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4월 16일이 찾아왔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는 대부분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그날 세월호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와 수많은 일반인 승객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돌아오지 못한 이도, 벼랑 끝에서 생존한 이도 있었다. <투데이신문>은 세월호 6주기를 맞아 생존자와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의 참사 이후의 삶과 끝나지 않은 국가와의 싸움, 지지부진한 진상규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동수씨(왼쪽)가 지난 2015년 4월 6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세월호 사고 배상 및 보상성명회’에 참석해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김성묵씨가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동수씨(왼쪽)가 지난 2015년 4월 6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세월호 사고 배상 및 보상성명회’에 참석해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김성묵씨가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6년이 되는 날이었다. 해마다 봄이 찾아오고 4월이 되면 아름다운 꽃을 볼 새도 없이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이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동수·김성묵씨는 봄이 와 꽃이 피고 날이 따뜻해질 때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이들은 참사 당시 다른 탑승객들을 구조하며 ‘세월호 의인’으로 알려졌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항상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한 지난 6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와 김성묵씨에게 참사 이후 달라진 일상과 진상규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동수씨(왼쪽)가 지난 2월 22일 ‘제주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 = 김동수씨
김동수씨(왼쪽)가 지난 2월 22일 ‘제주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 = 김동수씨>

김동수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활동을 하면서 차분하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여있던 홀로 내려가든지 3층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가야한다고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돼요. 먼저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사고 당시에는 작은딸 생각이 먼저 났어요. 왜냐하면 그해 6월에 작은딸이 남도 여행을 가기로 돼 있어서 ‘만일 우리 달이 이런 사고를 당하면 누가 도와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주저할 새도 없이 구조활동을 하게 됐어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김성묵씨도 김동수씨와 함께 탑승객들을 구조했다.

“다른 분들과 어린아이들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탈출을 돕던 복도에 있던 분들이 모두 나온 다음 탈출을 돕던 한 학생이 ‘안에 친구들이 무서워서 못 나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복도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배가 이미 기울어 경사가 심해 더 들어가지는 못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대답이 없더라고요. 그 때 김동수씨가 소방호스를 위에서 끌어당기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 호스를 잡고 나올 수 있었죠. 그 후 김동수씨와 홀 쪽으로 가서 소방호스 두 개를 엮어 기둥에 묶고 탈출을 도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기울기가 심하고 거리가 멀어 사람들이 나오질 못했죠.”
-세월호 의인 김성묵씨

이들은 당시 사고해역에 헬기가 도착했지만 아무런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선내 방송에서는 기다리라는 말만 나왔어요. 그래서 전부 선내에서 기다리고만 있었죠. 당시 헬기가 도착하긴 했는데, 구조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올라가서 근처에 다른 배가 있나 보려고 했는데 400~500m 정도 거리에 유조선만 보일 뿐 주변에 배는 없었어요. 그래서 ‘왜 이쪽으로 안 오지’라고 생각했죠.”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헬기가 도착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상황인데 카메라만 들이대고 있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카메라만 들이대고 있네요. 큰일은 아닌가봐요. 그냥 보러 왔나봐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헬기에서 사람들을 올려보내라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의인 김성묵씨

참사 이후 두 사람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일상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약을 먹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다고 한다.

“참사 이전에는 화물 일을 했는데, 참사 이후에는 일을 전혀 못하고 있어요. 오전 내내는 약기운 때문에 몽롱한 상태고, 밖에 나가면 또 여러 말에 상처받고 힘들어서 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출퇴근만 간신히 하고 있죠. 참사 이후 생활이 180도 달라졌어요. 사회활동도 못 하고, 약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죠. 일반적인 생활은 거의 못 한다고 보시면 돼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일상이 많이 바뀌었죠. 참사 전에는 동호회 활동도 많이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어요. 일 욕심도 많아서 바쁘게 살았고요. 또 사람들 만나는 게 힘들어졌어요. 참사 이후 8개월간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을 때는 덜컹거리는 느낌이 너무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했어요. 트라우마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하는데, 참사 후 정부에서 대형병원을 지정해줬어요. 예약하고 병원에 시간 맞춰 가야하는데, 집회나 간담회 등에 참여하다보니 시간을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잠은 자야하니까 3년 가까이 약 대신 술을 먹기 시작했어요. 병원에서는 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라고 했는데, 의존증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술을 줄이고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한 게 3개월 정도 됐어요. 그런데 약 조절이 잘 안 돼 너무 힘들어요. 약에 취해 이틀 가까이 쓰러져 있던 적도 있고요.”
-세월호 의인 김성묵씨

김동수씨는 국가의 역할을 촉구하기 위해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고통을 아무리 알려도 알아주지 않으니 할 수 있는게 없었어요. 국가가 역할을 다하지 않으니 ‘제발 우리의 고통을 알아달라’는 의미에서 자해를 했죠. 제대로 된 지원과 국가의 역할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어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김동수씨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김홍모 작가의 웹툰 ’홀’ 중 한 장면. 사진출처 = 딜리헙 화면 캡처
김동수씨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김홍모 작가의 웹툰 ’홀’ 중 한 장면. <사진출처 = 딜리헙 화면 캡처>

