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인간을 흉내 낸 인형이다. 그 인간 유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또 분노했다. 기술은 스스로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 실현에 한발 다가섰지만, 인간의 도구화 등 새로운 문제 역시 드러내고 있다. 리얼돌은 인간의 정의까지 다시 생각하게 할 새로운 존재 탄생의 시작점일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파도를 우리 사회는 잘 준비하고 있을까.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해 불거졌던 리얼돌 논란을 되짚어보고, 리얼돌 판매업체·관련 교수들을 만나 리얼돌 논란의 핵심 쟁점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리얼돌들의 모습 ⓒ투데이신문
여성의 형태를 띠고 있는 리얼돌의 모습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 지난 2019년 6월, 대법원이 리얼돌의 수입통관 보류 관련 소송에서 수입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의 1심에선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의 특정한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며 수입을 불허했다.

하지만 2심에서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며 수입을 허가했고 이를 대법원이 인정하며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사회에 미친 영향은 크다. 리얼돌 유통 최초의 허용 판결이라는 점에서 리얼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리얼돌의 등장에 환호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리얼돌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의견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리얼돌은 그저 인형일 뿐 “안될게 뭐냐”며 적극 허용하자고 주장하거나, 사람과 비슷한 형상에 “이상하다, 징그럽다”며 부정한다.

그러나 리얼돌은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우리의 윤리의식과 법·제도 등도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준비돼 있을까.

규제도 대책도 없는 리얼돌

우리나라의 리얼돌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대법원 판결 이후지만, 이미 2000년대 후반 리얼돌을 사용해 ‘인형방’이란 이름의 유사 성매매 업소들이 운영된 적이 있다. 이 업소들은 정부의 단속과 리얼돌의 비싼 가격 때문에 점차 줄어들다 모습을 감췄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리얼돌 체험방’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추세다.

리얼돌 체험방이 되살아 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엔 리얼돌을 규제하는 관련 법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간 리얼돌의 수입은 관세법 234조에 의거해 금지돼 왔다. 리얼돌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해 금지돼 왔던 것이다. 또한 여성계에서 크게 우려하고 있는 아동·특정 인물 형상 리얼돌에 대한 규제도 아직 없다.

그렇다고 해서 리얼돌을 완전히 허가한 것도 아니다. 대법원 판결로 수입통관이 허용된 품목의 경우, 완전한 형태의 리얼돌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완전히 여성 형태를 모방한 리얼돌은 관세법에 걸려 수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리얼돌을 국내 제작할 경우 관련 법안이 없기에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즉, 우리나라의 리얼돌에 대한 대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리얼돌에 관련한 법안이 마련돼 리얼돌을 규제하고 유통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몇몇 주, 호주, 영국 등 영미권 국가들에선 아동형 리얼돌에 대한 판매 및 소지를 금하는 법안을 입법해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해외의 사례처럼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 캡처 ⓒ투데이신문
청와대 게시판 캡처 ⓒ투데이신문

첨예한 갈등, 중재는 없었다

리얼돌을 반대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계에서는 리얼돌의 여성 성적 대상화를 지적하며 격렬히 거부한다. 리얼돌은 결국 남성들이 가진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의 산물로, 어떤 식으로든 폭력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리얼돌과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사랑은 없으며 착취만이 존재한다고 여성계는 주장한다.

건국대학교 윤김지영 교수는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을 통해 리얼돌이 여성을 사물화하고 대상화할 것이며, 한편으론 리얼돌을 통해 남성들이 ‘여성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윤 교수는 “리얼돌은 여성의 신체 형상을 모사한 여성 유사물임과 동시에, 여성을 남성의 욕망규준에 알맞게 조작한 허상이다”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리얼돌 관련 업계와 사용자들은 이런 여성계의 우려가 기우일뿐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리얼돌은 그저 성기구일 뿐이며, 리얼돌과 현실의 여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남성은 없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첨예한 갈등에도 국가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26만명의 동의를 받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청와대는 아동형상 리얼돌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정 인물 형상 리얼돌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적 검토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리얼돌 관련 주무부처마저 명백하지 못한 상황이다.

