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청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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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군(軍)에는 군인과 군무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보조원, 연구(보조원), 운전원, 경비원, 정비원,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의료업무 종사자, 상담관, 관찰관 등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노동자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취업규칙을 전수 조사·분석한 결과 군사훈련 강요와 정치활동·집단행위 금지 등 위법하거나 부당한 문제점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정의당 비정규직노동상담창구(이하 비상구)가 국회 국방위원회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부대별 민간근로자 업무 및 인원수, 부대별 취업규칙’을 검토해 분석한 결과 △민간노동자 군사훈련 참여 지시 △업무와 무관한 기재 항목이 포함된 인사기록카드·신원진술서 작성 요구 △정치활동·노동운동·집단행위 금지 △휴직기간에 대한 ‘계속근로기간’ 산입 배제 △과도한경업 금지 △의무 연봉 비밀유지 의무 △야간노동 휴게시간 확대 통한 최저임금 회피 등 10여가지 부당한 규정들이 다수 확인됐다.

비상구는 문제 제기된 규정들이 모두 부당하고 반드시 바뀌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자의 임금체불과 직결되는 ‘휴직기간에 대한 계속근로기간 산입 배제’ 조항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24일 이전까지 시행된 ‘공무직 근로자 등 인사관리 훈령’ 제49조(휴직 및 복직)에서는 산재요양기간, 가족돌봄휴직, 육아휴직, 신체 또는 정신상 장애요양, 법령 규정에 따른 의무이행기간 등에 한해 휴직 승인이 가능하다고 정했다. 해당 휴직기간은 계속근로기간에 산입하지 않았다.

계속근로기간은 근로계약 존속기간으로써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한 때부터 근로계약 종료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계속근로기간에는 △법정휴가 △출산휴가·유산휴가·육아휴직 등 휴직기간 △연차유급휴가 △생리휴가 △주휴일 △업무상 재해나 질병으로 인해 요양하기 위한 휴직기간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직기간 △법정구속기간 △무단결근기간 △회사 사정에 따른 휴업기간 △영업양도 △기업합병으로 인해 회사를 옮긴 경우 △수습기간 △정규직 전환 전 기간 △부당해고로 인정된 기간 등이 해당된다.

계속근로기간은 퇴직급여 산정 시 기준이 되는 근속기간과 연차유급휴가를 정하고, 기간제 노동자나 파견노동자의 근로계약기간 산정 기준이 되는 중요한 요소로 임금과 노동자 고용형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휴직기간을 계속근로기간에 산입하지 않는다면 기간제·파견직노동자의 고용형태나 임금체불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의당 비상구 최강연 노무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간제 노동자로 2년을 일하면 예외 조항이 아닌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파견직 노동자도 2년 후에는 사용주에게 파견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하는데 이 기준이 계속근로시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계속근로기간을 인정하지 않는) 규정은 실질적인 임금체불을 야기할 수 있으며, 퇴직금이나 휴가를 산정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며 “그간 계속근로기간을 산입하지 않아 과거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진즉에 정규직 노동자가 됐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취업규칙에 법규위반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국방부가 서면을 통해 본지에 보내온 입장문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해 12월 ‘공무직근로자 등 인사관리 훈령’을 개정해 그달 24일부터 시행했다. 주요 개정 내용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 내용 반영 △휴직기간의 계속근로기간 산입 △업무상 질병휴직 기간 변경 등이다.

이에 따라 휴직 승인 기준은 유지하되 휴직기간을 퇴직금 산정을 위한 계속근로기간에 산입되도록 변경했다. 다만 호봉산정을 위한 근로기간 또는 근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또 국방부는 개정 공무직근로자 등 인사관리 훈령과 고용노동부 표준취업규칙을 토대로 만든 ‘표준취업규칙(안)’에 의거해 각극 부대 취업 규칙 전면 개정을 추진 중이다. 오는 4월까지 개정안을 마련해 공무직근로자 및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 지방노동청에 신고할 계획이다.

그러나 최 노무사는 개정 ‘공무직근로자 등 인사관리 훈령’ 내용이 이전 위법사항을 인정함과 동시에 호봉산정에는 산입하지 않는다는 위법행위를 또다시 저지르는 꼴이라며, 잘못된 훈령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취업규칙이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최 노무사는 “예를 들어 육아유직을 1년 사용했고 호봉 당 월급이 20만원 차이가 난다고 가정하면, 육아휴직 기간을 호봉 산정 시 인정하지 않으면 원래보다 한 호봉 낮게 받아야 하는데 한달이면 20만원, 1년이면 240만원이다”라며 “호봉은 연공(年功)을 기초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계속근로기간이 산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나 산업재해보상보호법에서 산재요양기간은 산재로 인한 불이익이 금지돼 있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가족돌봄휴직과 육아휴직 기간을 호봉 산정에서 제외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며 “신체 또는 정신상 장애요양과 법령 규정에 따른 의무이행기간은 법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논쟁의 여지는 있을 수 있으나 노동자 보호의 관점에서 호봉 산정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노무사는 잘못된 취업규칙으로 인해 군대 내 민간노동자가 피해 입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군 전체 취업규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공무직근로자 등 인사관리 훈령’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개정 전 발생했을 수 있는 피해 사례를 전수조사하는 한편 국방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노무사는 “‘공무직근로자 등 인사관리 훈령’은 군 전체 취업규칙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는 게 핵심이다. 근데 지금은 이 가이드라인이 잘못된 상황”이라며 “국방부가 이 문제에 심각성을 인정한다면 당국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더불어 해당 조항으로 인한 임금체불 사항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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