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희 작가

“사랑은 흘러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 아폴리네르(시인)

 

화실의 벽면에 걸린 김경희 작가의 대형 작품을 보는 순간 나는 충분히 황홀해 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명언이 마치 그를 위한 것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티스 이후 진정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한 화가는 샤갈뿐이다.”

거의 모든 그림을 보아도 색채에 관한 한 샤갈은 20세기 최고의 사랑을 받은 색채 화가였다.

그는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색채를 사용했지만, 특히 빨강·파랑·노랑 그리고 초록색에서 그 진가를 발했고 구성에서 탁월했다.

김경희 작가의 화실에서 무엇보다 내가 충분히 황홀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꿈 , 나의 사랑> 이나 <그리운 날의 꿈> 작품에서 보이는 환상적인 색채의 조화 때문이었다.

그의 화폭에는 강렬한 원색들이 화폭 속에 휘몰아치듯, 때로는 거칠게 만나고 뒤섞일 때마다 근사한 들판이 한 점씩 생겨났다.

펼쳐진 붓질이 흔들려 그 아름다운 색채가 춤추면 꽃이 되고, 푸른 바다와 어울려 깊고 멋진 감동의 화음을 만들어 냈다. 그 선율들은 그렇게 찬란하게 요동쳤다.

내 마음의 노래 I(The Song of My Mind), Oil on canvas, 162 x 130.3 cm, 2018
내 마음의 노래 I(The Song of My Mind), Oil on canvas, 162 x 130.3 cm, 2018

여기서 우리는 그 색채의 근원이, 붓질의 격정이 어디에서 발현되는 것인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샤갈의 화폭 속에 가장 큰 영향은 고향 러시아였는데, 김경희에게 의외로 그 영향은 오히려 그의 내면 즉 가슴 속에 더 많이 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가 여류작가로서, 아내로서, 학교경영자로서 겪어야 하는 모든 세상살이의 인내와 폭풍이 그의 화폭 안에 맺혀 있음을 여기서 문득 발견한다.

그럼에도 김경희 작가의 특징적인 화풍과 모티브는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을 향하여 손짓하고 있다.

프랑스 남불 니스로 기억하는 요트 풍경이 있는 바다와, 그 앞 꽃병에 놓인 정물이 매혹적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 풍경 위를 매우 경쾌하고 빠른 붓 터치가 바람처럼, 폭풍처럼 지나간다.

그리하여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와 거칠게 내리친 꽃병과 술잔들이 창밖과 실내의 극적 풍경이 태어난다.

아마도 라울 뒤피가 앙데팡당전의 마티스 그림을 보고 전환을 맞이하듯, 대담한 색채와 경쾌한 표현의 역동성에서 뒤피의 풍경이 아직 그녀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김경희 작가의 작품에 특징은 일상적인 원근법에 의한 구성보다 콜라주 한 듯한 공간처럼 스케치하듯 그은 선들로 그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렇게 그녀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색채의 표현이나 붓질에서 샤갈만큼이나 환상적이다. 그러면서도 경쾌한 터치와 패턴은 뒤피처럼 경쾌한 멋을 아우르는 것이 김경희만의 음색이다.

특히 풍경과 해변, 창이 열린 실내의 꽃들을 한 화면에 때로는 누드까지 간결한 형식으로 율동적으로 소재들을 담아 보는 기술은 보는 이에게 뜻밖의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한다.

마치 컬렉터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이 “뒤피의 작품, 그것은 쾌락이다”라고 말한 것을 떠올린다. 이렇게 김경희의 캔버스엔 자연과 풍경, 꽃에 대한 감정이입 등으로 꽃과 색채의 향연처럼 축제의 순간들이 빠르게 호흡한다.

더욱이 주저 없이 색감이 풍요로운 태풍 같은 휘날림은 짜릿한 경쾌로 눈의 사치스러움에 우리를 눈멀게 한다.

화면에 여백 없이 강렬한 색채로 공간을 점유하는 낯설음과 초기의 신경질적이고 폭풍 같은 붓질, 그 붓질에 떠밀려 일그러진 풍경들은 후기로 갈수록 단순한 형태로 정리되면서 환상성에 남성적인 격정을 수반하는 것도 그의 그림에 빠트릴 수 없는 매력이다.

