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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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몇 년 새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설립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기존 기업 못지않은 좋은 아이템·기술로 향후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스타트업이 점차 늘어나며, 정부도 이들을 양성하는 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추세다.

그러나 이면에는 힘과 자본이 없는 스타트업 약점을 악용해 아이템·기술을 도용하는 행태가 자행되기도 한다. 

특히나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정부 산하 조직에서 마저 스타트업의 영역을 침범하며 위협을 가하고 있다. 앞에서는 지원을, 뒤에서는 편취를 취하는 이중적 태도에 정부의 스타트업 관련 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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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리도 모자라, 가격까지 낮춰서...”

경기도 수원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수원문화재단·화성사업소와 갈등을 빚었다.

A씨가 운영하는 사진관은 작가 없이 손님들이 포토 부스에서 리모컨을 이용해 직접 촬영하는 새로운 개념의 셀프 스튜디오다. 가족, 친구 등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10대서부터 30대까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일 수원문화재단 관계자가 A씨를 찾아와 화성사업소의 위탁을 받아 인근에서 동일한 콘센트의 셀프 스튜디오를 개관한다고 전했다. 수원문화재단이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위치와 A씨가 운영하는 스튜디오간 거리는 약 500m에 불과한 데다, 이용 금액까지 절반 가까이 낮아 오픈을 하면 A씨의 스튜디오 영업에 차질을 줄 것이 분명했다.

수원문화재단 측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했지만, 이미 사업에 착수한 상태에서 대안을 찾자고 제안하는 것은 사실상 폐업 통보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게 A씨의 입장이다.

A씨는 “수원시의 셀프 스튜디오 설립은 확정됐기 때문에 매장에 타격이 있을까 봐 예의상 먼저 알리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찾아왔다는 것은 미리 예고했으니 폐업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들렸다”고 호소했다.

이어 “국가는 스타트업을 양성하고 20대 젊은 사업가를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뒤로는 아이디어를 가져가 거대한 지지기반을 등에 업고 낮은 가격으로 소상공인의 삶을 위협하는 것에 큰 참담함과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행히 현재는 국민청원과 민원 등 A씨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합의안을 마련한 상태다.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스타트업의 아이템·기술을 도용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스타트업의 아이템·기술을 도용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도 모자라 정부 조직까지

아이템·기술 등 도용에 따른 스타트업의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는 비일비재하다.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아이템·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나면 탄탄한 자본 기반을 등에 업은 대기업이 끼어들어 가로채는 문제는 한국 산업의 고질적 병폐(病弊)로 평가될 정도다.

그런데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까지 나서 가뜩이나 무거운 스타트업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스타트업 ‘짚코드’는 1999년 수십억의 개발비를 투자해 은행, 보험, 카드 등과 관련된 기관에 등록된 주소를 한꺼번에 변경할 수 있는 웹서비스를 제공했고 서비스 이용자과 관련 업계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다수의 기업과 협업하며 짚코드는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금융감독원에서 ‘금융거래 수반 주소 일괄 변경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금융사에 등록된 주소를 한 번에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금감원의 눈치를 본 금융회사들이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짚코드는 위기를 맞았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스타트업의 외부 장학금 서비스를 그대로 도용한 사례도 있다. 대학생 스타트업인 ‘드림스폰’이 어렵사리 수집한 장학금 관련 데이터베이스(DB)를 토대로 기업과 협업해 외부 장학금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데 장학재단에서 운영 노하우를 캐묻더니 협약이나 기술, 저작권료 등과 관련된 논의도 없이 유사한 형태의 장학금 포털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한 금감원과 장학재단의 입장은 비슷했다.

장학재단 측은 임원들에게도 보고가 들어갔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대학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금감원은 전체 금융사의 1%만 제휴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민이 편익을 늘리기 위한 선택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자본력은 부족하지만 혁신적인 아이템·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양성하고 장려한다는 정부가 ‘국민의 편익’이라는 명분 아래 편취 행위를 자행하며 호박씨를 까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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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권 보호 필요”

대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조직에서 편리한 서비스 제공을 명목으로 민간기업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지식재산에 관한 권리·이익을 침해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벤처기업의 기술 보호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관련 정책이 등장하기도 했다.

2016년 4월 중소기업벤처기업부는 영업비밀 등을 침해했을 때 최대 손해액의 10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범정부 중소기업 기술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영업비밀’의 범주가 명확하지 않고, 독자성 여부를 판단할만한 인력도 부족하다는 등의 혹평을 받았다.

이듬해 당시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이 정부가 국가정보화를 추진할 때 민간업체의 지재권을 합리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정보화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이른바 ‘창업가보호법’을 발의하고 공공기관이 민간사업 침해 방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도록 하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역시 가시화된 결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대기업 자본과 정부라는 권력에 눌려 갈곳을 잃었다.

중기부는 올해도 스타트업·벤처를 위해 2.2조원 규모의 자금을 추가로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무여건이 취약한 스타트업에게 재정적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들의 피땀 어린 아이템·기술을 위협받거나 억울하게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지재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대책도 시급히 마련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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