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주’ 줍던 개미→‘ETF 불개미’로 진화
동학개미운동,“약자들의 반란vs변질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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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으로 외국인들이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난 국내 증시에 국내 개미들이 모여들었다. 개미들은 외국인들이 팔아버린 국내 우량주를 열심히 받아내며 이른바 ‘줍줍(줍고 줍는다는 뜻)’을 시작했고 시장은 이를 가리켜 ‘동학개미운동’이라 칭했다. 1894년에 일어난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을 보는 것 같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증시에 머물러있던 개미들의 작전지가 투자위험이 높은 상장지수펀드(ETF)로 과감히 옮겨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빚내며 투자하는’ 개미들에게 ‘중립기어’를 당부했고 이 같은 추세가 ‘개미지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外인이 떠난 자리, ‘동학개미운동’ 시작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하면서 지난 3월 19일 코스피 지수는 1457.64를 기록했다.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7월 17일 이후 10년 8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절벽으로 떨어지던 코스피는 코로나19 기세가 꺾인 지난 17일 1914.53으로 상승 마감하며 간신히 숨통을 텄고 코스피 상승에 일등공신인 ‘개미’들의 저력이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다. 개미들이 외국인들이 떠난 자리에 몰려드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증시에 참여하는 투자주체는 크게 외국인, 기관, 개인으로 구성된다. 이 중 국내 증시를 주도하는 주요 수급 주체가 바로 외국인이다.

실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외국인이 코스피를 무려 16조원 넘게 순매도 하면서 증시가 가파르게 하락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등장한 1월 20일부터 외국인들은 국내시장에서 재빨리 손을 털고 일어났고 지난 4월 17일까지 코스피를 20조2497억원 가까이 매도했다. 같은기간 개미들은 외국인들이 매도한 20조9523억원의 물량을 순매수하며 그대로 받아냈다.

현대차증권이 발표한 1월~4월 외국인·개인 누적 순매수 ⓒ투데이신문
현대차증권이 발표한 1월~4월 외국인·개인 누적 순매수 ⓒ현대차증권

금융투자업계에선 이같은 현상에 대해 2001년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량주를 저가 매수해서 장기 투자하면 성과가 좋다는 것을 개미들이 학습한 효과라고 분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10만원 이상의 잔액을 가지고 6개월 내에 한 차례 이상 주식을 거래한 경험이 있는 ‘활동 계좌’ 수는 3110만5665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스피가 1400대까지 내려갔던 지난달에만 86만개가 늘어 2009년 4월 이후 최대 증가폭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매달 20만개 미만씩 증가한 것과 확연한 차이다.

이는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28조1620억원)보다 61% 늘어난 수치로 단기간에 엄청난 주식열풍이 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1차 격전지…‘삼성전자’ 등 우량주 중심으로 ‘줍줍’

개미들이 순매수한 1분기 격전지는 주로 삼성전자(7조8000억원), 삼성전자우(1조6239억원), SK하이닉스(1조1225억원), 현대차(9440억원), 삼성SDI(6600억원)등의 순으로 꼽힌다.

한국예탁결제원은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개미들에게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 지난 3월 31일 기준 삼성전자 주주 수가 162만8000여명으로 지난해 연말 64만명에서 154% 급증했다고 밝혔다.

동학개미운동에 참여한 한 개인 투자자는 “주식 시장에 새로운 돈이 유입되고 있는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라며 “이제 국내 주식시장은 기관, 외국인이 아닌 개미들이 이끌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대차증권 이창환 연구원은 “이번 동학개미운동은 과거보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준비돼 일확천금이 아닌 사회 구조의 변화에 맞춘 적절한 주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 등 우량주 주가가 회복하려면 외국인 자금이 필수적인데 아직까지 ‘외국인 귀환’소식이 없어 미지근한 상승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20일부터 28일까지 개인이 가장 순매수한 상위 종목 10개의 주가 상승률이 평균 30.3%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많이 산 열 종목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56.38%로 개미 수익률을 크게 웃돌았다. 기관 투자자 평균 수익률도 49.3%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들의 순매수 1, 2위 종목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로직스는 각각 49.29%, 60.66% 상승했다. 외국인은 주로 코로나19 국면에 치료제 생산 기대감으로 실적 성장이 점쳐진 바이오주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거뒀다.

증권가에서는 적어도 6개월~1년은 지나야 개미들의 승리를 예측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어 개인 투자자들이 단기 투기 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다면 실제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연구위원은 동학개미운동에 대해 “이전처럼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라며 “만일 테마주로 자금이 이동한다면 장기간 증시에 머무는 자금이 아니라 단기로 치고 빠지는 성격이 더 강해 우려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유가 반등을 기대한 불개미들이 일찌감치 투자 위험이 큰 인버스 금융상품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 ‘개미→불개미’로 진화, 투자위험 안고 ‘ETF‘ 행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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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운동은 개미들이 삼성전자 등 우량주를 ‘줍줍’하며 ‘장기투자’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수익률 상승폭이 기대만큼 크지 않자 레버리지, 원유 상장지수펀드(ETF)등 공격적인 상품에 ‘빚’까지 내며 과감히 뛰어 들어가는 ‘불개미’들을 양성했다.

불개미들은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중순부터 하루에 최소 3조원~최대 6조원에 육박하는 매수를 기록하며 ETF시장을 본격적으로 주도하겠다는 신호탄을 쐈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달 한국증시에서 ETF 일평균 거래대금은 6조8572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평균(1조3332억원)보다 5배 이상 늘어난 규모이며 같은 기간 코스피에서 하루 평균 10조967억원이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67.9%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치다.

