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인간을 흉내 낸 인형이다. 그 인간 유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또 분노했다. 기술은 스스로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 실현에 한발 다가섰지만, 인간의 도구화 등 새로운 문제 역시 드러내고 있다. 리얼돌은 인간의 정의까지 다시 생각하게 할 새로운 존재 탄생의 시작점일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파도를 우리 사회는 잘 준비하고 있을까.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해 불거졌던 리얼돌 논란을 되짚어보고, 리얼돌 판매업체·페미니즘과 인공지능 관련 교수들을 만나 리얼돌 논란의 핵심 쟁점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5편에선 여전히 남아있는 리얼돌의 문제점들과 변화해나가야 할 방향을 정리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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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 리얼돌은 단발성 이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리얼돌에 대한 규제는 전무한 상황이며, 사회적 감시가 소홀한 상황에서 점점 그 세를 넓혀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리얼돌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이 전망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사회는 지금 리얼돌에 대해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리얼돌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리얼돌 수입·판매 등의 허용을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맥락에서 이뤄졌고, 상호 간의 대화를 통한 세부적인 조율과 반성은 부족했다.

기자의 주변인들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리얼돌 사용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거나 “리얼돌 사용은 이상하다, 사용자 스스로 이상하단 걸 알아야 한다”는 등 극단적으로 나뉘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특정 인물·아동 형태 리얼돌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이다.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 답변에서도 답변인은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아동형 리얼돌 규제와 당사자 동의 없는 특정 인물 리얼돌에 대해서 규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말로 그 두 가지 형태의 리얼돌만을 규제한다면 리얼돌에 대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일까. 리얼돌 그 자체만이 아니라 리얼돌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에 대한 조명과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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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리얼돌이 여성계의 강력한 반발은 결국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도구화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뜩이나 여성 성상품화 문제들이 넘치는 우리 사회에서 리얼돌까지 등장한다면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선을 강화하게 되리라는 주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동형 리얼돌의 경우, 규제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아동형 리얼돌이 단순한 성적 불쾌감·혐오감에 의해 규제되는 것이라면, 아동형 리얼돌을 사용할 자유보다 아동형 리얼돌을 규제할 근거가 강하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아동형 리얼돌을 규제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동형 리얼돌이 아동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아동형 리얼돌의 자유로운 사용은 아동을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고, 이런 성적인 인식은 경우에 따라 아동에 대한 성범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아동형 리얼돌을 규제하지 않는 것은 아동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아동을 보호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동형 리얼돌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리얼돌이 모방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강화한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아동형 리얼돌이 아동에게 위협이 된다면, 성인여성 리얼돌 역시 성인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강화해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리얼돌이 모방하고 있는 획일적인 여성의 모습 역시 개선돼야 한다. 일례로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리얼돌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의 리얼돌은 지나치게 과장된 신체 부위를 지니고 있다. 리얼돌의 주 판매 타깃인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의 여성을 구현해 놓은 것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리얼돌은 남성들의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맞춰진 모습이다. 또한 입이나 귀 등 특정부위를 성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등 완전히 성적 도구화되는 여성의 육체를 극명히 보여준다. 리얼돌은 비현실적이고 획일적인 여성의 몸에 대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으며 어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는지를 너무나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향후 ‘인공지능 로봇’으로 발전 가능

그렇다면 리얼돌은 문제 덩어리이기만 한 것일까, 혹자는 리얼돌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나 노인,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스로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현재의 리얼돌은 비싼 가격과 무거운 무게 등으로 인해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리얼돌은 지금처럼 실리콘 인형에 그치지 않고 더욱 나아갈 것이다. 리얼돌과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은 우리가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인간과 기계와의 사랑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때에야 진정으로 피그말리온의 꿈이 현실에 구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인공지능 섹스로봇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미 간단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리얼돌 ‘하모니’가 미국에서 개발된 바 있다.

하모니를 실제로 구매한 50대 남성은 미국 매체 ‘버즈피드'(BuzzFeed)와의 인터뷰에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현실에 지쳐버렸다”며 “구매 이후 더욱 행복하고 더욱 차분해졌다. 로봇이 외로운 많은 이에게 행복을 안길 것이다”라고 사용 소감을 밝혔다.

여러 이유들로 타과의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로봇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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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사회가 변화해야 할 때

리얼돌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이 분명히 있음에도 리얼돌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리얼돌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까. 여성계 등 리얼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리얼돌을 반대하는 이유로 성차별적 사회를 지목한다.

김 소장 또한 리얼돌 자체보다 사회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남성들은 성관계에 있어서 여성들보다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성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진짜 남자다’, ‘멋있다’ 등의 칭찬을 들으며 심지어 상대방의 적극적인 동의 없이 성폭행을 저질러도 마치 남성성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남성들에 대한 성 관용적 문화가 성폭력까지 이어지는 것이다”라고 남성들의 섹슈얼리티에 지나치게 관용적인 사회를 비판했다.

또한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성폭력이 제대로 처벌받는 사회에선 리얼돌에 대한 비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처럼 리얼돌에 대한 반발은 국가적 여성의 지위와도 관련돼 있다”며 “여성인권이 높고 성범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며 성 인식이 바로잡힌 사회는 리얼돌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나라 정도는 아니다. 인권, 안전 등이 제대로 보장되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올바른 성인식이 잡히지 않은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얼돌의 과제, 사회적 가치 함양해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시장이 흘러가다 보면 사회적·인간적 가치에 반하는 물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화여대 신상규 교수는 “문제는 인공지능 개발을 이끄는 원동력이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입장에서 발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통해 개입하고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많이 차단돼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가 바뀐다고 해도 리얼돌 시장이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재의 리얼돌 시장은 이런 인격적·사회적 가치들과 동떨어져 있다. 리얼돌 체험방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 유사 성매매 업소,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리얼돌을 성적으로 과시하는 일 등을 규제하는 것은 보수적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이라고 봐야 한다. 단순히 ‘잘 팔리니까’, ‘고객들이 원하니까’라는 이유로 반성 없이 시장이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되며 기술은 언제나 사람을 위해 개발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n번방 사건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다. 이미 하나의 문화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성차별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리얼돌의 찬반 논쟁보다 우선시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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