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보건소 방역 관계자들이 12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환자가 다녀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용산구 보건소 방역 관계자들이 12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환자가 다녀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클럽에 방문해 다시 코로나19가 확산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일부 언론이 성소수자 혐오 행태를 보이며 방역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4시까지 이태원의 클럽과 주점 등 5곳을 돌아다닌 용인 66번 확진환자는 지난 6일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방역당국은 이 확진환자를 이태원 클럽 관련 초발환자로 추정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관련 확진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언론이 해당 클럽이 성소수자 클럽이었다며 확진환자의 성적지향을 아웃팅(당사자의 동의 없이 타인의 성적지향을 공개하는 것)해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지난 7일 용인 66번 확진환자가 이태원의 한 클럽을 방문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게이클럽’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해당 보도에는 이 확진환자의 거주지역과 건물 형태, 심지어 직장 정보까지 명시돼 있었습니다.

<국민일보>가 이 같은 보도를 하자 <한국경제>, <위키트리>, <인사이트> 등 일부 매체들은 앞다퉈 ‘게이클럽’이라는 제목을 달고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이 같은 보도는 명백한 인권침해입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제8장은 ‘언론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번 이태원 클럽 코로나19 확진 사례 보도에서 확진환자의 성적 지향은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정보입니다. 더욱이 언론의 이런 행태는 아웃팅을 두려워하는 성소수자들을 숨게 만들어 방역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권준욱 본부장은 지난 9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 환자는 환자일 뿐”이라며 “환자를 비난하거나 편견을 부추기는 행동, 글은 방역활동에 결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난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방역의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접촉자가 비난을 두려워해 진단검사를 기피하게 되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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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등의 보도를 통한 아웃팅은 코로나19의 재확산에 대한 책임을 성소수자에게 돌리는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실제 <국민일보>의 해당 보도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혐오 게시물과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에는 ‘경제적 불황, 범죄, 재난, 전염병 등이 발생했을 때 혐오표현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인권의 측면에서 더욱 면밀히 살피고 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불행의 원인을 특정 집단에게 돌려 희생양으로 삼게 되기에 경계하겠다는 선언이죠.

<국민일보>는 한국기자협회 회원사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일보>는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과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을 무시한 채 혐오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등 7개 단체들은 12일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를 출범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이태원 클럽과 업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난 이후 언론들의 악의적인 보도가 나왔다”며 “확진환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가 하면, 방문 장소들을 낙인찍는 가짜뉴스와 가십이 조장되어 여론몰이 되기도 했다. 이는 자발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두려움을 갖기 충분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대책본부는 “특정 집단을 표적하는 것은 공중보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검진과 치료, 회복과 더불어 사회에 다시 복귀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필요한 것은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고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감염병에 특정 집단과 장소를 연결시키는 것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전파가능성에 대한 걱정을 타인에게 전가해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코로나19를 빌미로 자행하는 성소수자 혐오를 멈춰달라”고 언론에 요구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정당화하는 <국민일보> 등 일부 언론의 태도는 보도를 접하는 시민들의 인식에 쉽게 반영되고, 이는 성소수자 혐오로 이어지게 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국민일보> 등 언론은 인권침해와 혐오를 멈추고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언론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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