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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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한영선 기자】 재벌가의 결혼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화려한 5성급 호텔 결혼식과 언론의 떠들썩한 관심을 받는 그들의 결혼은 일반인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린다. 과거 1970년대만 하더라도 재계의 결혼은 기업과 기업 간의 결혼이 주를 이뤘다. 재계는 서로 인연을 맺는 방식으로 권력을 쥐려 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러한 현상은 유지 돼 그들만의 세상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최근 재벌3세들도 여전히 기업 간의 혼인동맹을 맺고 있다. 기업 간 혼인 시 국내외 사업 확대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CEO스코어가 지난 2018년에 ‘총수가 있는 100대 그룹 혼맥 비율’을 분석해본 결과 재계끼리의 결혼이 전체 367건 가운데 50.7%(186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에서는 흔한 드라마 스토리처럼 배경을 따지지 않는 이른바 찐(진짜) 사랑을 택하기도 한다. 사랑과 결혼이 언제나 세간의 주목을 받는 만큼 그들의 이별에도 관심이 크다. 1조가 넘는 재산 분할 다툼부터 배우자가 아닌 내연관계들의 등장은 재벌판 ‘부부의 세계’를 보는 듯 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사랑과 전쟁’이 아닌 ‘사랑과 쩐(錢)쟁’ 중인 재벌가의 결합과 헤어짐을 살펴봤다. 

분당 차병원. ⓒ뉴시스
분당 차병원. ⓒ뉴시스

사랑의 결실? 혼인동맹?

과거에도, 현재도 여전히 기업과 기업 간의 결혼은 빈번하다. 그들에겐 결혼이 사랑이기보단 비즈니스 수단 중 하나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혼인동맹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차병원’이 대표적인 예다. 차병원 차광열 글로벌종합연구소장의 자녀는 총 3명이다. 장녀 차원영씨는 전 DB손해보험 김남호 부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차원희 씨는 필리핀 재벌가인 TDG그룹의 라시드 델가도 대표와 결혼식으로 올렸다. TDG 그룹은 1976년 설립됐고, 관광·선박관리·정보통신(IT) 등 다양한 업종에서 20여 개 이상의 기업을 소유한 필리핀 주요 기업으로 손꼽힌다. 장남 미국 차병원 차원태 상무는 수년 전 범(汎)LG가인 아워홈 집안의 차녀와 결혼한 바 있다. 자녀 셋 모두가 대기업과 혼인동맹을 맺은 셈이다.

코스메틱 업계 1위 아모레퍼시픽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은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가의 ‘2020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680위에 올랐다. 그의 재산은 30억 달러(3조6894억원)로 추정된다. 최근 서 회장 장녀로 알려진 서민정(29)씨는 보광창업투자 회장 장남 홍정환(35)씨와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민정씨는 코넬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 등을 거쳤다. 서 씨는 현재 아모레퍼시픽 뷰티영업전략팀 과장이다. 홍정환씨는 홍석준 회장의 장남으로 보광창업투자에서 투자 심사 총괄 업무를 맡고 있다. 보광그룹은 삼성과 친척관계다. 홍정환씨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부인인 리움 홍라희 관장과 중앙홀딩스 홍석현 회장의 조카로 알려졌다. 둘의 결혼이 성사된다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보광그룹, 삼성그룹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뉴시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뉴시스

위자료에 관심이 쏠리는 부부

뜨겁게 사랑해서 집안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결혼했으나, 1조 원대 이혼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아쉽게도 집안과 인연을 끊으면서 까지 결혼했지만, 과거의 사랑이 변질되거나 퇴색 돼 이혼하는 부부들이 있다. 

‘단국대 아웃풋 최고봉’, ‘남자판 신데렐라 스토리’ 의 주인공. 전 삼성전기 임우재 고문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99년 재벌가 자녀와 평사원의 러브스토리로 화제를 모았던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과 전 삼성전기 임 고문의 결혼. 그들의 결혼은 15년 만에 파경을 맞는다. 2014년 10월 이 사장이 남편인 임 고문을 상대로 법원에 이혼 조정 신청을 낸 것이다. 국민들에게 ‘1조원’이 넘는 재산분할 청구 소송은 세간의 화제였고, 언론에서도 앞다투며 보도했다. 5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은 수많은 재판을 겪었고 국민들 입에 오르내렸다.  

