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상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안희정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모친상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안희정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자신의 수행비서를 위력으로 수차례 성폭행하고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안희정이 모친상을 당한 가운데,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사들이 조화를 보내고 조문해 “정치권이 성범죄자를 비호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안희정은 모친이 별세한 다음날인 지난 5일 밤 형 집행정지 및 귀휴 조치를 받았습니다. 안희정은 “자식 된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안희정이 모친의 빈소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안희정이 빈소를 지키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박범석 국회의장은 조화를 보내고, 수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공직을 걸고 조화와 조기를 보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당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 등 유력 여권 인사는 물론 정세균 국무총리 등도 직접 빈소를 찾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한국당 원유철 원내대표,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 등 야당 인사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당권에 도전할 에정인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은 빈소를 찾아 “어려운 사정인데 상을 당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김 전 의원이 말한 ‘어려운 사정’은 부하직원을 위력으로 성폭행하고 처벌을 면하기 위해 2차 가해를 저지른 안희정이 자초한 일입니다.

같은 당 이인영 의원은 “우리 아버지도 제가 징역살이할 때 돌아가셨다. 마음이 굉장히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1988년 학생운동을 하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안희정은 민주화운동이 아닌 성범죄를 저질러 형을 확정 받아 복역하는 것입니다.

김 전 의원와 이 의원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연민을 보이며 ‘남성연대’를 보였습니다.

이처럼 성범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인 안희정의 모친상에 정치권 인사들이 줄을 이어 조문하자 시민들은 공분했습니다. “성범죄자가 정치적으로 건재함을 알리는 것”이라며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판단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은 이어졌습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지난 6일 브리핑을 통해 “정치인이라면 본인의 행동과 메시지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적인, 공당의 메시지라는 것을 분명 알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대표, 원내대표,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걸고 조화를 보낸 이 행동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2차 가해 앞에 피해자는 여전히 일상에서의 힘겨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행태가 피해자에게, 한국 사회에 ‘성폭력에도 지지 않는 정치권의 연대’로 비춰지진 않을지 우려스럽다”며 “공직과 당직에 부끄럽지 않은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색당도 7일 논평을 내고 “개인적으로 연이 있는 이가 상을 당해 사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것은 누구도 뭐라 할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이 나라 국무와 국정을 좌우하는 주요 정치인들과 핵심 공직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직함을 걸고 언론사의 기자와 마이크, 카메라 앞에 당당히 조문하고 조의를 표하는 것은 정치 생명에 영향이 없다는 확신과 정무적 판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조화가 성폭행범에게 전해질 때 이 나라 여성 시민들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은 하는가”라며 “피해자를 고통받게 했던 안희정의 ‘위력’이 아직도 건재함에 참혹함을 느낀다”고 논평했습니다.

국회 내 여성 보좌진 등으로 구성된 단체 국회페미도 6일 성명을 내고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의 모친상을 개인적으로 찾아 슬픔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안희정은 더 이상 충남도지사가 아니다”라며 “정부의 이름으로, 정당의 이름으로 조의를 표해선 안 된다”고 질타했습다.

이어 “정치권은 안희정이 휘두른 위력을 형성하는 데에 결코 책임을 부정할 수 없고, 사회정의를 실현해 공정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전력할 의무가 있다”면서 “이번 일이 마치 안희정의 정치적 복권과 연결되는 것으로 국민이 오해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발언과 행동을 주의해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화와 조기 설치 비용은 국민의 혈세나 후원금으로 치러졌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안희정의 모친상에 국민의 세금이나 후원금으로 조화나 조기를 보낸 정치인들에게 이를 개인비용으로 전환해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치권의 조문행렬에 분노한 시민들은 안희정의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 김지은씨의 책 <김지은입니다>를 구매하며 정치권의 남성연대에 답했습니다.

SNS상에서는 ‘#김지은입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도서 구매·독서를 인증하고 도서관에 도서를 요청하는 등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출간된 이 책은 현재 온라인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이처럼 분노하는 것은 실형을 확정 선고받아 복역 중인 성범죄자인 안희정을 위로하며 연민의 정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빈소 조문을 두고 ‘인간의 도리’라며 과도한 비판이라고 빈소를 찾은 정치계 인사들을 옹호하고 있으나, 모든 행동이 국민을 향한 메시지가 되는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일임은 명백해 보입니다.

대통령과 정치계 인사들은 단순히 조의를 표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공직을 걸고 조문을 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안희정에 대한 비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강력한 처벌이 요구되는 가운데 정치권의 성찰과 반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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