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 400% 유가하락 후 강제청산...투자자에겐 ‘통보’
키움, 지속되는 HTS 말썽... 피해 투자자들 “고소하겠다”
CME, “유가하락 가능성”공지 vs 국내 증권사,“몰랐다”

 

지난 21일 키움증권 HTS전산장애로 유가폭락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증권사 관계자로 보이는 블로거의 댓글 대화 내용 ⓒ투데이신문
지난 21일 키움증권 HTS전산장애로 유가폭락 피해를 입은 투자자(작성자)와 또 다른 블로거의 댓글 대화 내용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사상초유의 유가폭락 여파로 국내 증권사 대다수가 ‘미니 크루드 오일’ 해외 선물 늑장대응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키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하 한투증권)의 피해 투자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한동안 후유증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새벽 국내 대다수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서부세탁스산원유(WTI) 5월물 가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 한투증권과 키움증권의 HTS가 먹통이 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사상초유의 마이너스 폭락을 기록하며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장중 최저치는 -40.32달러에 달했다.

한투증권은 21일 새벽 3시경부터 2시간 가까이 80%에서 400%까지 유가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원유가 기준에 따른 해외선물인 ‘미니 크루드 오일’을 청산하지 않고 오전 8시경 강제청산을 했다. 투자자들은 오전 7시경 뒤늦게 문자를 받고 분통을 터뜨렸다.

투자자들은 한투증권의 초기 대응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증권사 임의로 개인 계좌에 대한 매수·매도 권한을 사용한 것 이라며 반발했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투자자들 권리 침해에 대한 지적에 대해 “투자자별로 상황이 다를 수 있어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 보상문제와 시스템 운영에 관해선 “정확한 피해규모는 파악중으로 관련 규정 및 절차에 맞춰서 검토할 예정이며 시스템 문제는 사건 발생 직후 조치를 취해 정상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과는 원만하게 합의 했다"고 덧붙였다.

키움증권은 가장 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날 새벽 키움증권 HTS는 WTI가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먹통이 됐다. 이날 새벽 3시30분까지 청산 예정이었던 ‘WTI 미니 크루드 오일 선물’ 5월물 매매거래가 일시 중단됐고 투자자들은 5월물을 제때 청산하지 못해 장중 상품가격이 급락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선물 가격 하락으로 증거금이 부족해질 경우 증권사가 투자자 보유 상품을 강제로 파는 ‘반대매매’라도 할 수 있는데 이 날은 그마저도 작동이 안 돼 장 마감 직전 가장 낮은 가격에 5월물을 강제청산해야 했다.

키움증권의 한 투자자는 “손도 못쓰고 억울하게 통장이 털렸다”며 호소했다. 이어 “키움증권 측이 당시 호가창은 정상이었고 체결거부가 되더라도 그것이 정상거래라고 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키움증권 HTS는 지난달에도 로그인이 되지 않아서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었다. 이번 유가급락에는 먹통이 되자 관리 부실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키움증권 관계자는 HTS 문제에 대해 “지난달은 접속자 폭주가 원인이었으며 이번에는 유가급락이라는 시장변동성에 의한 것이므로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피해보상에 관해서는 “보상문제는 절차대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키움증권은 이번 HTS 사고와 관련해 호가 0~-9달러 건에 대해 계약당 4500달러를 보상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HTS 오류에 따른 투자자들의 피해 규모는 50계좌에서 약 10억원 규모”라고 밝혔다.

현재 키움증권의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채팅방에서는 키움증권 HTS먹통으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총 60여명 정도이며 피해액은 83억원 가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투증권과 키움증권 외에 하나금융투자와 교보증권, 대신증권 등은 HTS가 마이너스 가격을 인식하진 못했지만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 상태가 되기 전 청산을 완료해 HTS 오류로 인한 투자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3차례나 자사 홈페이지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원유선물이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공지한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증폭됐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내 증권사들이 유가폭락을 대비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이 부각되자 국내 증권사 대부분은 CME공지에 대해 반박하고 나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CME는 항상 중요한 안건을 메일로 보내왔는데 이번일 같은 경우는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CME자사 홈페이지에 공지된 내용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대비할 증권사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라며 “증권사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HTS관련 오류와 CME공지 대해 증권사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고 모니터링 하고 있다”라며 “이번 사건에 대해 지금으로선 바로 결론 내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문제가 된 유가 폭락은 지난 19일 밤(현지시각)부터 본격적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WTI 5월물 가격이 개장 직후 배럴당 14달러까지 떨어졌고 20일 오후 12시께는 배럴당 5달러까지 추락했으며 오후 2시에는 1달러를 찍었다. 현재 많은 트레이더가 6월물 거래로 넘어가며 6월물 계약이 80만건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6월물 거래는 오는 5월 19일이 만기다.

금융투자업계는 5월 1일부터는 OPEC++ 감산도 시작돼 지금처럼 유가가 낮을 경우 감산에 동참하는 비 OPEC 국가나 미국 셰일업체들이 많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경제가 회복되고 원유 수요가 늘어난다면 앞으로 유가급락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단, 시장경제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이번처럼 유가붕괴가 한 번 더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너절은 “트레이더 일부가 6월물은 건너뛰고 7월물로 넘어갔다”라며 시장경제 회복에 따라 트레이더들이 지금보다 더 발 빠르게 선물계약 처리에 나설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2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WTI는 배럴당 19.1%(2.21달러) 상승한 13.78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반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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