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작가
미국서 혼인신고한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서류접수조차 하지 못하고 불수리 된 혼인신고
차별금지법 제정·동성혼 법제화 반드시 이뤄져야

김규진 작가가 지난 2일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한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규진 작가가 지난 2일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한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해 11월 새신부가 된 김규진씨는 퇴근하면 키우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의 밥을 주고,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한다. 그리고 배우자와 함께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야근 때문에 배우자와 퇴근 시간이 맞지 않는 날이 많아 먼저 집에 도착하는 사람이 고양이를 챙기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김씨 부부의 일상이다.

김씨는 결혼 후 “집에 갔을 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혹은 내가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십여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김씨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게 썩 나쁘지는 않더라”고 했다. 배우자가 도착하면 김씨는 반갑게 맞으며 인사한다.

“언니 왔어?”

김규진씨는 한 여성의 아내인 ‘유부녀 레즈비언’이다.

레즈비언인 김규진 작가는 지난 6월 부모님, 친구, 직장 동료 등 500번이 넘게 커밍아웃하면서 체득한 커밍아웃 방법과 미국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하게 된 이야기,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과 결혼식을 치른 이야기,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한 이야기를 담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펴냈다.

본지는 지난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김 작가를 만나 결혼생활 이야기와 동성혼 법제화, 최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 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규진 작가의 웨딩사진 사진제공 = 김규진 작가
김규진 작가의 웨딩사진 <사진제공 = 김규진 작가>

결혼=남녀만의 결합?

김 작가는 스스로를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으로 소개한다. 결혼이 남녀만의 결합이라는 생각을 깨려는 의도에서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종종 ‘기혼 레즈’, ‘유부 레즈’라는 말을 쓰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성과 결혼한 레즈비언을 뜻하는 말로 쓰이더라고요. 처음에는 ‘레즈비언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인데, 남성과 결혼한 레즈비언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다 결혼이 남녀만의 결합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게 됐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고, 여성과 결혼한 레즈비언을 뜻하는 말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일부러 더 ‘유부녀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한국 국적인 김 작가는 지난해 5월 미국 뉴욕에서 한국 국적의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혼인신고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블로그를 보고 나서’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김조광수 감독의 동성결혼 혼인신고가 서대문구청에서 불수리됐을 때 ‘한국에서 혼인신고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블로그를 보다가 ‘나는 여성이고, 여자친구가 있는데 캐나다에서 결혼을 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한국 국적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찾아보니 외국인 관광객의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나라가 십여개 정도 있더라고요.”

많은 선택지 중에서 김 작가가 선택한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으로 결정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첫째는 제가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영어밖에 없었어요. 둘째로는 와이프의 남동생들이 미국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까지는 어렵더라도, 가족이 모여서 결혼하는 광경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저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소개하는 김규진 작가의 손에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다. ⓒ투데이신문
자신의 저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소개하는 김규진 작가의 손에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다. ⓒ투데이신문

가족에게도 알리기 어려운 성소수자의 결혼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김 작가 부부는 같은 해 11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 작가 부부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다.

“첫 번째는 주변인들에게 알리는 것, 두 번째는 결혼식 준비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족에게 알리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보통 결혼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레즈비언인 김 작가 부부에게는 큰 난관이었다.

“저는 결혼 6년 전부터 이미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어요. 하지만 ‘동성결혼’은 다른 문제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갈등국면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동시에 ‘동성결혼이라고 지원 안 해주시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죠(웃음).”

김 작가의 경우 이미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직장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한 상황이었기에 결혼 소식을 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김 작가의 어머니께서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반대하셨다고 한다.

“‘결혼식에 오면 안 될까’라고 말했을 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어떻게 그 결혼을 축복하겠느냐. 나는 못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김 작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내주며 ‘혼수를 장만하라’고도 했다고 한다.

“엄마도 스스로 수용을 하려고 노력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통화를 하거나 얼굴을 보고 얘기할 때는 여전히 싫어하시더라고요. 딸의 결혼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과 동성애라는 낯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혼재하는 것 같아요.”

