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 그리고 4월 꽃피는 봄날이 왔다. 그 봄은 제일 먼저 최지윤 작가의 화폭에서 피어났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온통 화사한 모습으로 지천에 핀 꽃들이었다. 

그러나 저희들 꽃들만 온 것은 아니었다. 지독하게 화려하고 고혹적인 자태를 지닌 새들도 함께 데불고 왔다.

사람들은 그런 그림들을 일컬어 화조화(花鳥畵)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화조화는 꽃과 조류를 그린 그림을 일컫지만, 흔히 보편적으로는 동물과 식물이 그려진 모든 그림을 통칭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러한 화조화는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부터 조선 시대 민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사에서 그 역사는 대단히 길고 유구하다.

특히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 많은 불화 속에서도 그런 요소들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처럼 화조는 오랜 전통을 지니며 그림 속에서 등장했지만, 그동안 우리의 미술사 속에서 그리 큰 관심도 평가도 미약했고 돋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선 시대 민화가 일부 미술사가나 애호가들에 의해서 재평가되고, 국제적으로 돋보이면서 더불어 화조화는 민화의 중요한 장르로 새롭게 부각 주목을 받았다.

물론 “중국에서 화조화의 황금시대는 12세기에서 13세기의 송宋이다. 송 휘종徽宗 조길趙佶, 1082~1135이 수집한 그림 소장 목록인 『선화화보宣和畵譜』 등 문헌에 명시된 작품제목들을 통해 당唐 이전에도 이 분야가 크게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10세기에 산수화의 기본적인 틀이 갖추어지게 되며 이어 화조화도 같은 양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정병모)

2.최지윤, 사랑하놋다 18-VII,91x91cm(50호변형),캔버스에 장지와 혼합재료, 2018
최지윤, 사랑하놋다 18-VII,91x91cm(50호변형),캔버스에 장지와 혼합재료, 2018

최지윤 작가의 화조화도 이런 맥락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틀림없다.

그녀가 특히 이번 <사랑하놋다> (‘사랑하는구나’를 뜻하는 순우리말) 라는 테마를 가지면서 화폭에 펼쳐낸 그림들은 동서양 회화의 전통적인 꽃 그림들과는 분명하게 그리고 산뜻하게 넘어서 있다.

단순하게 ‘꽃과 새를 그린 그림’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지적이고 화려해서 서민적인 민화와도 넘어선다. 또한, 나무와 꽃과 함께 품은 새들의 자태 또한 넘치도록 매혹적이고 곱상한 유혹이어서 더욱 차별화된다.

핑크빛 하늘을 가로지르는 매화꽃이며, 개나리꽃들도 충분히 그의 화폭에서는 예쁘고 찬란하다. 너무나 동양적이면서 한국적이고, 전통적이면서 진부하지 않아 신선하다.

그림 속의 뒷 배경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모던한 형태의 산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 산들을 이리저리 거느린 꽃넝쿨이 모든 산등선을 엮어 화폭에 흘러내리는 리듬처럼 음악적이다.

하늘을 나는 것은 한 쌍의 새가 아니라, 한 쌍의 사슴이 그 산을 흘쩍 훌쩍 뛰어넘고 반짝이는 루비빛 보석을 꼭 움켜쥐고 비상한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는 듯 그녀의 그림은 금실로 수놓은 비단옷처럼 화려하고 매끄럽다.

1.최지윤,사랑하놋다18-II, 91x91cm(50호 정방형), 캔버스에 장지와 혼합재료, 2018
최지윤, 사랑하놋다18-II, 91x91cm(50호 정방형), 캔버스에 장지와 혼합재료, 2018

마침내 작가는 동양회화가 갖는 회화의 정통성과 전통회화가 극복해야 할 현대성을 이렇게 모던함과 파격으로 뛰어넘고 조화시킨다.

마치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새로움을 화폭에서 자유롭게 유희하는 추임새를 취한다. 

