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019년 8월 17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추모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44주기 추모식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故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019년 8월 17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추모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44주기 추모식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법원이 유신정권에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족에게 국가가 7억8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김형석)는 장 선생의 유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총 7억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민주화운동 인사인 장 선생은 1973년부터 재야인사, 종교인, 지식인들과 함께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유신헌법 개정을 주장하다가 1974년 1월 13일 긴급조치 1호 위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돼 같은 달 25일 기소됐다.

장 선생은 1심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을 거쳐 그해 8월 상고기각으로 형이 확정됐다.

수감생활을 하던 장 선생은 같은 해 12월 3일 병보석에 따른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으나 1975년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 선생의 유족은 지난 2009년 재심을 신청했으며 이후 2013년 서울중앙지법은 긴급조치 1호가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판단과 헌법재판소 판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법원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며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간 일부 하급심을 제외한 상당수의 판결은 이 같은 대법원의 판례를 따라왔다.

그러나 장 선생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해석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수사, 재판, 형의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다”며 “발령행위 자체만을 판단해 정치적 책임만을 진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고의로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발령하고 수사기관 등을 이용해 위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실제 피해를 본 장 선생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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