신사 ‘연합뉴스’의 로고를 사용한 가짜뉴스.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방선거 투표권 박탈’ 주장도

해당 가짜뉴스의 말미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중국인 영주권자 지방선거 투표권 박탈에 관한 청원’의 링크가 첨부돼 있다. 이 청원을 올린 청원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중국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주는 행위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들에게 맡기는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중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13일 오전 11시 기준 1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청원자는 “시민권자만 누릴 수 있는 투표권을 소중히 지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며 지방의 중국정부화·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조건을 충족한 영주권자에게는 법령에 근거해 선거권이 부여되지만, 이 조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성년이어야 하고, 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해야 한다. 이 밖에 △50만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5명 이상의 한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외국인투자가 △국적 취득 요건을 갖춘 재외동포 △국외에서 일정 분야의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으로서 국내 기업 등에 고용된 사람 △국내 대학원에서 정규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 △일정 분야의 학사학위 이상 학위증 또는 기술자격증 소지자 중 국내 체류기간이 3년 이상이며 국내 기업에 고용돼 일정 금액 이상의 임금을 받는 사람 등 영주권 취득 조건을 충족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지난 2018년 치러진 지방선거의 전체 유권자 수는 4290만7751명이다. 이 중 선거권을 가진 외국인은 10만6205명으로 0.24%에 그쳤다. 중국인만을 따진다면 이보다 훨씬 적은 수가 선거권을 갖고 있다. 이를 다시 지역별로 나눈다면 중국인 유권자들이 모두 뜻을 모아 투표한다고 해도 ‘지방의 중국정부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혐오기반 가짜뉴스, 합리적 해결책 마련 걸림돌”

이 같은 가짜뉴스가 반복되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조선족들이 국내에서 여론을 조작한다는 ‘차이나 게이트’ 논란 등 중국 혐오 정서가 강화하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는 두려움, 분노를 표출하려는 욕구가 생기는데,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이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중국인에 대한 경계심,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이전부터 존재했다”며 “이번 중국혐오 가짜뉴스는 한 가지 요인이 아니라, 직·간접적인 것들이 결합된,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혐오에 기반한 가짜뉴스가 유포되는 배경에 대해 윤 교수는 “평소 갖고 있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정보를 편향되게 수집하고, 다시 이를 통해 편견을 공고히 한다”며 “이 같은 확증편향으로 인해 중국동포에 대한 부정적인 가짜뉴스를 쉽게 믿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혐오의 대상은 한 집단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옮겨 다닌다”며 “지금은 중국동포가 혐오의 대상이지만, 다음에는 대구·경북지역이 될 수도 있고, 재난상황에 취약한 계층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든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혐오에 기반한 가짜뉴스는 단순히 혐오표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불신을 조장한다”면서 “결국 공동체의식을 약화시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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