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이 독일로 출장을 떠난 지 70여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는 환경부가 벤츠의 디젤차량 배출가스 조작에 대한 과징금을 발표하기 5일 전 독일로 떠났다. 당사자와 벤츠코리아는 두 사건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그의 귀국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책임 회피에 대한 의혹도 깊어가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5월 6일 벤츠코리아에 7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벤츠코리아가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에 판매한 경유차 3만7154대에서 배출가스 조작 프로그램을 설정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판단이었다. 검찰 역시 이에 따라 같은 달 27~28일 이틀 동안 벤츠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 했다.  

문제가 된 모델은 GLC 220d, GLE 350d를 포함해 모두 12종이나 된다. 벤츠의 배출가스 조작은 독일 교통부에서 먼저 문제 제기한 후 한국 환경부에서도 조사에 착수, 실도로조건 시험 등을 통해 불법 조작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이들 경유 차량이 인증시험 때와는 다르게 실제 운행 시 불법조작 프로그램이 임의로 설정돼 질소산화물이 과다하게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벤츠코리아는 환경부 발표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배출가스 제어시스템에는 수백개의 기능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는 만큼, 종합적 고려 없이 하나의 기능만을 분석해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벤츠코리아는 정부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벤츠코리아는 실라키스 사장의 독일 출장 이후 불거진 수사 회피 의혹에 대해서도 부인에 나섰다. 회사는 인사발표 이후 인수인계와 업무보고 등을 위해 출장을 간 것일 뿐, 환경부의 발표에 대해선 알 수도 없었고 예측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사자인 실라키스 사장 역시 최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환경부 발표 시기나 검찰 수사 일정을 몰랐다며 조사에 적극 협조할 방침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그의 이별선언에는 갑작스러운 측면이 있다. 실라키스 사장은 벤츠코리아 부임 이후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라는 눈에 띄는 실적을 올렸고, 대외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2018년 11월에는 사회적인 책임을 강화해온 점이 높게 평가돼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렇다 할 주변정리나 작별인사 없이 갑자기 떠난 이유가 배출가스 불법조작과 무관하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는 이번 배출가스 조작 의혹에 대한 사실상의 책임자다. 사안에 대한 인정이든 해결이든 실라키스 사장에게는 이번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소명의 의무가 있으며, 사후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의무도 있다. 그것은 한국과 벤츠가 그를 매개로 지난 수년간 쌓아올린 신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수도 있다. 

실라키스 사장의 한국 임기는 이달 말까지이며 그는 오는 9월 1일 벤츠캐나다 최고 경영자로 부임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그의 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난 이후 캐나다 부임까지도 1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미국 취업비자 문제 또한 캐나다 임명 결정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만큼, 그의 의지가 있다면 귀국해 수사를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실라키스 사장의 거취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으며 귀국 여부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벤츠코리아와 당사자는 해외 도피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눈앞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사라진 것이 도피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가 돌아와 수사 과정에 참여하고 직접 소명에 나서지 않는 한 책임회피에 대한 시선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불법 의혹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외산차 기업들의 대응은 사실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폭스바겐의 사례는 이번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요하네스 타머 전 총괄사장은 지난 2017년 배출가스 조작으로 기소된 뒤 독일로 출장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계속되는 재판 출석 요구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밖에도 포드코리아의 올 뉴 익스플로러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나 잇단 BMW 화재 발생에 대한 회사 차원의 은폐 의혹, 랜드로버코리아의 지속적인 AS 불편 민원 등 외산차 기업의 한국 시장 무시 또는 소비자 홀대 이슈는 매번 반복되고 있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소비자들은 해외 자동차 기업들의 국내 소비자 홀대를 오랫동안 체감해 왔다.

국내 시장은 왜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됐을까. 위법을 저질러도 처벌은 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비자 요구를 적당히 모른척해도 충성 고객은 유지 됐기 때문일까. 어찌됐든 위법 의혹에 대한 외산차들의 대응을 보고 있자면 한국의 수사나 재판은 적당이 모른척해도 문제없다는 인식이 생기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 성과만 챙기고 사라지는 명예시민의 뒷모습이 이 같은 씁쓸함을 다시 곱씹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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