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육아하며 경험한 모성애
“본능적 사랑과 통념상 모성은 달라”
아빠·공동체·국가가 육아 분담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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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본지는 앞선 6편의 기사를 통해 30대부터 70대까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들이 느끼는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엄마들은 사회의 강요로 가사노동과 육아를 모두 감당하거나,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또 육아를 전담하는 아빠는 사회의 편견에서 비롯된 시선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모성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엄마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고,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부당한 강요를 받게 된다.

연령과 관계없이 엄마들은 모두 자녀에 대한 본능적 사랑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이유로 사회가 모성애를 강요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엄마에게 모성애를 강요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또 모성애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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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이어도 힘들 것”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40대 박은영(가명)씨는 “자녀를 낳고 나서는 제 자아실현보다 아이의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삶이 자녀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박씨는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까지는 가계 소득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고 가사노동을 전부 책임졌다고 한다. 이후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아르바이트 정도의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녀 양육을 책임져야 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를 쌓지 못한 것이다.

박씨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어머니상(像)에 대해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어머니”라고 말했다. 사회가 이른바 ‘슈퍼우먼’이라고 불리는 모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씨는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원더우먼’이어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모성이 본능이라면서도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측면이 크다고 했다.

“모성은 타고난 본능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학습된 본능이기도 한 것 같아요. 여자라면 당연히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사회의 기대와 학습 속에 자라고, 그 사회 속에서 아이를 낳고 좋은 엄마‘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아이를 키우게 되죠.”

모성, 사회적 요구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며 13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40대 전업주부 백수정씨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노동을 전담하게 됐다고 한다.

“경제활동(소득이 있는 노동)을 하지 않아 가정에 100% 충실할 수 있었어요.”

백씨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어머니상을 ‘본인의 자아실현을 하면서 큰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꼽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엄마로서 자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백씨 역시 모성이 본능이라기보다는 구성된 것이라고 봤다.

“모성이 본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통념상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머니는 자식에게 헌신적인 모습이에요. 엄마들이 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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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 양립, 삶 희생해야 가능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 거주하면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40대 오은진(가명)씨는 출산 이후 자녀를 돌보느라 자신을 위한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자녀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일·가정의 양립을 위해 오씨는 자신을 위한 시간은 물론이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도 포기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직장 회식이나 퇴근 후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어요.”

오씨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대해 “자녀를 바르게 키우면서 본인이 원하는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녀를 기른다는 것은 삶을 일부 희생해야 하는,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성이 본능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머니가 내게 보여주신 모성애를 본받으려는 것이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가정에 육아 담당하는 사람 한 명이어선 안 돼”

고등학생 자녀 두 명을 키우고 있는 SISO감각통합연구소 지석연 소장은 출산 이후 3년간은 육아를 담당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니 힘이 들었다고 한다.

“아이를 돌보는 좋은 어르신을 만나서 아이들을 맡기게 됐어요. 어르신 생활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제 소득의 많은 부분을 드리고 서로 만족하는 길을 택했죠.”

지 소장은 “가정에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부모는 자녀를 독점하는 사람이 아니며, 다른 사람과 함께, 혹은 보육 시스템에 돌봄을 맡기면서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다른 사람, 또는 보육 시스템에 맡기면서 지지하고, 감사하고, 책임도 공유해야 해요. 그래야 스스로 사회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어요. 제가 사회적인 일을 하기에 더 알맞은 사람이라는 판단도 아이를 맡기고 이것저것 해보면서 알게 됐어요.”

지 소장은 “본능적 모성이 있지만, 그 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이해나 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성을 채워줄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모성이 이상적인 인간성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당한 엄마들은 사회의 모순이나 어려움을 바꿔가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사진제공 = 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사진제공 = 롯데 엔터테인먼트>

모성애, 여성을 틀에 가두는 것

딸 네 명을 키우고 있는 1974년생인 박소영씨는 “결혼 전에는 직장생활을 했으나 결혼 후에는 거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한 박씨는 1999년 첫째 아이를 낳았다. 이후 2001년, 2003년, 2009년 아이를 낳아 육아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네 명의 자녀를 돌보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는 “출산 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나 배우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니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고 작은 취미를 갖기도 어렵다”며 “나보다는 아이들 중심으로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자녀들을 위해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며 “두 가지를 엄마 혼자 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모성애라는 말 자체가 이미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특정한 틀에 가두는 거라고 생각해요. 딸을 넷 가진 엄마로서 제 딸은 그런 틀에 갇혀 살지 않길 바라요.”

모성애 대한 찬양과 비난

엄마들은 모두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본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역할에 대해서는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모성을 이유로 엄마에게 육아와 가사노동을 강요하는 사회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만들어진 모성(L’Amour en plus)>의 저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에 따르면 서구 사회에서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생산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력이 중시되면서 육아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여성들에게 ‘모성애’를 강요하며 육아를 전담하게 한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근대화가 이뤄지면서 남성에게는 노동, 여성에게는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도록 한 것이다. 부녀회, 어머니회 등이 만들어지면서 엄마에게 자녀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성애라는 인식을 강요했고, 이 때문에 ‘일하는 아버지’와 ‘육아하는 어머니’로 이뤄진 가족이 정형화됐다.

그리고 사회는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등 찬양하는 말로 엄마가 육아에 전념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찬양은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난이 돼 엄마를 공격한다. ‘맘충’이라는 말은 사회의 이 같은 단면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우리 사회는 모성을 찬양하면서 이를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엄마들이 육아를 하면서 직접 체험한 모성애는 사회가 강요해 온 것과 달랐다.

‘본능적 모성’을 이유로 강요된 육아는 엄마의 삶을 희생하도록 만들었다. 국가가 복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엄마에게 전가한 것이다.

이제는 엄마와 아빠, 공동체, 국가가 엄마에게 전가돼 온 육아를 함께 분담해야 한다. 모성애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깨는 순간 엄마와 아빠, 자녀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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