두말할 것 없이 작가는 인간에게 변함없이 자연의 선물인 꽃을 통해 인간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최지윤,달콤한 꽃-나들이VII, 지름30cm(5호변형), 캔버스, 혼합재료, 2019
최지윤,달콤한 꽃-나들이VII, 지름30cm(5호변형), 캔버스, 혼합재료, 2019

컬러풀한 보석과 색채로 사랑의 환희와 평온함을 화폭에 담아내는 테크닉, 그것을 충분히 구사하는 스킬, 즉 기술도 도대체 예사스럽지 않다.

화조화에서 뺄 수 없는 들꽃, 새, 산수 등 자연의 소품들을 보석, 액세서리, 팬던트 같은 오브제와 엮어 그 속에 끝없는 사랑과 기억, 그 아름다운 사랑의 하모니를 마치 자수처럼 하나씩 구슬을 꿰어 동물이나 새들의 러브 스토리로 탄생시킨다.

그 내면에는 무엇보다 작가의 표현 방식이 사랑의 몸짓과 제스츄어를 너무나 열망하는 자연의 러블리한 자태들이 빠짐없이 담겨있다.

비록 그녀가 자연의 모습을 빌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이며 삶이며 희망이며 꿈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의 그림에는 질투처럼 번지는 사랑과 로맨스의 낭만적 서정이 마치 한편의 연시처럼 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그 사랑의 숨결이 꽃잎 하나하나에서 부터 시작하여 꽃술 하나하나를 거쳐 화폭 가득 사랑의 숨결과 연정, 그리고 염원을 쏟아 우리에게 오래도록 깊은 울림을 준다.

아름다운데 천박하지 않고, 상투적인 풍경 같지만 숭고한 사랑의 몸짓이 배어있다.

그 모든 탐스러운 꽃들이 이 봄날에 피어나는 꽃들이다. 그 꽃들 사이를 보석으로 둘러놓은 공작 그 틈틈마다 그리움이나 슬픔. 그리고 한없는 기다림의 희망 같은 것들이 흘러내린다.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그림이 주는 감동이고, 그림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선물이자 생명력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작업 방식이 전통적인 것에 묻히지 않고 과감한 실험과 번거로운 과정으로 현대적인 기법으로 감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업과정은 장지에 별도 채색 작업을 한 후에는 다시 붙이는 기법인 콜라주 스타일로 일일이 밑그림을 그려 붙인 다음 그 위에 반짝이고 투명한 크리스털 레진을 올려 화폭의 외관을 찬란하게 반짝 장식한다.

최지윤, 달콤한 꽃-산책V, 지름50cm(10호변형), 캔버스에 장지, 혼합재료, 2018
최지윤, 달콤한 꽃-산책V, 지름50cm(10호변형), 캔버스에 장지, 혼합재료, 2018

어쩌면 ‘사랑하놋다’의 뜨거운 감정을 이렇게 최지윤 작가는 이렇게 지고지순하게 ‘사랑’의 모든 아름다운 과정을 노래로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주옥같은 유려한 선묘는 마치 16세기 조선화단에 신사임당의 정숙하고 온화한 화조화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치열하고 진지한 고백에 귀 기울이면 내면의 심성까지 그녀가 어떻게 드러내려 했는지를 너무나 명료하게 그녀의 화폭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br>(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br>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br>​​​​​​​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누구에게나 눈물 나도록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그 시절로, 그 과거로, 갑자기 뛰어가고픈 충동이 일어날 때 가 있다. 그것들은 잔잔한 바람으로, 혹은 태풍처럼 나의 마음을 밀고 들어온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밀고 올라오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을 흰 공간에 뿌려 나가는 것으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의 화폭에 서는 순간 사랑에 갑자기 빠지고 싶은 충동을 거역할 수 없다. 최지윤 <사랑하놋다>의 작품들이 주는 은근하면서 치명적인 중독된 매력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