김규진 작가 부부가 키우는 고양이. 김 작가 부부는 최근 고양이를 돌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사= 김규진 작가진제공 >
김규진 작가 부부가 키우는 고양이. 김 작가 부부는 최근 고양이를 돌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사진제공 = 김규진 작가>

예상치 못한 ‘보수적인’ 지원군

이미 가족과 친구들, 직장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한 김 작가였지만 친척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는 것은 어려웠다고 한다.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외가는 대부분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이에요. 명절에 가면 ‘동성애자들은 지옥에 가야 한다’는 얘기도 종종 하셨죠. 그래서 친척들에게 결혼소식을 알려도 될까 싶었어요. 엄마도 밝히기를 꺼려하셨고요. 그러던 중에 엄마가 결혼식에 안 오겠다고 하셔서 엄마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말씀을 드리기로 했어요.”

외가에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김 작가의 이모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조카의 결혼식인데 가야지’라며 결혼식에 참석했다. 김 작가의 사촌 오빠들도 별다른 말없이 김 작가의 결혼을 축하해줬다.

“사촌들과 대화하는 단톡방이 있는데, 제가 ‘난 사실 레즈비언이고, 곧 여자친구와 결혼을 할 거야’라고 하자마자 엄청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오빠가 바로 ‘너무 축하한다’하고 다른 오빠들이 나쁜 말을 못하게끔 단도리를 해 줬어요. ‘우리가 가족인데, 규진이를 응원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모와 사촌들을 설득하는데 큰 역할을 해 줬죠.”

이미 주변에 커밍아웃을 해 결혼 소식을 알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김 작가와 달리 배우자는 주변의 퀴어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한 상황이었기에 부모님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와이프는 결혼 얘기를 꺼내기 위해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해야 했어요. 결혼 소식을 알리는 것도 문제였죠. 회사 동료, 학교 동기, 이성애자인 친구들까지도 와이프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점차 커밍아웃과 함께 결혼식에 초대를 하기 시작했죠. 와이프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다들 당연히 축하하며 결혼식에 참석해 줬어요.”

김규진 작가가 지난 11월 올린 결혼식에서 배우자와 반지를 교환하고 있다. <사진제공 = 김규진 작가>
김규진 작가가 지난 11월 올린 결혼식에서 배우자와 반지를 교환하고 있다. <사진제공 = 김규진 작가>

가장 평범한 결혼식

김 작가 부부는 ‘가장 평범한’ 결혼식을 올렸다. 모든 것이 평범한 결혼식에서 신부만 두 명인 파격을 준 것이다.

“모든 절차를 한국 결혼식의 ‘표준’에 맞춰서 했어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저와 와이프가 고루한 사람들이라서, 두 번째는 모든 것이 평범하게 진행되는 결혼식에서 신부만 두 명이면 새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준비했어요. 오히려 평범하게 진행해서 충격을 던진 거죠. 만약 제가 이성애자여서 남성과 결혼했다면 색다르게 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더 ‘표준’에 맞춰서 진행하고 싶었어요.”

김 작가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 생활에서 이성애자 부부들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성애자 부부의 삶이 정형화돼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 주변만 해도 남편이랑 친구처럼 재미있고, 시댁 가서 노는 걸 즐거워하는 분도 있어요. 반면 이혼하고 싶다는 분도 있죠. 이성애자 부부의 삶이 정형화돼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단히 천차만별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이성애자 부부와 다른 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김 작가는 배우자를 부를 때 언니라는 호칭을 쓴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와이프(wife)라고 소개한다.

“와이프의 어원이 고대 독일어 wibum(여자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성애 중심적인 호칭이 아니라서 와이프로 부르고 있어요. 아내라는 말은 ‘안사람’이라는 뜻이 있어서 가능한 쓰지 않고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다들 하는 혼인신고, 나는 왜 못해?

김 작가 부부는 서로의 아내가 돼 살아가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미혼이다. 한국에서 동성혼은 법제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성애자 부부는 겪지 않아도 되는 불안요소가 있다고 한다.

“둘 다 건강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경제활동이나 건강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곤란해지죠. 수술할 때 서로의 보호자가 돼줄 수 없고, 경제공동체로 묶이지 않기 때문에 재산을 넘길 수도 없어요. 또 주거 면에서 신혼부부 관련 대출이나 청약도 하지 못해요.”

이 밖에도 생활하면서 마음을 다칠 일도 많다고 했다. 통신사 가족결합 할인이나 손자며느리, 손자사위까지도 발급 가능한 가족카드를 배우자가 발급받지 못하는 등 일상에서 배제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김 작가 부부는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지 1년만인 지난 5월 종로구청을 찾아 혼인신고를 했다. 김 작가는 혼인신고서 제출 전 이미 불수리를 예상했다고 한다. 김조광수 감독의 혼인신고 불수리라는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될 거라는 짐작만으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혼인신고를 결심했다.