캐릭터들이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며 흥행에 실패한 영화 ‘캣츠’ 사진 = 네이버영화
캐릭터들이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며 흥행에 실패한 영화 ‘캣츠’ <사진 = 네이버영화>

불쾌한 골짜기에 빠진 리얼돌

리얼돌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리얼돌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

리얼돌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이상하다’, ‘왠지 섬뜩하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리얼돌은 인간 신체와 굉장히 유사한 형태를 지닌 인형이지만, 어쩐지 ‘사람같이 생겼지만 사람이 아니다’라는 이질감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이 리얼돌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1970년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소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인간과 유사한 존재를 볼 때 일정 수준까지 인간 유사성과 호감도는 비례한다. 그러나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호감도는 오히려 급격히 낮아지고, 이후 유사도가 다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호감도는 급상승하게 된다. 호감도의 그래프를 그리면 마치 골짜기와 같은 형태를 띠기 때문에 ‘불쾌한 골짜기’라고 불리는 것이다.

리얼돌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인간 유사성을 띠고 있다. 기자가 직접 리얼돌 판매업체를 방문해 확인한 리얼돌은 사럼처럼 피부의 힘줄이 튀어나온 것까지 볼 수 있었다. 피부는 부드러웠으며, 인간 신체의 굴곡을 완전히 묘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체와 유사한 리얼돌의 특성 때문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구입했던 리얼돌을 폐기 처분하기 위해 분해하는 과정에서 마치 “살인하고 증거인멸하기 위해 토막살인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분명 리얼돌을 ‘인간과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유사성에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인형으로 끝날 것인가

리얼돌은 단지 인형이나, 가짜 인간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오랜 욕망을 재한한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인관계의 흔한 다툼조차 없는 나만의 이상적인 애인이라는 인간의 환상에 부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도구인 셈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뛰어난 조각가였던 그는 현실의 여성들이 문란하다고 생각해 혐오감을 느끼고 독신으로 살아가며 조각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후 피그말리온은 손수 자신의 이상형을 조각하기에 이른다.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여성 조각상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살아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조각상을 사랑하게 된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의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맡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의 사랑에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그의 조각상을 사람으로 살려내 피그말리온과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피그말리온과 그의 조각상은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리얼돌이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미국의 ‘데이브캣’이라는 남성은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리얼돌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리얼돌과 커플링을 맞추고 페이스북에 배우자라고 칭하는 등의 애정행각을 보이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의 이름은 ‘my strange addiction’(내 이상한 중독증)로, 당시 데이브캣을 향한 세간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인간이 아닌 물건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데이브캣씨는 그저 ‘이상한 중독자’로 보일 뿐이었다.

아직 ‘이상하다’는 취급을 받고 있는 리얼돌은 기술 발전을 통해 더욱 ‘리얼’해질 것이다. 향후 AI 등과 결합해 움직이고 말하는 로봇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리얼돌 제작사 ‘어비스 크리에이션’의 로봇 제작팀 ‘리얼보틱스’는 리얼돌과 AI를 결합한 ‘하모니’를 개발·판매 중에 있다. 하모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성격과 말투 등의 특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웃음 등의 얼굴 표정이 구현 가능하다. 아직 완전한 수준의 로봇은 아니지만, 리얼돌이 결국 인공지능 섹스로봇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리얼돌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인간을 닮아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기만 한다면, 인공 로봇들과의 사랑은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과학자 데이비드 레비 교수는 강연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에서 “2050년에는 로봇과 성행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혼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제 인간은 피그말리온과 달리 신의 권능한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피조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인간의 기술은 리얼돌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인간과 의사소통도 가능한 로봇이 등장할 것임이 명백해 보인다. 

리얼돌 논란은 그저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윤리적 파동의 시작점일 뿐이다. 피그말리온은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우리 인류는 그럴 수 있을까. 이제 인간과 사회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난제들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일에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인다.  

참고자료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여성신체 유사 인공물에 기반한 포스트휴먼적 욕망 생태학 비판>(윤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 연구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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