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2014년 1월의 어느 날, 한 남성은 유모차와 함께 택배 상자를 뜯어 만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제 딸은 엄마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빠 혼자서 출생신고를 못 하게 합니다. 그래서 제 아이는 주민등록번호도, 의료보험도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마저 잃었습니다...’

이는 누군가의 특별한 사연이 아닌 우리 사회의 수많은 미혼부들의 이야기다. 현행법상 미혼부는 미혼모와 달리 혼자서는 출생신고를 하기 매우 어렵다. 2015년 ‘사랑이법’ 도입으로 미혼부 자녀 출생신고를 간소화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이 법을 통해 출생신고를 한 아이는 70여명에 불과하다. 본지는 실제 미혼부를 만나 출생신고의 어려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들을 들어보고 현행법의 사각지대, 개선 방향 등을 짚어 보는 <미혼부, 그게 뭐 어때서>를 기획했다.

손창순씨 ⓒ투데이신문
‘수애 아빠’ 송창순씨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이제는 자신의 이름보다 ‘수애 아빠’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러운 송창순(46)씨는 네 살배기 딸을 홀로 기르는 미혼부다.

2013년 송씨와 아이 엄마를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인 2016년, 딸 수애가 태어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예쁜 딸까지 얻은 송씨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일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건설업에 종사했던 송씨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늘 그런 상황을 힘들어했던 아이 엄마는 급기야 송씨 업무에 필요한 돈이나, 아이 어린이집 비용에 손을 댔다. 이 같은 문제로 두 사람은 잦은 다툼을 했고, 끝내 아이 엄마는 송씨와 수애의 곁을 떠났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아이 엄마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돈을 많이 벌어다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죠. 건설업에서 일하다 보니까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형편이 어려웠어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 여유롭지 못했죠. 아이 엄마는 출산 이후에 마음의 병이 생겼는지 이전에 없던 도벽이 생겼더라고요. 예를 들어 공사 자재를 사야 하는 비용을 마음대로 꺼내다 쓰고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이 반복됐죠. 이런 문제로 싸울 때마다 아이 엄마가 집을 나가겠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 말을 계속해서 듣는 저도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말로만 그러지 말고 나가라 했죠.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가출을 했습니다.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 흘렀네요. 아이 엄마한테서 연락은 없어요. 찾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그렇게 세상에는 송씨와 수애, 단둘만 남게 됐다. 아이 엄마가 떠난 후 송씨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냈다. 눈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버거워 ‘아이를 버릴까’라는 나쁜 생각도 했지만 주위의 위로와 도움으로 수애를 지켜냈다.

수애와 송창순씨 <사진 제공 = 송창순씨>

겨우겨우 혼자서라도 아이를 기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애와 어머니까지 송씨네 세 식구의 생활비는 송씨가 병원 주차 관리를 하고 받는 월 150만원이 전부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 탓에 송씨의 월급만으로는 세 식구가 먹고 살기엔 빠듯하다. 때문에 송씨는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주말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이 돌보는 일만이라도 걱정 없으면 좋으련만 치매 초기인 어머니는 수애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 외에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지금은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엄마나 할머니를 대신해 아빠인 송씨가 시간만 있으면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돼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더 걱정스럽다고 한다.

수애는 요즘 이따금씩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함께 살지 않는 이유를 솔직하게 얘기해 준다 한들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린 나이인지라 때마다 송씨는 거짓말로 둘러대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아이가 가끔씩 엄마를 찾아요. ‘엄마는 언제 와요’ 물으면 ‘일 갔잖아’라고 대답해요. 나중에 수애가 더 크고 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솔직하게 얘기해 줄 거예요. 엄마는 이러한 이유로 아빠와 수애의 곁을 떠났다고요. 아이가 엄마를 만나길 원하면 제가 해줄 수 있는 얘기들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수애가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아빠가 수애를 키울 수 있었던 데는 엄마의 덕도 있다고요.”

송창순씨가 수애 출생신고에 대비해 늘 지갑에 넣어 다니는 출생증명서 ⓒ투데이신문

요즘 송씨의 가장 큰 고민은 수애의 출생신고다. 출생신고는 아이가 태어나면 으레 밟는 당연한 절차이지만 송씨와 수애에게는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다.

아이의 엄마는 송씨를 만날 당시 전 남편과 서류상으로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수애 출생신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현행법상 아빠 혼자 출생신고를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또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이 엄마와의 관계가 지금과 같이 흘러갈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수애의 출생신고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 송씨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수애는 네 살이 됐다. 

“우리나라는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이 엄마 이름, 생일, 연고지를 몰라야 해요. 이걸 어떻게 모를 수 있어요. 말이 안 되는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출생기록부만 떼면 다 나오는 것들이에요.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아빠가 죽으면 아이가 고아가 되잖아요, 그러면 출생신고가 가능해요. 그래서 ‘내가 죽어야 하나’까지 고민했어요. 지금 수애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게 없어요.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거나 알 수 없는 노숙자나 유기 아동 등에게 부여되는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가 있는데 그것만 받은 상황입니다. 주민센터에 가면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게 무엇인줄 아시나요. ‘반려견 등록하세요’라는 문구에요. 반려견에게도 고유번호를 주는데, 미혼부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출생신고가 불가하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 덕분에 자비로 부담하던 월 40만원가량의 어린이집 보육료와 양육수당 일부를 보조받을 수 있게 됐지만, 수애가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는 여전히 너무나 많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엘 가야하는데 의료보험 혜택이 안 돼서 못가요. 3000원이면 될 병원비가 저희는 3만원씩 나오니까요. 하루는 수애가 열이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 몸에 찬물 한바가지를 끼얹고 아이를 안고 있던 적이 있어요. 약도 처방이 어려우니 약국에서 종합감기약 사다가 먹이는 거예요. 처방약 먹으면 금방 나을 것을 알면서도 병원을 못가는 심정을 누가 알까요. 최근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대란이 나면서 공적 마스크 팔기 시작했잖아요. 출생신고를 안했으니 공적 마스크는 꿈도 못 꾸죠. 그래서 제 것 대신 아이 마스크 사고, 면 마스크 몇 개 사서 빨아가며 돌려쓰고 할 수밖에 없었어요.”

손창순씨 딸 수애 <사진 제공 = 손창순씨>
송창순씨 딸 수애 <사진 제공 = 송창순씨>

송씨는 이 같은 처지가 비단 자신만은 아니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 같은 미혼부가 2만명이 넘어요. 국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저출산 문제를 얘기하는데, 그보다 앞서 출생신고조차 못하는 아이들, 사회에서 매장된 미혼부·모 아이들을 돌아봐줬으면 좋겠어요. 코로나19가 소강되고 나면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나설 거예요. 사람들 많은데 가서 미혼부·모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알릴 거예요. 그럼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겠어요.”

송씨는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직장에 다녀야 하는 한부모 가정 부모를 위해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키즈카페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게 작은 바람이라고 했다.

송씨가 딸 수애와 꾸는 앞으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저한테 누가 소원을 물으면 수애 데리고 놀러 가는 거라고 말해요.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미혼부 가정이 아이와의 여행 같은 건 꿈도 못 꿔요. 집 앞에 산책이나 하는 수준이죠. 그래서 아이 출생신고가 되고 나면 가장 먼저 여권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어디든 가고 싶은데 놀러 다니라고요. 수애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용감한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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