ETF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특정 지수의 성과를 추종하는 펀드로 여러 종목을 묶어 놓고 주식처럼 실시간 매매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으며 투자가 쉽고 수익률이 좋아서 꾸준한 인기를 끈다.

ETF는 주식처럼 신용매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레버리지 효과가 더해지면 운용하기에 따라 하루에 원금대비 60%이상의 수익도 가능하다.

수익성이 좋은 만큼 손실 가능성도 큰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상품으로 변동 폭이 큰 레버리지 ETF와 주가하락이나 유가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의 비중이 높다.

코스피 지수가 9% 넘게 폭락했던 3월 19일 KODEX 200선물인버스2X ETF는 하루에 무려 4억9326만좌, 6조992억원이 거래됐고 가격은 13.25%상승했다. 같은 날 코스피200 지수가 상승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KODEX 레버리지 코스피 ETF 역시 2조2454억원 가량이 거래됐다.

두 ETF종목의 거래대금을 합하면 당일 삼성전자 거래대금(2조5029억원)의 3.33배에 달한다.

실제로 국제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KODEX WTI 원유선물인버스(H)는 지난 1월 6일 1만1300원에 불과했는데 2월 말에는 1만5710원으로 치솟았고 3월 말에는 2만6620원으로 상승하며 3월 한 달 간 69.5%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불개미들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며 롤러코스터를 타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개미들 중엔 돈을 벌겠다는 의지로 ‘빚내서 투자’한 경우도 많아 ‘개미지옥행’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잇따른다.

◆ 2차 격전지...‘유가반등’ 노린 ‘ETF’, 빚낸 개미들 ‘개미지옥‘ 우려

대박을 노리는 개미들의 바람과 달리 지난주 5월물 가격이 유례없는 마이너스 폭락을 기록했고 6월물은 22일부터 3거래일 동안 40% 넘게 오르며 16.94달러로 한 주를 마감하는가 싶더니 국제 유가는 27일 다시 폭락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WTI는 배럴당 24.6%(4.16달러) 내린 12.7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 때 30% 넘게 밀리면서 11달러 선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도 장중 2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유가급락의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급감·공급 과잉’ 때문이다. 최근 유가 저장공간 자체가 부족한 것도 악재로 겹쳤다. 시장에서는 원유 재고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향후 몇 달 내 글로벌 원유 저장탱크가 가득 차는 ‘탱크톱(tank top)’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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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분기별 해외주식투자 TOP50 (주식vsETF) ⓒ삼성증권

앞서 한국거래소는 지난 22일 이례적으로 원유 선물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에 대해 ‘전액 손실’을 경고하고, 일부 종목의 거래를 중단시켰다. 다음날 금융감독원도 관련 상품에 대해 최고 수준인 ‘위험’ 등급의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며 투자 자제를 권고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펀드나 주식투자에 비해 ETF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국내 ETF상품이 특정 부문에만 쏠려 있고 개인 투자자들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ETF를 매수하기보다 고위험을 수반하는 투기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24일 기준 신융거래융자액은 8조7986억원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말 신용거래융자액이 6조5783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달 새 무려 2조2000억원이 늘어난 셈이다.

덩달아 주식투자정보서비스와 관련한 소비자들의 피해구제 신청도 증가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주식투자정보서비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이 2월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월에는 190건이 접수돼 전년 동기보다 28.8% 감소했지만 2월에는 204건으로 17.9% 늘었고, 3월에는 247건으로 12.8% 증가했다.

한국소비자원은 투자 손실이 발생한 소비자들의 계약 해지 요청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개미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 ‘개미자금→투기성’으로 변질, 전문가들 “국내 증시 변동성 확대 될 수 있다” 

신용융자의 증가와 함께 개인들의 투자 대상이 변동성이 큰 단기 투자 종목으로 옮겨가면서 증권가에서는 개인들의 자금 성격이 ‘스마트 머니’에서 ‘투기성 자금’으로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이 투기적 성격으로 변질될 경우 여전히 높은 증시 변동성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리츠종금증권 하인환 연구원은 “원유 관련 ETF, ETN이 순매수 상위 종목에 포함됐고 3월 중순부터는 인버스 ETF가 순매수 상위 종목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개인들의 투자성향을 보면 전체 자금 중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전과 다른 투기성 자금이 유입된 듯 하다”며 “한동안 상승의 근거로만 받아들여지던 개인 자금의 성격이, 이제는 변동성 확대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연구위원은 “특정 시점에 투자를 올인하는 방식보다 매수시점을 적당히 분산해 나눠서 투자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좋다“며 “인버스 ETF는 위험성이 높은 상품이라 투자를 피할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금융감독원 윤석헌 원장도 지난 28일 취임 2주년 기자단 서면 간담회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 단기 투자에 대해서 우려했다.

개인투자자의 자금이 증시에 몰리는 ‘동학개미운동’에 대해선 “투자의 기본에서 어긋났는데 이름을 너무 좋게 지어준 것 같다. 단기투자 중심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의 유동자금이 많고 금리는 낮아지면서 부동산도 못하게 억제하니까 뭔가 돌파구가 필요해진 것”이라며 “저금리 유동성이 원유 선물 ETN 등으로 향하는 것 같다. 이런 투기가 (금융)시스템을 위험하게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융회사들이 중수익 상품을 만들어 중화시켜줘야 하는데 금융산업, 특히 자본시장이나 금융투자업계에서 그런 걸 잘 못하고 있다”라며 금융사의 시스템 부재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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