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임직원은 실형 확정, 유해성 공방은 진행 中
애경 “가습기 사태 후 문건...미리 알고 있던 것 아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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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사건 발생 9년째 접어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한 법적 공방이 장기화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 가습기 살균제의 부실한 안전성 검증을 언급한 애경산업 내부 문건이 나와 향후 재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끝나지 않은, 유해성 법정 공방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인명피해 사실이 알려진 이후 2016년부터 추진된 검찰 수사로 당시 관련 제품의 제조와 판매에 나섰던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경우 책임자들이 최고 6년 형을 선고 받는 등 법적 판단이 일단락 됐다.

하지만 당시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은 유해성 입증 문제로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 앞서 옥시 등이 사용했던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와 달리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사용한 원료 물질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의 경우 유해성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가습기 피해자들의 오랜 요구와 CMIT와 MIT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면서 지난 2018년 말, 사건 발생 8년만에 검찰의 수사 재계로 이들 기업의 주요 책임자들이 재판대에 오르게 됐다.

검찰은 8개월간의 수사 끝에 작년 7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현직 임직원 34명을 기소했다. CMIT·MIT를 이용해 가습기살균제를 개발·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과실로 소비자들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다.

애경산업의 안용찬 전 대표와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 등 대부분 책임자들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역시 쟁점은 유해성 입증이다.

애경산업의 경우 일부 임직원이 증거 인멸과 폐기 등의 혐의로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 끝에 실형이 확정 된 바 있다. 지난달 4월 29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 증거인멸을 실행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 양모 전 전무는 징역 1년, 이 모 전 팀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했다.

애경, 내부 문건서 ‘안전한 물질 판단 어려워’

법적 판단을 위한 지리한 공판 과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명시된 애경산업의 내부 문건의 존재가 드러나 주목받고 있다. 애경산업이 해당 원료의 유해성을 알고도 판매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1일 <경향신문> 단독 보도에 따르면 애경산업은 지난 2011년 10월 만든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이라는 제목의 내부 문건에는 SK케미칼 측이 지난 1994년 말 당시 이영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팀에 의뢰해 시행한 가습기메이트 흡입 독성 실험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가습기메이트는’ 애경산업이 SK케미칼 원료로 만들어 판매한 제품이다.

문건이 작성 된 시점은 정부가 2011년 8월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인체 유해성을 공식 인정한 직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에는 “실험 검토 결과, 흡입독성이 없다고 할 수 없어, 안전한 물질로 판단하기 어려움”이라는 결론과 함께 “대조군과의 비교 혹은 통계학적 유의성이 없다고 하지만, 병변의 발생이 없다고 할 수 없음”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SK에서는 흡입독성을 거쳐 본 물질이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실험 검토 결과 안전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매우 희박함”이라며 “1995년 당시 본 실험 결과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임상독성에 대한 판단지식도 부족했을 것으로 보여짐”이라는 문구도 나온다.

애경산업이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한 실험 결과를 이이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그동안 제조에는 관여하지 않고 판매만 했으며, 판매 당시 SK케미칼에서 물질 성분도 제공받지 못했다는 애경산업의 주장과도 엇갈린다.

이에 애경산업 측은 해당 문건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어난 뒤 진행된 문건”이라며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도 가습기 사건 관련해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위해 살펴보는 과정”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개인 형사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회사 공식 입장을 내긴 어렵다”면서 “다만 여러 쟁점에 대해 서로 의견을 피력하는 중으로 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증거인멸 실형 확정, 유해성 공방은 진행 중

검찰이 제출한 논문 증거에 대해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부동의하면서 이를 규명하기 위한 증인만 130여 명에 달하면서 초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증거 인멸과 폐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졌던 애경산업 일부 임직원의 경우 형이 확정되며 마무리 되기도 했다. 지난달 4월 29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 증거인멸을 실행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 양모 전 전무는 징역 1년, 이 모 전 팀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와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 등 주요 책임자들의 법정 공방은 아직 진행형이다. 애경산업과 SK케미칼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 재판은 매주 1~2회씩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26일에는 공판준비기일 등을 포함해 36번째 공판이 열렸다.

특히 이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에 대한 본질을 다루는 만큼 사측도 대형 로펌을 선임해 적극 대응하는 등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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