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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아파트 주민의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이동 경비원 갑질 사망 사건’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사실 그동안 경비원 폭언·폭행 등 갑질 문제는 여러 차례 불거진 바 있다. 때마다 크게 논란은 됐으나 피해자를 향한 안타까운 여론 형성에 그쳤을 뿐,  이 같은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결과는 없었다.

관련법은 있지만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피해 발생 후 업무 중단, 치료 등 피해자를 위한 지원책만 마련돼 있을 뿐 가해자 처벌에 관한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경비원 갑질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일한 태도가 ‘우이동 경비원 사망’을 야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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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결백 밝혀주세요”

지난 10일 강북구 우이동 소재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故 최희석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결백을 밝혀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이 그토록 최씨를 억울하게 한 걸까.

비극의 시작은 아파트 입주민과의 갈등이었다. 최씨는 지난달 21일 이중주차돼 있던 입주민 A씨의 차량을 밀어 이동시켰다. 그런데 A씨는 이를 빌미로 최씨에게 온갖 폭언과 폭행, 협박 등을 일삼기 시작했다.

심지어 같은 달 27일에는 A씨가 최씨를 경비실 내부 화장실에 가두고 폭행했고, 이로 인해 최씨는 코뼈가 부러져 내려앉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최씨는 폭행 사건을 계기로 A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A씨는 사과나 반성은커녕 되레 명예훼손 및 모욕 등을 이유로 맞고소하며 최씨를 협박했다. 결국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A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씨는 평소 입주민들로부터 호평이 자자한 경비원이었다고 한다. 온종일 근무로 힘들 법도 한데 피곤한 기색 없이 늘 웃는 얼굴을 잃지 않고, 마치 제 가족인 것 마냥 입주민들의 일을 밤낮 가리지 않고 발 벗고 나선 것으로 알려져 그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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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갑질’의 연속

‘우이동 경비원 갑질 사망 사건’은 관련 국민청원 글이 36만8000명(15일 오전 기준) 이상의 동의를 얻는 등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던 입주민 갑질 및 경비원 인권 문제를 공론화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 등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6월 말 기준)까지 최근 5년간 공공임대주택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입주민이 가한 폭언·폭행은 2923건으로 집계됐다.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의 폭언·폭행도 73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12월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가 공개한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입주민으로부터의 비인격적 대우 경험 유무’에 대해 응답자 4명 중 1명(24.4%)이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2014년에는 입주민의 횡포·모욕을 견디지 못한 경비원이 분신해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또 2018년 10월에는 입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사망했고, 2019년 4월에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야구방망이로 관리사무소장과 관리 직원들을 위협한 사건도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까지 고려하면 입주인의 갑질로 인한 경비원 피해는 특수 사례가 아닌 주위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경비원 보호를 위한 법적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제6항에서 ‘입주자, 입주자 대표회의, 관리 주체 등은 경비원 등 노동자에게 적절한 보수를 지급하고 그들의 처우 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업무 외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를 위반했을 시 처벌에 관한 조항은 규정돼 있지 않다.

2018년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는 ‘사업주는 폭언, 폭행 등으로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한 바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경비원이 피해를 입었을 때 사업주에게 업무 중단, 치료, 법률절차 등 책임만 부과할 뿐 가해자에 대한 조치는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관련법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미약하다 보니 경비원 갑질 사건은 재판에 넘어가도 강한 처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 차량 진입을 막은 경비원에게 폭언과 위협을 하고 다른 차량의 통행을 가로막은 주민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는 판례가 있다. 또 커튼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경비원을 1m 길이의 커튼 봉을 이용해 턱을 때리고 문구용 칼로 위협한 주민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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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석법’ 구체화되나

최씨의 유족은 경비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갑질을 완전히 끊어 낼 수 있도록 ‘최희석법’을 적극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서 멸시받는 직종의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이 법을 통해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게 유족의 뜻이다. 유족은 이 법을 통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유족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에서도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고, (우이동 경비원) 사태를 계기로 재발 방지를 위해 사회적으로 근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21대 국회 개원 후 갑질과 폭력 등으로부터 공동주택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반영된 법률 제·개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동주택 입주민에 의한 각종 갑질 등 예방을 위해 ‘갑질 방지를 위한 신고센터’(가칭)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부연했다.

정치권에서도 보완 입법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경비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우리의 이웃이다”라며 “이분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제도 개선을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경비 노동자의 노동권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다”며 “입주민에 의한 갑질과 폭력에서 경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정장치가 현행법에선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비 노동자에 대한 폭언·폭행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입주민 갑질·폭행을 예방하고 경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안타까운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며 “전국 30만 경비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존중받고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를 개선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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