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필수불가결’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소위 말해 혼기가 꽉 찼는데도 결혼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낯설지 않다. 상대방과 맞추어 살아가는 삶보다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홀로 책임지며 살겠다는 데 청년들의 공감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닌 하지 않는 ’비혼’은 청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본보는 청년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비혼 문화를 짚어보는 <비혼합니다>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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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채희경 인턴기자】 결혼 생각이 없지만 적령기에 접어든 청년들이 기피하는 자리 중 하나는 명절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친지들은 앞다퉈 결혼 계획에 훈수 두기 바쁘다.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날엔 결혼을 해야 하는 수만 가지 이유에 둘러싸여 온종일 시달리기도 한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20대 후반의 6년 차 직장인 윤여름(가명)씨도 몇 해 전부터 이 같은 이유로 명절에 본가를 방문하는 일이 피곤해졌다.

여름씨의 부모님을 비롯한 친지들은 “남들도 다 결혼하니 너도 한 번쯤은 해야 하지 않겠어?”, “친구들도 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여름씨는 결혼 생각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은 치기 어린 생각이라고 여기시는 듯하다. 

“부모님을 비롯해 친지들이 결혼을 하라고 하는 주된 이유는 ‘남들도 다 하니 너도 한 번쯤은 해야 하지 않겠냐’, ‘친구들도 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까’에요. 사회에서 대다수는 짝을 찾아 결혼을 하고 있고, 제 지인들이 결혼을 해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분명 외로움을 느끼게 될 거라고 하시죠. 그러면서 2세 얘기를 꼭 하세요. 당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말로 설득하는데 영 와닿지 않아요. 지금 생각과 가치관이라면 분명 저는 결혼을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을 거예요. 만일 이번 명절에 결혼과 관련한 얘기가 또 들린다면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할 것이라면 돈도 안 들고, 불필요한 감정 소비가 없게 결혼 자체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려고 합니다.”

지인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름씨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 혼자도 괜찮은 것 같다”고 답한다.

비혼 생각도 있고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인데, 비혼이라는 단어를 직접 드러내지 않아서인지 주위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최근 독립을 결정하고 집을 알아본다고 하자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집을 사려면 기왕이면 새 아파트 분양이 좋을 것이고, 분양을 받으려면 신혼부부 특공으로 청약을 넣는 게 당첨 확률이 높으니 그런 부분도 고려해보라고요. 돈과 시간은 물론 감정 소비까지 하는 게 연애라고 생각해 2년 넘게 연애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이라니. 혼자 살기 위한 번듯한 새 아파트 청약이 하늘의 별 따기라지만 단지 새 아파트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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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씨가 비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그는 벌써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6년째이지만 혼자 벌어서 생활하는 것조차 빠듯하다.

또 고액 연봉자가 아니라면 평생 안 쓰고 숨만 쉬면서 수십 년을 모아야 겨우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을까, 말까 한 환경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 기른다는 건 빚더미로 걸어들어가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직장 생활 6년 찬데, 솔직히 저 혼자 벌어서 생활하기도 버거워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하고 아이를 출산, 양육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결혼은 물론 아이 양육까지 모든 게 다 비용이에요. 특히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돈은 최소 ‘억’ 단위인데, 점점 불어나는 빚을 갚느라 평생을 다 써야 할지도 모르죠. 나를 위한 내 삶을 즐기기는커녕 빚 갚느라 평생을 보내느니 혼자 적당히 쓰며 즐기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서울 평균 집값이 10억원이 넘어요. 세후 월급 200만원인 사람이 안 쓰고 그대로 1년간 모아 수중에 쥐는 돈은 2400만원 정도예요. 이 연봉으로 10억원짜리 집을 사려면 숨만 쉬고 40여년을 모아야 할 거예요. 아파트 청약을 하려고 해도 가점이 낮은 20·30대는 당첨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죠. 가장 기본인 의식주 중에서 주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혼은 사치 아닐까요. 이런 환경에서 누군가를 만나 연애하고, 돈과 시간을 쓰며 결혼하는 건 쉽지 않죠.”

여름씨의 주위에는 최근 비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이 제법 늘었다고 한다. 그는 비혼을 결심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고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본인이 ‘자립심’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혼자 살면 쉽게 말해 기댈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타인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면 비혼을 고민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혼자 살기도 힘든 시대에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아닐까요.”

이제 비혼은 결혼을 비껴간 외길이 아니라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갈림길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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