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현대중공업에서 또 다시 비보가 들려왔다. 이달 21일 또 사내 하청업체 직원이 작업 중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협력업체 사망소식을 전한지 딱 한 달만이다.

이로써 현대중공업 사업장에서 올해 숨을 거둔 노동자 수만 벌써 4명으로 늘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죽거나 크게 다친 셈이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1972년 창사 이래 466명, 매달 0.85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대중공업을 ‘죽음의 기업’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제 익숙해질 정도다.

인명사고에 대한 현대중공업 측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고 직후 돌아온 답변은 “안타깝다”, “관계기관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였다. 한 달 전 취재 당시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래도 반복된 사고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 던진 질문에 돌아온 답은 “아직”이었다.

사고가 반복됐지만 별다른 대응은 없었고 이 같은 부실한 대응에 경영진의 책임론까지 현대중공업을 향한 비판은 거세졌다. 당장 노조에서는 현대중공업이 노동자를 위험에 몰아넣었다며 책임자 처벌에 목소리를 높였다. 또 노동부의 감독 부실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까지 제기하며 여론을 흔들었다. 일부에서는 인명사고에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를 의식해서 인지 알 수 없으나 인명사고가 난지 사흘정도 지난 25일 현대중공업은 행동에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대표였던 하수 부사장은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했다. 대신 한 직급 격상시켜 이상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하고 안전 대책 전반에 대한 재점검을 약속했다. 권오갑 회장도 “모든 계열사가 안전을 최우선가치로 삼는 경영을 펼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권 회장까지 나서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분위기 반전을 이뤄내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사교체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약속했음에도 ‘또 다시 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불신에 대해 누굴 탓하기도 힘들다. 전 임직원이 함께 현장 안전점검에 돌입하고 안전대토론회를 통해 표준작업서를 보완해 사고를 방지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아마 매번 사고가 있을 때 마다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은 무수히 반복 돼 왔을 터이다.

그렇다보니 이제 ‘안전 최우선’이란 말의 무게도 더 없이 가벼워 질 수밖에 없다. 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 대책에도 안전시설과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만 언급됐을 뿐 생산현장에서 기술적, 구조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수의 인명사고를 대표하는 말인 ‘위험의 외주화’의 책임에서 현대중공업도 자유로울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협력업체 단가후려치기 등 갑질로 200억원대 과징금 제재를 받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기성금 인하 문제와 맞물려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파업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노조 등에서는 협력업체와 불공정한 관계와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무리한 작업 강행 등 구조적 문제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또 다시 ‘안전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수준에 그칠까 걱정된다. 현대중공업이 또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여론 무마용 인사로 수습하려 든다면 이번에도 ‘양치기 소년’의 탈을 벗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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