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넘어 평등으로①] 번번이 무산된 차별금지법…14년째 제자리걸음만
[차별을 넘어 평등으로①] 번번이 무산된 차별금지법…14년째 제자리걸음만
  • 김태규 기자
  • 승인 2020.03.28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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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3년 처음 논의된 차별금지법은 그간 수차례 입법이 시도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을 금지해 인권을 보장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을 허용하면 동성애를 허용하게 되는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보수 개신교계의 압박으로 차별금지법은 입법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자 [차별을 넘어 평등으로]를 기획했다.

변희수 전 하사 ⓒ뉴시스
변희수 전 하사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변희수 전 하사의 강제 전역, 숙명여대 입학생 등록포기 등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가 불거지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변 전 하사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성별정체성에 의한 차별행위 개연성 △피해자의 기본권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될 수 있는 점 △전역심사위원회에서 전역으로 결정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발생 우려가 있는 점 등을 들어 긴급구제를 결정하고 전역심사위 개최를 조사기한(3개월) 이후로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육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변 전 하사의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숙명여대 입합생 A씨의 경우 법적 성별정정이 이미 이뤄졌음에도 숙명여대 내 트랜스 혐오 기류에 공포를 느껴 입학을 포기했다.

A씨는 입학포기에 대해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며 “나는 비록 여기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이 같은 사례는 그간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 2018년 10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주최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0.20 평등행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 2018년 10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주최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10.20 평등행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차별금지법 마련 위한 정부의 입법시도

정치권의 차별금지법 논의는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당시 인권위는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성별, 성적 지향,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출신지역, 장애, 신체조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혼인, 임신, 사회적 신분 등 어떤 이유로도 불합리한 차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목표로 논의를 이어왔다. 이후 2007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법예고는 재계와 종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됐다. 기업들은 학력(學歷), 병력(病歷)에 대한 차별금지는 경쟁력 있는 직원을 선발하기 위한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을 것이라며 반대했고,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국회에서도 ‘의회선교연합’이라는 여·야를 초월한 단체가 출범해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 항목을 삭제해야 한다며 반대에 나섰다.

결국 이처럼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법무부는 차별금지 사유에서 병력·출신국가·언어·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성적 지향·학력 등 7개를 삭제해 입법예고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2008년 제17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후 2010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법안 발의는 무산됐다.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바른교육교사연대,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이 지난 2013년 8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뉴시스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바른교육교사연대,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구성원들이 지난 2013년 8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뉴시스

차별금지법 제정 나선 국회…보수 개신교 반발로 무산

지난 2011년 12월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듬해 5월 제18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권 의원의 차별금지법이 폐기된 뒤인 2012년 11월 당시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듬해 2월에는 당시 민주통합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한길·최 의원은 보수 개신교계의 항의에 법안을 철회했다. 김재연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역시 보수 개신교의 거센 반발에 통과되지 못하고 표류하다 결국 2016년 5월 제19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이후 2013년 2월, 정부는 UN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차별금지법 추진을 검토하기로 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국정과제에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포함해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일어나던 2017년 2월까지 정치권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2017년 2월 당시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은 국회 저출산고령화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차별금지법 논의를 법무부와 정부부처에 제안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장미대선이 치러지면서 정치권의 논의는 미뤄졌다. 다만 당시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차별금지법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성이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성별, 장애, 피부색, 성적 지향 등 20가지 차별금지 사유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인권위법이 존재하므로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굳이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1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19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 집회 외국인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3월 1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19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 집회 외국인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인권위법 있지만 강제조항 없어 유명무실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논의를 반영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인권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은 불필요하다고 하지만, 인권위법은 인권위의 직권 조사 권한, 긴급구제 조치 권고를 보장할 뿐 차별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두지 않아 법적 구속력이 없다.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은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입 조건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EU 회원국은 높은 수준의 차별금지법을 두고 있다. 이밖에도 아르헨티나, 네팔,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도 차별금지법이 마련돼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해왔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위원회)는 지난 2009년 한국에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을 차별금지 사유로 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한국정부는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권고에 따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UPR의 권고사항 70개 중 차별금지법을 포함한 42개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이후 2017년 10월 유엔 UPR 제3차 심의에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등을 포함한 24개국이 한국에 차별금지법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HIV 감염 등을 차별금지 사유로 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재차 권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차별을 직접 겪고 있는 소수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투데이신문>은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들을 만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과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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