김동수씨는 현재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제주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이하 제생지)’ 활동을 통해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없으면 진상규명을 못 하게 되잖아요. 제주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아 당시의 기록을 남기려고 해요. 생존자들의 기억을 남기려는 곳이 없으니 우리가 먼저 진상규명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최근에는 제생지에 참여하고 있는 김홍모 작가가 참사 당시 김동수씨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만들어 연재하고 있다. 김동수씨는 김홍모 작가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런 활동이 더 일찍 시작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기자나 작가들이 기록하고 녹취한다고 했는데, 생존자에 대한 기록은 아무도 안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이제라도 할 수 있게 돼 고맙죠.”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김성묵씨는 유튜브를 통해 진상규명 활동을 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모인인 ‘304목요포럼’에서 해경, 해수부, 해군, 국정원, 기무사, 청와대 상황실 등 조사위에서 밝혀진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해 온 분들이 내용을 정리해 소개하고, 수사와 처벌이 필요한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어요. 또 ‘청와대로 보내는 국민엽서’를 만들어서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엽서를 읽어주기도 해요. 이 엽서들은 지난해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1차적으로 대통령에게 전달했어요.”
-세월호 의인 김성묵씨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흐른 6년의 시간동안 이들이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두 사람은 모두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이런 참사가 또다시 생길 수밖에 없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참사 이런 참사들을 겪으면서 매번 그 때 뿐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대로 진상을 알리고 왜 참사가 발생했는지, 왜 국민이 죽어야했는지, 왜 국가는 방관했는지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죠.”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세월호 참사는 304명을 죽였고, 200여명의 삶을 뒤바꿔놨어요. 저 역시도 이런 삶을 살게 될지 몰랐고. 고통을 견뎌내기 정말 힘들어요. 이따위 삶을 만든 자들을 처벌하지 않고서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저는 304명의 희생자들이 저를 살려줬다고 생각하는데, 죽어서 희생자들을 만났을 때 ‘그때 이런 일이 있었대요. 죄송해요’라는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추모는 당연한 거고, 추모로 끝날 게 아니라 책임자들은 말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둔 살인자들이니까.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이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한다고 해도 똑같은 해경, 해군이 출동할 거고 가서 멍하니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거예요.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해요.”
-세월호 의인 김성묵씨

김성묵씨가 지난 3월 7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20210415 청와대촛불버스킹’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 = 유튜브 채널 ‘304목요포럼’ 영상 캡처
김성묵씨가 지난 3월 7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20210415 청와대촛불버스킹’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 = 유튜브 채널 ‘304목요포럼’ 영상 캡처>

오는 2021년 4월 15일이면 세월호 참사의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때문에 김동수씨는 진상규명을 위해 생존자들을 찾아 당시 상황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진상을 알리려면 그날의 생존자들을 찾아 당시 상황을 기록하는 게 중요해요. 이를 통해 잘못된 점을 들여다 봐야해요. 해경은 왜 탑승객이 아닌 선원, 선장만 구조했는지. 국가가 왜 구조를 하지 않았는지 밝혀내야 하고요. 해경은 승객들의 탈출을 돕지 않았어요. 승객들이 구조활동을 할 때 만일 해경이 ‘걱정 마세요. 저희가 구조하겠습니다. 먼저 탈출하세요’라고 했다면 배가 침수돼 몸이 물에 뜰 때까지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배가 침몰되는 가운데 창문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치는 그 광경을 보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국가가 그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거예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김성묵씨는 대통령의 결단으로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강력한 특별수사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범정부 차원의 수사단을 만들어야 해요. 세월호 참사 수사대상인 군과 기무사, 국정원, 청와대 상황실 모두 대통령 직속이에요. 그 정도의 권력을 가진 기관을 수사하려면 직속 이상의 수사팀이 만들어져야죠.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이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수사를 할 수 없는데, 뭐가 되겠어요. 그렇다면 그 직속기관들을 관리하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기관들을 수사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는 단체를 마련해야죠. 그래서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을 만들어달라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어요. 이를 명령할 수 있는 명령권자는 대통령밖에 없어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직속 수사단이 마련되지 않으면 공소시효 안에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기는 힘들 겁니다.”
-세월호 의인 김성묵씨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6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는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벌써 6년이나 지났으니 관심이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고는 생각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진상규명이 반드시 돼야 모든 의혹을 해소하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거예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공소시효가 지나고 과거사가 되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수가 있어요. 304명의 희생자가 죽음을 맞도록 만든 게 바로 국가예요. 제대로 처벌이 돼야 하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책임자들을 다 처벌하고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전반적인 조치가 만들어져야 해요. 그래야 같은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고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국민들께서 청원에 동참해 주시고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수사단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신다면 좋겠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니까요.”
-세월호 의인 김성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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