이미 조형성과 색채의 환상적인 연출만으로도 장식성을 넘어 시각적 희열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축제의 날(The Carnival Day), 112 x 145.5 cm, Oil on canvas, 2018
축제의 날(The Carnival Day), 112 x 145.5 cm, Oil on canvas, 2018

그가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인상적으로 혼합해서 쓴 빨강과 녹색의 꽃의 격렬한 조합은 사실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색들로 비친다.

빨강과 녹색의 지배적인 색채가 이를 묵시적으로 암시해준다. 또한, 형태에서는 평면성을 추구하지만, 색채나 기법에서는 표현주의적 분출의 감정 노출이라는 본질과 형식도 드러낸다.

이 아득한 시간과 고뇌의 풍경을 떠 올리는 작품들은 최근 제작되는 그림 속 표현에서 그 원숙의 절정에 다다른다.

특별하게 그의 풍경이 다른 어떠한 인상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기묘하게 뒤섞인 색채의 소용돌이가 화면에서 더욱 빛나고, 화폭은 점점 고요하고 정적인 평화로움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열정적 색감에서 표현주의를 거쳐 이제 행복한 시간을 향한 그리움의 순간들을 포옹한다.

모두 행복과 희망의 초록색으로 그려진 많은 기쁨과 평안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태어난 배경이다.

이렇게 태어난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초록색과 파란색이 적절히 섞여 있고 바탕은 따뜻한 색이 중심이 된다. 겹쳐지는 이미지의 구성과 뜨겁고 격정적인 화면은 그의 회화에 쏟아낸 고뇌의 순간들, 행복한 순간들과 큰 대조를 보이면서 색채에 무게중심을 더 해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소 즉흥적인 느낌으로 칠한 듯한 색채의 대비나 구성이지만 감각으로 그 치밀함을 끌어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김경희 작가는 특히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 꽃과 풍경을 한 화면에 모으는 화면의 연출자 같은 초상을 보인다.

화폭에 투박한 펼쳐진 붓질, 꽃의 청순함이 상징인 붉은 색, 하지만 풍경에 끼어든 나무나 꽃은 언제나 초록색으로 적극적으로 남성성을 엿보게 한다.

▲ 김경희 작가
▲ 김경희 작가

김경희 작가는 달콤한 사랑의 색채보다는 내면의 감출 수 없는 격정의 열정에 거침이 없는 환상적인 혼합색으로 대범함을 보이는 중성적 작가임을 곳곳에서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그에게 색채는 공간인 동시에 격정이고, 내면의 표현이고 본질이다.

그 본능 속에 웅크리고 있는 거부 할 수 없는 파토스적인 폭풍 같은 제스처가 그림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김경희의 화면에는 풍경과 꽃이라는 각자의 특성이 하나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울림 속 바탕에는 뒤피가 언 듯 보여준 오케스트라 풍경과 작업실 발견되는 내면의 뜨거운 격정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일어난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과 다른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고자 꿈꾸고자 하는 작가의 가슴속 깊은 울림이나 내면 이야기의 간절한 외침으로 가슴에 밀려온다.

이 아름다운 풍경과 정물의 조화로운 세계 구축이야말로 그녀가 꿈꾸는 마지막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즉 즐거움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 그러나 쉽게 다가오지 않는 그 인간적인 욕망의 끝에 그의 그림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생의 달콤함과 같은 풍경은 그녀가 추구하는 진정한 풍경인지도 모른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이제 그녀의 풍경은 자연스럽고 평안하고 온화하다. 또한, 원숙하며 깊이가 느껴진다.

“그림은 내 인생의 시련기를 이겨 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라는 작가의 발언이 그의 회화에 모든 격정과 치열함이 얼마만큼이었고 그 고뇌의 울림이 어떠했는가를 여기 이 그림들이 모두 단적으로 아주 극명하게 말해준다.  

김경희 초대전 〈내 꿈, 내 사랑(My Dream, My Love)〉은 오는 6월 5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로 금산갤러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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