“혼인신고를 해야 동성부부도 혼인신고를 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 사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또 다들 결혼하면 혼인신고를 하잖아요. 저도 하고 싶었어요.”

김 작가는 혼인신고 전 변호사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법률을 검토하고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서류, 공증이 필요한 부분을 모두 준비했다. 혼인신고서도 집에서 미리 작성해 문제가 될 부분이 있는지를 낱낱이 검토했다.

김 작가가 예상한 혼인신고 시나리오는 혼인신고서와 서류, 신분증을 제출하면 담당 공무원이 접수하고 1주일 정도 후에 수리 여부를 문자로 통보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작가가 불수리 통보를 받는데는 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동성부부의 혼인신고서를 접수한 적이 없으니 담당 공무원들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네 시간을 기다려야 했어요. 동성애자가 법의 차별을 받는다는 게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서류접수가 불가하다는 말을 듣기까지 네 시간이나 걸렸고, 그에 대해 구청 직원들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혼인신고에 뒤따라오는 비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김규진 작가(왼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규진 작가(왼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동성혼 법제화, 많은 효과 가져올 수 있어

김 작가는 최근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법 입법을 국회에 권고하는 것을 보고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 처음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을 때는 보수개신교 집단뿐만 아니라 경제단체 쪽에서도 반대를 했어요. 고용에 의한 차별도 금지되기 때문에요. 그런데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가고 성정체성만 남았기 때문에 어찌됐든 고용 면에서는 조금이나마 사회의 진보가 있었다고 봐요. 거기다 인권위 조사 결과 국민의 88%가 차별금지법 입법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를 보니 정말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국민정서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마땅히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해주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김 작가는 동성혼 법제화의가 반드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동성혼 법제화의 이유로 성소수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도 함께 강조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행복추구권을 갖고 있어요. 국가가 결혼을 장려하는 상황에서 ‘행복을 위한 계약’이라면 당연히 모두가 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적인 측면이에요. 단적인 예로 웨딩시장을 들수가 있어요. 결혼인구가 점점 줄면서 웨딩시장이 축소되고 있는데, 성소수자의 결혼이 인정되면 새로운 소비자들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성장동력이 될 거예요.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으로 일자리 1만8000여개가 만들어지는 등 내수 진작이 굉장히 많이 됐다고 해요. 동성혼 법제화가 내수 진작의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김 작가는 동성혼 법제화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국가가 복지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한국 사회 시스템은 가족이 서로를 돌보는 구조잖아요. 많은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를 돌보지 못하고 있어요. 동성혼을 법제화 한다면 서로 돌볼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많이 감소할 거예요. 또 한 가지,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률이 비성소수자 청소년 대비 굉장히 높아요.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해요. 덴마크에서 동성혼을 법제화한 이후 13년 동안 성소수자의 자살률을 조사했는데, 동성애자의 자살률이 이성애자의 자살률보다 2배가량 이상 감소(동성애자 46% 감소, 이성애자 28% 감소)했어요. 정체성 때문에 자살하는 청소년, 청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반드시 법제화해야 해요.”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김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내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라고 답했다.

“주변에서 제가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대학생 때까지는 친구들에게도 커밍아웃 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한명 한명에게 용기를 얻어 커밍아웃을 하다 보니 자신에게 솔직하게 사는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지,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렇게 점차 영역을 넓히다 보니 오픈리 레즈비언(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활동하는 레즈비언)으로 살게 됐어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동성애자 친구가 제게 ‘고맙다’고 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결혼하는데 네가 왜 고맙냐’고 물으니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서 고맙다. 나중에는 나도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저만 해도 캐나다에서 혼인신고를 한 이름 모를 레즈비언의 블로그를 보고 미국을 가서 혼인신고를 했잖아요. 가시화된 선례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아서 나의 일상을 공유해야겠다는 의도로 시작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주목과 응원을 받게 됐어요.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제가 목소리를 내는 건 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예요. 목소리를 내서 동료가 한 명이라도 더 생긴다면 삶이 더 행복해지지 않겠나. 동료를 늘린다는 마음에서 이런 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