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카페 카페믹스 탄생시킨 남양유업 박종수 중앙연구소장
커피 믹스 개발 당시 매일 30~40잔 커피 마시며 밤샘 연구
직접 내가 만든 제품들 소비자들이 찾을 때 행복하고 보람 느껴
식품개발자 되기 위해선 경영자적 마인드·소비자적 개념 갖춰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히트 상품은 분명 보이지 않는 이들의 수많은 노력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제품이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이기까지는 여러 직원들의 노고가 담긴다. <투데이신문>은 앞으로 ‘Hit Makers’라는 코너를 통해 우리가 평소 만나던 제품과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볼 예정이다. 하나의 제품, 아니 하나의 ‘작품’ 안에 숨어있는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지금부터 공개한다. 

남양유업 박종수 중앙연구소장. ⓒ투데이 신문

【투데이신문 한영선 기자】 내가 손수 개발한 제품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남양유업의 박종수 중앙연구소장은 식품개발자다. 편의점에서 늘 보던 그 음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제품들은 대부분 다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남양유업에 입사하며 식품업계에서 1인자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졌고, 이후 32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한 우물을 파며 정진해오고 있다. 몸이 가벼워지는 17차부터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맛있는 우유 GT 등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킨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남양유업에 입사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1988년 10월, 첫 직장으로 남양유업 중앙연구소에 입사했어요. 올해로 벌써 32년이나 됐네요. 출근한 첫날부터 식품업계 1인자가 되겠다는 포부로 연구소의 수십 년 된 보고서와 연구 자료들을 모두 복사했어요. 퇴근 후 매일 그 자료들을 날이 새도록 붙들며 너덜너덜해지고 시커메질 때까지 읽었죠. 10~20년 전의 우리나라의 식품산업 시장과 소비자 동향을 분석하는 과정이 힘들다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Q. 식품 업계 1인자라는 목표가 인상적인데요. 

헤드헌터 시장에서 넘버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졌어요. 연구원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나라의 식품 소장 1인자와 경영적 1인자부터, 나아가 기술적 1인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런 간절한 바람과 노력 덕분인지 연구부서뿐만 아니라 공장 생산팀, 품질 보증팀, 본사 기획실까지 회사의 핵심 부서에서 근무할 기회들이 있었죠. 돌이켜보면 다른 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이 경영자적 마인드를 기르며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연구소장에 부임한지 9년 차인데, 후배 연구원들을 양성하며 함께 식품 개발을 하고 있어요.

남양유업 박종수 연구위원. 
남양유업 박종수 중앙연구소장. ⓒ투데이 신문

Q. 식품 연구원에게는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요. 

식품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 제가 학부, 석사, 박사까지 식품 관련학과를 나왔는데 이 기간을 합치면 약 10년이에요. 여담이지만, 사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방황의 시기를 잠깐 겪었어요. 할아버지 덕분에 정신 차리고, 군대에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모든 과정을 올 A+로 졸업하게 됐어요. 새벽 4시에 학교에 가서 밤 11시 40분에 집에 오기도 하고, 시험 보는 도중에 시험지에 코피가 떨어진 적도 있죠. 식품 연구원이니만큼 식품에 대한 개념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고, 이런 공부가 일을 잘하기 위한 초석이 돼요. 채용 면접에서도 식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봅니다.

남양유업 박종수 연구위원. ⓒ투데이 신문
남양유업 박종수 중앙연구소장. ⓒ투데이 신문

Q. 공부와 함께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식품연구원에게는 ‘소비자적 개념’과 ‘마케팅적 개념’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후배들에게 늘 강조해요. 연구원의 기본 능력뿐 아니라 회사를 경영자적 마인드로 바라보는 큰 시야를 가져야 해요. 연구원들을 보면 때때로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요. 그 시각에 매몰돼 마케팅적 관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기본적으로 식품연구원들은 개발도, 관능도 잘해야 해요. 커피 한 잔 마시고 A4용지 한 페이지로 그 맛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Q. 제품이 출시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제품개발은 제품의 중요도에 따라 장기, 중기, 단기 프로젝트로 나뉘어요. 장기의 경우 약 5년, 중기는 3년, 단기는 1년 정도의 개발 기간이 걸려요. 프로젝트의 중요도를 나누는 기준은 회사 브랜드 및 매출의 영향,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시점으로 구분돼요. 맛있는 우유 GT, 프렌치카페 카페믹스와 같은 제품군이 장기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남양유업 세종공장연구소 전경
남양유업 세종공장중앙연구소 전경. ⓒ투데이 신문

Q. 단기와 중기 프로젝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단기프로젝트는 연구소 내 개발실을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돼요. 중-장기 프로젝트의 경우 회사에서의 중요도가 높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품목 군인만큼 전사적으로 TFT(Task Force Team: 특정한 업무를 전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편성된 조직)가 생성돼 팀 전체가 개발에 집중하게 되죠. 적게는 30명, 많게는 약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투입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지요.

남양유업 박종수 연구소장.
남양유업 박종수 중앙연구소장. ⓒ투데이 신문

Q. 개발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제품의 개발과정은 크게 기획→설계→(시험)생산→품질/안전성검증→출시 단계를 거쳐요. 첫 번째 ‘기획’ 단계에서는 해당 품목 군의 시장 현황 및 소비자들의 니즈 파악을 통한 제품의 콘셉트가 확정되죠. 두 번째 ‘설계’ 과정은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요. 세 번째로 설계가 끝난 제품은 공장에서 (시험) 생산을 진행해 생산성 및 안전성 등 품질 안전성 관련 모든 항목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 받게 되죠.