지난 1월 지리멸렬하고 진흙탕 싸움 같던 이혼소송의 결말은 법원이 이 사장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결국 이 사장이 자녀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갖고, 임 전고문에게는 월 자녀 면접 교섭권이 월 2회 허용됐다. 법원에서 인정된 재산분할액은 141억 1300만원으로 임 전 고문에게 지급된다. 

미국 유학시절 만나 서로 사랑했던 SK 최태원 회장과 전직 대통령 딸인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 그들은 1988년 미국 시카고대 유학시절에 선후배 사이로 만나 결혼했다.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지적인 모습에, 노 관장은 최 회장의 검소하고 겸손한 모습에 반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조원 대 재산 분할 소송에 휘말렸다. 최 회장에겐 티앤씨(T&C)재단 김희영 이사장과의 혼외자가 있다. 최 회장은 이 같은 사실을 지난 2015년 세계일보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현재 두 사람은 이혼소송 중이다. 노 관장은 최태원 회장이 가정으로 돌아오면 위자료와 재산분할 소송도 취하하고 혼외자도 가족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속적으로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도 여전히 노 관장은 이혼 불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재벌가의 이혼은 개인의 사생활로만 보긴 어렵다. 그들의 재산규모나 영향력을 볼 때 기업간의 결별이자 후계구도의 변화까지 생길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화큐셀 김동관 전무. ⓒ뉴시스
한화큐셀 김동관 전무. ⓒ뉴시스

재벌 3세들이 선택한 배우자는?

재벌가의 결혼과 이별이 남다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내연애부터 유학길에 올라 배우자를 만나는 등 과거에 비해 자유로운 선택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한화큐셀 김동관 전무는 지난해 10월 계열사에 재직했던 명문대 출신인 일반인 여성과 결혼에 골인했다. 2010년 한화그룹에 함께 입사하며 연을 맺었고 무려 10년이나 연애 한 끝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자는 현재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뚜기 그룹 맏딸 함연지씨는 지난 2017년 26살 이른 나이에 6년 동안 연애했던 A씨와 결혼했다. A씨는 국내 대기업 임원의 아들로 알려졌고, 민족사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콩소재 외국계 회사에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SK 그룹 최태원 회장의 장녀 SK 최윤정 책임매니저는 2017년 평범한 가정의 3남인 윤모씨와 결혼했다. 최윤정 책임매니저는 시카고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이후 SK바이오팜에 입사했다.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은 이다희 전 아나운서와 재혼했다.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도 조수애 전 JTBC아나운서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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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전문가들 ‘과거에 비해 줄어든 혼맥, 문제점도 산재’

재벌 전문가들은 재벌가의 이러한 결혼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의 30대 재벌 혼맥도>를 펴낸 인하대 김진방 교수는 “과거 60~70년대에는 정재계끼리의 정략결혼이 주를 이루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는 이러한 비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며 “재계의 분위기가 자유로워졌다기 보다 재벌 3세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이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경제‧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예전에는 한정된 자원을 제도권 하에서 분배하다보니 특정 기업에게 금융 대출을 허용해준다든지 여러 가지 특혜가 존재했다”라며 “과거 기업은 정계의 힘이 필요해 그들과 혼인을 맺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혼맥을 통해 경영승계를 하는 것은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아무래도 한국의 재벌들은 봉건적인 경향이 남아있어 본인보다 못하다던가,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나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한국사회는 이제 일상의 혜택을 누리거나 특혜를 받는 것들이 이제 특정층에게 집중되지 않고, 기업이 정치권력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거나 그렇지 않는다”면서 “혼맥으로 기업간 결혼이 성사되더라도 사회적 견제장치가 잘 작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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