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강간문화’가 만들어낸 n번방 성착취…26만명 모두 가해자다
[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강간문화’가 만들어낸 n번방 성착취…26만명 모두 가해자다
  • 김태규 기자
  • 승인 2020.03.23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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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메신저 앱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 유통 채팅방인 ‘박사방’을 운영한 조모씨가 지난 1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 배포 등) 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스마트폰 메신저 앱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 유통 채팅방인 ‘박사방’을 운영한 조모씨가 지난 1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 배포 등) 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 영상과 사진, 합성사진 및 영상 등을 공유하고 판매해 온 일명 ‘박사방’ 운영자 조모씨가 구속됐습니다.

전 국민이 이 같은 범죄에 경악하며 가해자와 가담자 모두를 처벌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피해자들을 비난하거나 피해 영상을 구하려는 이들이 많아 2차가해가 난무하는 상황입니다.

스마트폰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신상이 노출될 위험이 낮아 이 같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합니다.

‘박사방’은 ‘n번방’에서 파생된 성착취 영상·사진 유통 단체 채팅방입니다. n번방은 지난 2018년 11월경부터 시작됐으며, 닉네임 ‘갓갓’이라는 인물이 1번방부터 8번방까지 8개의 비밀채팅방을 만들어 성착취 영상과 사진을 공유한데서 n번방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갓갓은 지난해 2월 자신이 운영하던 채팅방을 닉네임 ‘와치맨’에게 넘겨주고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해 9월, n번방을 운영하던 와치맨 역시 잠적했고 이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성착취 단체 채팅방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단체 채팅방 중 하나가 바로 박사방입니다. 박사방의 운영자인 조모씨는 암호화폐로 성착취 영상물 유통 채팅방 입장료를 받는 등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통칭 ‘n번방 사건’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SNS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했습니다. 주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경찰을 사칭해 계정이 신고 됐다거나 신상정보가 유출됐다며 수사를 빌미로 계정 아이디, 비밀번호 및 신상정보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신상정보를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며 성착취 영상 및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또 n번방에서는 가담자(n번방 입장, 성착취 영상물 구매자)들에게 지인의 사진을 전송받아 얼굴을 음란물과 합성하는 이른바 ‘지인능욕’도 이뤄졌습니다. 불특정 대상이 아닌 지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이뤄진 것입니다.

더욱이 성착취 영상물 유통 단체 채팅방에는 약 26만명(n번방, 박사방 등 누적 이용자 수)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여성들은 더욱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조씨의 검거로 n번방 사건이 이슈가 되자 n번방 운영자는 물론이고 성착취 영상물을 구매하거나 공유한 이들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20일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23일 오후 4시 기준 무려 16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의해 해 청와대 답변 요건을 갖춘 상황입니다.

n번방의 성착취 사건이 알려지자 이를 두고 2차 가해가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1일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처벌받나’라는 질문에서 질문자는 “정당한 성인콘텐츠 이용료를 내고 시청하는 게 잘못이냐”라며 “직접 영상을 촬영해 올린 여성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런 영상을 올리지 않았다면 26만명의 피해자도 없었을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놨습니다.

하지만 n번방에 유통된 성착취 영상물은 ‘정당한 성인콘텐츠’가 아닙니다. 협박과 강요로 만들어진 범죄피해 영상입니다.

그리고 n번방 피해자들은 처벌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협박·강요로 어쩔 수 없이 영상을 전송해야 했던 여성들뿐입니다. 그럼에도 질문자는 피해자를 범죄자로, 영상을 구매한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뒤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유통된 성착취 영상물을 구하려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검색사이트 구글에서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n번방에서 유통된 성착취 영상이 자동완성 검색어로 추천되기도 하고, 해외 음란물 사이트에서는 텔레그램이 상위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는 지난 22일 “이런 이슈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영상이 구해져서 봤는데 이번 건 검색해도 전혀 안 나온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은 현재 삭제된 상황이지만, 블라인드 이용자들은 이 글을 캡처해 “역겹다”, “지가 성범죄자인지도 모른다”며 게시자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6만명이라는 가담자 숫자는 과장된 것이며, 일부 남성들의 범행으로 전체 남성을 매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26만명이라는 숫자는 누적 가담자 수이기에 실제 n번방 가담자 수는 이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n번방 입장료를 나눠서 부담하고 영상을 공유하는 이들을 감안한다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들도 당연히 모든 남성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주변에 가담자가 있을지, 누가 자신의 사진을 합성하고 공유할지 알 수 없어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불안을 겪게 됩니다.

이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성들이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여성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남성집단 내에 강력히 자리 잡은 강간문화를 없애는 데 동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2차가해를 멈추고 이 같은 범죄는 운영자와 가담자 모두 강력하게 처벌받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23일 n번방 사건과 관련해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경찰에 가담자에 대한 조사를 주문했습니다.

정부의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신속히 이뤄지고, n번방 운영자는 물론 가담자들이 모두 엄중 처벌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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