Q. 가장 중요한 단계는 어떤 단계인가요.

남양유업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품질’과 ‘안전’입니다. 원료의 제조사에 대한 안전 관리 시스템과 안전한 재무구조 평가를 진행하고, 또 원료 및 부자재에 대한 규격을 설정하고 관리하죠. 현재 남양유업의 제품들은 국내 규격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코덱스(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부터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의 발전된 관리규격을 포함해 누구보다 까다롭고 철저하게 하고 있어요.

ⓒ남양유업 본사.
남양유업 세종공장중앙연구소 내부. ⓒ투데이 신문

Q. 이 단계에서 연구원에게 강조되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품질과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는 말을 꼭 기억하라고 당부해요. 특히 남양유업은 안전이 필수적인 조제분유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모든 제품에 조제분유와 같은 안전하고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제품개발 과정에서도 품질 안전성 검증 단계가 가장 오랜 기간 소요됩니다.

Q. 식품회사에서 영유아 제품 담당 여부에 따른 차이가 있나요. 

영유아 제품을 담당하고 개발하는 회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와 품질 및 안전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요. 쉽게 말해 껌이나 과자만 개발하는 식품회사와 영유아 및 노인층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기준이 다르다는 거죠. 영유아 제품의 경우 설비와 환경적 측면에서 거의 의약품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한 기준들을 지켜야 해요.

Q. 입사 후 개발하신 제품 중 애정이 깃든 제품을 꼽는다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입니다. 당시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에서 시장을 주도하고 독점하다시피 하던 고착화된 시장이었어요. 2010년, ‘기호식품으로만 여겨지던 커피믹스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커피믹스 시장 도전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의미 있는 도전이었어요.

남양유업 박종수 중앙연구소장. ⓒ투데이 신문

Q.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개발하실 때 어떤 점을 차별화하셨나요?

당시, 식품법의 첨가물 분류상 화학적합성품으로 구성된 ‘카제인 나트륨’ 대신 ‘무지방우유’만을 사용해 더 건강한 커피믹스를 개발했어요. 카제인 나트륨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크리머의 보존성(산패)과 패더링 등 품질문제, 우유 사용으로 인한 원가부담 등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카제인나트륨을 우유만으로 대체한 건강한 커피믹스를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커피믹스 개발로 건전한 경쟁관계를 유도한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이 기술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호주에서도 특허를 획득했습니다. 

Q.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개발 당시 에피소드가 있나요.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개발할 땐, 하루에 30~40잔씩 마시는 게 기본이었어요. 위가 너무 아팠고, 밥맛도 없었어요. 카페인을 너무 마시다 보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제품 출시 이후 제품을 사랑해 주신 소비자들 덕분에 연구원들과 함께 밤잠을 설치던 경험이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됐습니다. 

Q. 2000년 당시 17차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0년 당시 가까운 일본에서는 액상 차가 탄산음료만큼이나 인기 있어 녹차부터 홍차, 우롱차, 혼합차 등 다양한 맛의 차 시장이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맛이 나는 홍차 정도만 두드러지는 수준이었기에 건강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어요. 한국인들은 녹차와 우롱차의 경우 비릿한 맛으로 차가운 상태를 싫어한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결국 국내 소비자 입맛에 맞춘, 쓴맛이 적고 구수한 곡물 혼합차에 대한 선호도를 발견하고 17차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음료역사에서 혼합차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내세운 발판이 됐다고 생각해요. 보리차, 옥수수수염차, 헛개차로 이어지는 액상 차 시장을 이끈 선도 제품이거든요.

남양유업 박종수 연구소장
남양유업 박종수 중앙연구소장. ⓒ투데이 신문

Q.  맛있는 우유 GT를 개발할 땐,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왜 학생, 청소년 등 젊은이들은 우유 맛을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됐어요. 연구소 내 TFT를 구성해 수많은 문헌조사, 해외 제품 평가,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통해 우유 맛을 저해하는 요인부터 찾았습니다. 먼저 목장, 사료에서 기인되는 저급 지방산 성분을 제거해 이취를 없앴습니다. 산소를 차단하고 질소를 치환해 산화를 최소화시키는 등 GT제조공법을 적용해 신선하면서도 맛있는 우유GT를 개발했죠. 기술 보전을 위해 특허까지 등록했어요. 이 우유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PMO(미국 FDA 품질기준) 120 이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Q. 직접 개발하신 제품들이 출시되면 보람을 느끼실 것 같은데. 

다른 연구원과 함께 열심히 몇 달 밤을 지새우며 만든 제품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 황홀한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너무 행복하고 뿌듯한 경험이죠. 국민들에게 건강한 식품을 보답하고자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Q. 요즘 남양유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좋지 않은 사건이 연이어 터지니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남양유업이 기업으로서 기여 문화가 부족했던 만큼 소비자들과 사회에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제품들을 개발함으로써 이 빚을 갚아 나가도록 노력할 겁니다.

Q.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식품업계가 어떻게 변화하실 거라고 보시나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 문화, 종교 등의 트렌드부터 개인의 삶도 완전히 바뀌었어요. 유통산업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입니다. 배달 산업은 번창하고 식문화는 크게 바뀔 거예요. 개인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소비 패턴이 등장하고 있어요. 가까운 미래의 ‘스마트 홈’ 개념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도시 기능의 70%가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거죠. 결국, 1인 가구, 핵가족, 소비자들이 증가해 무인점포가 증가하고, 기업들은 공급망을 다변화해 투자 분산 정책이 늘어날 겁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산업계와 학계 및 의학계까지 TFT를 구성해 연구를 통해 식품에 접목시킨 사례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Q. 남양유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남양유업은 가정식 대체식품인 HMR 시장의 무한 성장과 마켓컬리 쇼핑몰의 빠른 성장 등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다각도로 고민하고 속도감 있는 대응을 준비하며 신사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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