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지지 속에 출발한 ‘민식이법’
시행 한달 만에 개정 촉구 논란
운전자들 “과잉처벌·기준 모호”
“논쟁 여지 있으나 개정은 NO”

ⓒ뉴시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 사망한 故 김민식(당시 9세)군의 사건을 계기로 스쿨존 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도입됐다.

민식이법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지난 3월 25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다수 국민의 기대 속에 출발한 민식이법이지만 시행 직후 여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스쿨존 내 교통사고 처벌강화에는 공감하면서도 사고 발생 후 처벌 규정이 지나치고, 기준이 모호하다는 등의 이유로 운전자들이 민식이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시행 한달여 밖에 되지 않은 민식이법이 개정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무엇일까.

ⓒ뉴시스
ⓒ뉴시스

“운전자에만 책임 묻는 과잉처벌”

김군은 지난해 9월 동생과 함께 충남 아산의 모 중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신호등과 안전펜스, 과속카메라 등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인근에서 치킨 집을 운영 중이던 김군 어머니의 진술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과속운전에 따른 사고로 추정됐다.

사고 이후 김군의 아버지는 국민청원을 통해 아들의 사고를 계기로 스쿨존 내 신호등 설치 의무, 어린이보호구역내 과속카메라 설치 의무, 스쿨존 내 사고 시 가중처벌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많은 이들이 김군의 사고를 안타까워하는 한편 스쿨존 안전시설 확충 및 스쿨존 내 교통사고 형량 강화 등에 공감했다. 해당 청원은 41만5000여명의 동의를 얻어 민식이법 도입 여론을 이끌어냈다. 여론에 힘입은 민식이법은 같은 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3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국민의 지지 가운데 출발한 법안인 만큼 순항이 예상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투데이신문

그러나 법안 시행을 앞두고 돌연 민식이법 반대 및 개정을 촉구하는 운전자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교통안전 시설 확충과 교통사고 발생 시 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포함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스쿨존 내 무인단속카메라 설치 △스쿨존 인접지역 횡단보도 신호기 설치 △불법주차 금지 의무화 △과속방지시설 및 차량 미끄럼 방지 시설 설치 등 내용을 담고 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스쿨존 내에서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아이가 사망할 경우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상해 시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운전자들이 개정을 촉구하는 지점은 사고 발생 후 처벌에 관한 내용이다.

이들은 민식이법이 ‘형벌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과실’ 가능성이 높은 스쿨존 내 사고를 ‘고의’ 범죄와 같은 수준의 형벌을 내리는 균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관한 ‘윤창호법’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상해 시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사망사고 시 윤창호법과 민식이법은 형량이 적용되는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로 간주되는 음주운전사고와 순수과실범죄인 스쿨존 내 사고가 같은 수준의 처벌을 받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책임과 형벌 간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스쿨존 내에서 시속 30km 이상 과속하지 않고 어린이 안전에 유의해 운전했을 경우에는 면책 조건으로 인정된다. 때문에 운전자 과실이 0%로 인정만 되면 민식이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운전자 과실이 20% 미만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0.5%인 점을 미뤄 볼 때 운전자 과실이 0%로 인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안전에 유의한 운전’이라는 기준도 모호해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운전자가 법을 준수하더라도 스쿨존 내에서 어린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게 되면 이를 악용해 합의금을 목적으로 어린이를 이용한 고의성 사고를 낼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민식이법 반대 및 재개정에 대한 여론은 결코 적지 않다.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은 35만4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뉴시스
ⓒ뉴시스

“민식이법, 잘못된 정보로 혼선”

교통 전문가는 일부 잘못 알려진 정보로 민식이법이 혼선을 빚고 있다고 분석하며 개정 여론에 선을 그었다. 

한국교통연구원 한상진 선임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형사상으로는 교통사고 발생 시 ‘과실이 있다’, ‘과실이 없다’, ‘잘 모르겠다’를 기준으로 과실 여부를 따지고 형벌을 받게 된다. 형벌을 내릴 때 사소한 과실 혹은 피해자와의 협의 등을 정상참작 해 처벌이 필요 없다고 하면 양형이 달라질 수 있다”며 “스쿨존 내에서 사고가 발행하면 운전자 과실이 낮게 인정된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시속 30km 이하 속도 규정 외에도 횡단보도에서는 반드시 멈춰야 한다는 등 스쿨존 내에서 주의해야 할 의무사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의무사항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운전자는 이를 지켜야 한다”며 “만일 지켰는데도 사고가 발생하면 블랙박스나 사고 정황 등을 통해 충분히 안전에 유의해 운전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법이든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민식법을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부연했다.

한 연구원은 “민식이법은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는 스쿨존에서는 사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자는 취지다. 사고 발생 시 스쿨존이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높아야 한다는 지점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순 있지만 이로 인해 개정까지 필요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