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인간을 흉내 낸 인형이다. 그 인간 유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또 분노했다. 기술은 스스로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 실현에 한발 다가섰지만, 인간의 도구화 등 새로운 문제 역시 드러내고 있다. 리얼돌은 인간의 정의까지 다시 생각하게 할 새로운 존재 탄생의 시작점일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파도를 우리 사회는 잘 준비하고 있을까.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해 불거졌던 리얼돌 논란을 되짚어보고, 리얼돌 판매업체·관련 교수들을 만나 리얼돌 논란의 핵심 쟁점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이화여대 신상규 교수 ⓒ투데이신문
이화여대 신상규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 리얼돌 이전에 공기인형이 있었다. 공기인형은 마치 풍선처럼 공기를 주입하는 형태로 여체를 조악하게나마 흉내 냈지만, 그 모습으로 때론 웃겨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공기인형은 마냥 웃어넘기기 어려운 문제가 돼버렸다. 이제 공기인형은 피부를 실리콘으로 갈아입고 피부의 질감, 세부적인 묘사들도 가능한 리얼돌로 돌아왔다.

리얼돌은 아직 모습만을 어느 정도 구현했을 뿐이다. 향후 움직임이 추가되고 심지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로봇이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미 해외에선 AI(인공지능)와 리얼돌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리얼돌 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충분히 흔들렸다. 지금은 그저 인형에 불과하다지만 리얼돌은 인공지능 로봇이 돼 돌아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듣기 위해 본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최초로 신설된 포스트휴먼 융합인문학 협동과정의 학과장을 맡고 있는 신상규 교수를 만났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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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인정하고 개선해나가야

신 교수는 리얼돌에 대해서 마냥 부정적인 시선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바라봤다.

“리얼돌에 대해 긍정, 부정으로 단정하긴 힘들다. 우려해야 할 지점도 분명히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다. 리얼돌이 분명 욕구 문제와 연관돼 있지만 그 이상의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리얼돌이 인공지능 로봇으로 발전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기능과 삶에 끼칠 변화 등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또한 그는 리얼돌이 묘사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 대해선 경계했지만, 이 문제가 여성들이 우려하는 만큼 심각하지는 않으리라 전망했다.

“리얼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 여성에 대한 과도한 성적 대상화, 리얼돌이 지니고 있는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 등이다. 리얼돌이 묘사하는 여성은 현실의 여성과는 괴리가 있다. 전형적이고 과장된 여성의 이미지인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성성에 대한 정형화된 스테레오 타입과 이미지를 파괴시켜야 한다. 문제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과거의 관점에서 봤을 땐 잘못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큰 문제가 아닌 경우가 있다. 가령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정상적인 성장과 사고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물론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심각한 위험은 아니다.”

신 교수는 이미 하나의 현상으로 뿌리내린 리얼돌을 거부하기 보다는 받아들이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 부분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하지만 현상 그 자체는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 이 현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를 궁리해야지, 금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로봇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해외에선 이미 리얼돌에 AI를 탑재해 간단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신체적인 쾌락을 주는 것 이상의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인공지능 로봇으로 발전하게 된다면 리얼돌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성관계에선 서로 동의하는 일이 중요하다. 리얼돌은 동의하는 과정이 생략돼 있어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신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리얼돌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다른 인간관계에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조금 과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경우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비슷한 예로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적이고 생명을 경시하게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회심리학적 조사 결과 폭력적인 게임과 실제 폭력 사이의 경험적 증거는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다. 우려할만한 지점이기에 아이와 같이 미성숙한 사람들에겐 보호자를 통해 위험성을 고지하는 등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리얼돌에 대한 태도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대하게 된다는 주장은 다소 비약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발전한다면, 과연 이것이 감정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부딪힐 수 있다.  리얼돌이 목표하고 있는 ‘반려로봇’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도 정서적 교류다. 신 교수는 로봇의 감정 여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기계 역시 마음을 지닐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만이 마음의 모든 형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감정을 내면의 상태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선 감정이 주관적이고 내적인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신체적 반응을 포함한 상대방과의 상호작용 자체가 감정이다.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것이 인간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 동물도 감정의 영역 안에 들어왔고, 기계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계가 우리와 동일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이 유일한 방법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은 지구상에서 진화의 생물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생물체가 가진 마음인데, 이는 철학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실현된 것뿐이다. 유일한 가능성일 필요는 없다. 즉 마음과 ‘인간의 마음’은 다른 것이다. 마음 안에 인간의 마음 역시 포함된다.”

로봇의 발전으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 인간을 소외시킬 것이라 우려도 있다. 신 교수는 기계가 인간과의 관계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만을 정상적이라고 생각해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를 무시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소외의 측면도 있다. 리얼돌 등이 발전함에 따라 굳이 인간을 만나지 않아도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욕구를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성적 욕구 해소뿐만 아니라 관계적 욕구도 해소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 기계를 수동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현재의 리얼돌은 분명 그렇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은 수동성을 초월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정의할 때 사용하는 개념들이 있다. 이는 일종의 프레임으로써 작용하고 기술과의 관계에서 인간소외를 논할 때도 이미 그 프레임이 들어와 있다. 현실이나 미래를 표현하지 못하는 과거의 언어들로 문제를 설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화여대 신상규 교수 ⓒ투데이신문
이화여대 신상규 교수 ⓒ투데이신문

구시대적 담론에 갇혀선 안돼…새로운 언어 필요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에 대해 도전할 것이라고 신 교수는 전망했다.

“인공지능 기술들이 던지는 도전은 단순히 똑똑한 기계의 탄생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의 감정, 생각이 무엇이냐, 감정으로 상대방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무엇이냐다. 우리가 너무나 상식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고 있던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그는 현대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패러다임의 전환도 빨라져 그에 따른 총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의 차이는 과거로 따지면 500년에 준하는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세상을 인식하는 망 자체가 다르다. 세상의 문화적 습관, 구조 자체가 달라지기에 문제를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기술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신 교수는 우리가 지금껏 가져왔던 구시대적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생각도 역사적으로 바뀌어 왔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랑과 성에 대한 관점은 18~19세기의 관점이다. 이 전형적인 생각에 균열이 일고 있다. 이 균열이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이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퀴어 등을 통합해 지칭하는 말)로 대표되는 성 소수자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이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을 피해야 할 담론처럼 보수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구시대적 생각들이 바뀌어야 한다.”

리얼돌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여전히 과거의 프레임에 매몰돼 있다며 지적했다.

“리얼돌에 관련된 많은 논의들도 과거의 언어들의 답습이라고 생각한다. 리얼돌처럼 성에 관련된 이슈는 그간 사회적으로 금기시돼 왔던 영역이기에 조금만 잘못 말한다면 매도 당하기 쉽다.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돼 있는 프레임에 포획되지 않고 논의를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고정된 과거의 언어로 토론하는 것은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 교수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선 새로운 사고방식과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담론·언어·이론·사고방식을 만들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변화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그 속에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적인 수준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정치적인 문제이기에 작은 것들부터 조금씩 바뀌어나가야 한다. 기술에 대한 대응은 기술적 장단점에 대한 단기적 대응이 될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수준에서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그간 리얼돌은 금지·허용의 두 갈래 길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 교수는 이분법적 판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향후 등장할 인공지능 로봇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성숙한 사회적 대화와 조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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