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자녀와 더 많은 시간 보내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큰 것 당연해
고정된 성역할 만든 사회 개선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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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자녀들은 대부분 아빠보다는 엄마와 친밀한 더 관계를 맺는다. 이는 육아를 엄마들이 담당해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을 아빠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엄마는 자연스레 자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빠보다 잘 알게 되고, 이를 채워주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엄마의 희생은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강요돼 왔다.

실제 육아를 하고 있는 워킹맘은 모성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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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경기도 시흥에서 4세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초반의 공무원 장은미씨는 이상적인 어머니상(像)을 자녀에게 아낌없이 헌신하는 모습으로 꼽았다.

“모든 어머니는 자녀가 잘 되는 것을 가장 바랄 거예요. 정서적, 물질적으로 사랑을 주고 싶어 하고요. 엄마들은 자녀에게 아낌없이 헌신하려는 것 같아요.”

장씨는 자신의 어머니를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여기는 듯했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현모양처’라고 적어냈던 적이 있어요. 당시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아빠는 일을 하시면서 대학교를 다니셨는데, 논문을 쓰시는 동안 엄마가 옆에서 돕기도 하셨어요. 아빠는 일이 힘들고 바쁘니까 학업을 중단하려고도 하셨는데, 그때마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주셨어요. 어릴 때부터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장씨의 어머니는 슬하에 장씨를 포함해 3명의 자녀를 뒀다. 장씨의 어머니는 장씨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했다. 때문에 자녀에게 공부를 하라고 채근하기 보다는 스스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엄마는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으셨어요.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시면서 저희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셨어요.”

장씨의 어머니는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하고 싶어 했으나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 본인의 꿈을 접고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엄마는 가사를 전적으로 맡은 전업주부셨어요. 엄마세대는 일을 하다가도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되는 게 자연스러운 세대잖아요. 엄마가 제 세대였다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이어가시지 않았을까요.”

장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께 학비를 지원받았다. 자녀가 장성한 뒤로 어머니께서 다시 일을 시작하셨기에 지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성인이 된 후 공무원을 준비할 때에는 엄마가 일을 하셔서 매달 1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부쳐주셨어요. 그 시기에 아빠는 퇴직하시고 사업을 시작하시던 시기였는데, 엄마는 제가 걱정할까봐 저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엄마에게 참 감사하죠. 엄마도 하고 싶은 공부도 있었고, 계속 공부를 하셨다면 사회복지 쪽 일을 하실 수 있었을 텐데…엄마는 지금도 공부를 계속 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세요. 하지만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더 만족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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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때문에 포기한 것들

어머니의 헌신 덕에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장씨는 일을 하던 중 아이를 갖기 위해 휴직을 했다.

“2017년 1월부터 출산계획을 갖고 6개월 휴직을 했어요. 임신 초기에는 유산기도 있고 해서 임신 중에는 거의 누워 있었어요. 그래서 출산 후에는 오히려 행복했어요.”

공무원인 장씨는 경력단절을 겪지 않았다. 육아휴직과 복직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많은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는 승진 욕심, 일 욕심이 많아서 도교육청이나 교육부로 가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시댁과 친정 모두 멀리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휴직 기간이 길었어요. 아이가 어리니까 승진보다는 양육에 더 치중하게 됐죠. 학교 같은 경우 근무시간이 일찍 끝나기 때문에 여성들은 대부분 임신 전까지는 교육청에서 일하다가 출산 후에는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학교로 가서 근무하려고 해요. 함께 일하는 실장님도 일 욕심이 많은 분인데, 5급으로 승진하고 싶지만 육아 때문에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남편도 육아와 가사노동을 함께 하고는 있지만, 야근이 잦고 출퇴근 시간이 긴 탓에 대부분 장씨의 몫이 된다.

“남편은 회사가 멀어서 출퇴근에만 하루 두 시간 가까이 써요. 제 직장과 아이 어린이집 등원을 위해 희생하는 거죠. 게다가 남편은 야근도 많아서 가사노동은 제가 주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장씨는 남편도 가사노동과 육아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실 청소, 쓰레기 버리는 일 등은 남편이 전담하고 있어요. 집안 청소는 주말에 함께 하고요. 야근이 많지 않다면 육아나 다른 가사노동도 함께 했을 거예요.”

남편이 육아와 가사노동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하고 있지만, 주로 전담하는 것은 장씨인 만큼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다고 한다.

“출산 후에 1년 정도는 복직을 못 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본 적이 있는데, 집안일도 만만치 않아요. 아이랑 있다 보면 아무리 치우고 청소를 해도 티가 안 나요. 육아, 가사노동이 쉬운 게 아니에요. 복직 후에는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니 더 힘들죠.”

장씨는 주변에서 가사노동을 돕는다며 생색을 내는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조금 도와주면서 ‘이렇게나 많이 도와준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잘 하는 편이지만, 얘기를 하다보면 ‘나만큼 많이 도와주는 남편이 어디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육아는 엄마와 아빠 모두의 몫인데, 아직까지도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거죠. 어떤 때는 그게 서럽기도 해요.”

장씨는 복직 이후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개인 시간을 많이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하루 일상이 퇴근하자마자 아이 밥 차려주고 설거지 하고나면 아이를 씻기고 잠깐 놀아줘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개인 시간은 많이 줄어들었죠. 전에는 독서모임도 많이 다니고 활동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전혀 할 수가 없어요. 아이를 재우다가 피곤하니 같이 잠들어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직장에서 일이 밀릴 경우 전 같으면 연장근무를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이가 혼자 집에 있어야 하니 야근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일을 집에 싸들고 오게 되고요. 회사에서 일하느라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늦게 데려오는 것보다는 제가 피곤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뒤 늦게 일을 하는 게 나은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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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휴직’ 늘고 있지만

자녀를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있는 장씨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자녀를 위해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후천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성애에는 본능적인 것도 있지만, 선천적이기보다는 후천적인 영향이 더 큰 것 같아요.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태동을 느끼는 건 아빠는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요. 물론 아빠도 자녀를 사랑하겠지만,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자녀를 동일시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육아에 있어서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크다고 느끼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본능적으로 가질 수 있지만, 아빠보다 엄마들이 더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교감을 하기 때문에 자녀를 위해 희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빠보다는 엄마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고,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대부분 엄마예요. 아빠는 대부분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잠깐 보거나 주말에 놀아주는 정도죠. 엄마가 더 아이와 가까울 수 있는 환경인 거죠.”

소득을 이유로 엄마에게 육아를 강요하고, 아이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 또다시 이를 이유로 엄마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장씨의 말처럼 실제로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하는 엄마가 아빠보다 훨씬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육아휴직자 5만3494명 가운데 4만2414명(79.3%)은 여성이었다. 아빠 육아휴직자의 비율은 2018년 상반기에 비해 30.9%가 증가한 것이지만, 이 같은 수치는 여전히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가 더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성애는 여성이 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다.

맞벌이뿐만 아니라 맞돌봄 역시 당연히 여길 수 있도록 인식개선은 물론 아빠의 육아휴직, 돌봄이 수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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