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추악한 실체 수면 위
가해자 처벌 및 범죄 예방 촉구 빗발쳐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성폭력처벌법?
“졸속 통과, 제대로 된 법으로 응답해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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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지난 2019년 2월, 추악한 디지털 성범죄 현장의 민낯이 공개됐다.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이라 불리는 단체채팅방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을 불문하고 다수 여성을 협박해 촬영한 성착취물이 공유됐다.

텔레그램 n번방의 진실이 세간에 알려지고 가해자들의 처벌 및 범죄 예방을 촉구하는 요구가 거세졌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관련 청원글들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을 들을 수 있게 됐고, 국회 국민동의청원도 10만명을 넘겨 국회 입법청원 ‘1호 법안’으로 채택됐다.

그리고 지난 5일 입법청원의 취지를 반영한 일명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으로 알려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에서는 이 법안이 기존 오프라인, 신체침해, 음란여부 등을 중심으로 한 제도를 보완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가해자 처벌 혹은 피해자 지원과 같은 ‘사후 대책’이 아닌 범죄 예방에 초점을 둔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사방의 핵심 운영진으로 추정되는 조모씨 ⓒ뉴시스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

지난 2018년 11월 텔레그램에서는 성착취 사건이 시작됐다. 남성이 여성을 노예라 칭하며 협박으로 받아낸 성착취 사진이나 동영상, 심지어 신상정보까지 공유하는 단체채팅방이 생성됐다.

‘텔레그램 n번방’이라 알려진 이 채팅방은 닉네임 ‘갓갓’이라는 인물이 1번방부터 8번방까지 8개의 채팅방을 만들어 성착취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됐다. 갓갓은 자신이 올린 성착취물을 ‘고담방’에 공유하던 닉네임 ‘와치맨’에게 넘기고 지난해 2월 사라졌다. 이를 이어 받아 운영해오던 와치맨도 9월 잠적했고 이후 비슷한 형태의 단체채팅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텔레그램 n번방 중에서도 닉네임 ‘박사’가 운영하는 ‘박사방’은 가장 악랄하다고 알려졌다. 그는 고액 모델 알바를 미끼로 신상정보 및 몸사진 등을 요구했다. 점차 수위 높은 사진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신상정보를 빌미로 협박하며 성착취를 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는 이 같은 방법을 통해 확보한 성착취물을 텔레그램 단체채팅방에 공유했는데, 그는 입장료 명목으로 암호화폐 결제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까지 구축해 수익을 창출했다.

현재까지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 수는 최소 수만명에서 최대 26만명으로 추정되며, 피해자 수는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경찰은 텔레그램 n번방과 관련해 박사방의 핵심 운영진으로 추정되는 조모씨 등 피의자 14명을 체포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들 중 5명은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관련 청원 일부 캡처> 

국회 청원 1호 법안, 졸속 통과?

익명 대학생 추적단의 최초 신고 후 언론에까지 보도되면서 n번방은 도마 위에 올랐다.

극악무도한 범죄의 온상인 텔레그램 n번방에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여론이 빗발쳤고 이는 각종 청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텔레그램 n번방과 관련한 다수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성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 수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21만 9705명의 동의를 얻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도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을 올린 성범죄 신고 프로젝트 ‘리셋’은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유포자 일부가 검거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사한 성격의 채널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성범죄의 표적이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이는 텔레그램을 통한 여성착취가 단순히 n번방에 국한되지 않으며, 피해자가 결코 소수가 아님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리셋은 “텔레그램 성착취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며 심각한 인권유린이므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더 이상 피해자들이 고통 받지 않도록, 디지털성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청원은 30일 이내 10만명 동의를 얻으면 소관상임위에 자동 회부되는 국민동의청원의 조건을 충족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리고 국회는 지난 5일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국회 청원이 법안화 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고 밝혔다. 다만 단독 산정이 아닌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신설하자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 발의안 4건과 병합돼 통과됐다.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신체 등을 담은 영상물 등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하는 기술) 제작·반포(頒布)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한편 영리를 목적으로 반포하는 행위는 가중 처벌한다.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반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만일 영리 목적이 확인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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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 앞날은

그러나 리셋과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등 관련 단체에서는 이번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과 관련해 민의를 반영한 개정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고 졸속한 대응이라며 국회를 비판했다.

텔레그램 성착취와 더불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성범죄를 근본적으로 대응하기는 너무나 부족하다며, 국회가 다시 제대로 된 입법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리셋은 “법사위를 통해 가해 수법 중 하나인 딥페이크 기술에 대한 처벌 방안은 마련됐지만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청원이 본회의에 단독 상정되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이어 “텔레그램과 추후 해외 플랫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해법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고 정책적인 압박 수단에 대한 제기도 없었다”며 “청원 내용이 매우 축소돼 소극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돼 크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리셋은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에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2차 가해 방지 등이 포함된 대응매뉴얼 제작 △범죄 예방을 위한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등을 촉구했다.

대책위도 “이 문제는 텔레그램이라는 특정 플랫폼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남성문화, 즉 여성 성착취를 통해 완성되는 남성 성착취 문화와 연결됐기 때문에 더욱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착취 유포를 비밀로 한 협박 행위 처벌 △성적 이미지 온라인 전시·공유 시 가중 처벌 △불법촬영물 소지죄 처벌 △불법 촬영물 삭제 불응 시 처벌 △온라인서비스 제공자 의무 명시 필수 △성폭력 범죄 구성요건 행위 확대 △온라인 그루밍 개념규정 및 형법상 처벌법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이 반영될 틈도 없이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은 지난 17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오는 6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대보다는 우려와 비판 속에서 출발하는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이 향후 디지털성범죄 예방에 얼마만큼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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